“나의 길을 간다”…신념 위해 나아간 사람들 비춘 뮤지컬과 전시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24일 15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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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을 위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간 이들이 있다. 세상은 그들에게 비난을 쏟기도 하고, 뜨거운 지지를 보내기도 한다. 이들을 비춘 뮤지컬, 전시가 관객을 기다린다.

뮤지컬 ‘에밀’
진실을 외치는 고단하고도 격정적인 여정

프랑스 유명 작가 에밀 졸라와 그를 동경하는 가상의 청년 클로드가 보낸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그린 2인극 창작 뮤지컬이다.
에밀 졸라는 유대계 프랑스 육군 장교 드레퓌스가 독일의 스파이로 지목되자 선언문 ‘나는 고발한다’를 통해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한 뒤 프랑스에서 온갖 비난에 시달린다.
‘드레퓌스 사건’의 재심을 준비하며 하루하루를 견디던 에밀 졸라는 클로드가 찾아오자 날을 바짝 세운다. 경계심 가득한 에밀 졸라는 작가 지망생이라는 클로드에게서 자신과의 공통점을 발견하곤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자연 속에서 자유를 만끽했던 기억, 궁핍함에 시달린 경험 등에 대한 대화가 이어진다. 암살 위협을 받으며 가슴 졸이는 나날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만끽하는 미래를 상상하기도 한다. 에밀 졸라 역은 박영수 박유덕 정동화가 맡았다. 클로드는 구준모 김인성 정지우가 연기한다.

뮤지컬 ‘에밀’에서 에밀 졸라 역을 맡은 박영수.                                         프로스랩 제공
뮤지컬 ‘에밀’에서 에밀 졸라 역을 맡은 박영수. 프로스랩 제공

뮤지컬 ‘에밀’에서 에밀 졸라를 연기하는 박유덕.                                      프로스랩 제공
뮤지컬 ‘에밀’에서 에밀 졸라를 연기하는 박유덕. 프로스랩 제공

뮤지컬 ‘에밀’에서 에밀 졸라 역을 맡은 정동화.                                     프로스랩 제공
뮤지컬 ‘에밀’에서 에밀 졸라 역을 맡은 정동화. 프로스랩 제공


서로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는 가운데 과거에 대한 향수, 미래에 대한 갈망을 풀어내며 팽팽하다가도 어느 순간 환희에 찬 무대가 교차된다. 정동화는 예민하고 날카로우면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는 에밀 졸라를 몰입감 있게 그려낸다. 구준모는 순수해 보이지만 가슴 속에 무언가를 품고 있다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는 클로드를 매끄럽게 연기한다. 비장하고 묵직한 넘버와 생기 가득하면서도 서정적인 넘버들이 이야기와 세련되게 어우러진다. 신념을 지키는 삶이 어떤 것인지, 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1902년 에밀 졸라의 가스 중독 사망 사건에 영감을 얻어 김소라 작가가 작품을 썼다.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의 대본공모 당선작이다.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3관. 9월 1일까지.

뮤지컬 ‘등등곡’
어지러운 세상, 각기 다른 꿈을 향한 질주

“사람이 사람이 아니로세. 죽어서는 의미가 없으니 살아서 노세”
1591년 한양 인근. 희한한 탈을 쓴 젊은 선비들이 이런 말을 하고 춤추며 논다. ‘등등곡’이라 불리는 놀이로, 이 모임은 ‘등등회’라 불렀다. 등등회는 서인의 자제로 구성됐다. 역모 혐의로 동인이 대거 목숨을 잃은 기축사화(己丑士禍)와 관련, 모반의 주역으로 알려진 길삼봉이 살아 돌아왔다는 소문이 퍼진다. 등등회에 속한 다섯 명은 각자 꿈꾸는 세상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는데….
조선시대 역사서 연려실기술에 기록된 놀이 ‘등등곡’과 기축사화를 바탕으로 만든 5인극 창작 뮤지컬이다.

뮤지컬 ‘등등곡’에서 김영운 역을 맡은 김재범.                                        나인스토리 제공
뮤지컬 ‘등등곡’에서 김영운 역을 맡은 김재범. 나인스토리 제공


뮤지컬 ‘등등곡’에서 최윤을 연기하는 김바다.                                               나인스토리 제공
뮤지컬 ‘등등곡’에서 최윤을 연기하는 김바다. 나인스토리 제공


뮤지컬 ‘등등곡’에서 초 역을 맡은 강찬.                          나인스토리 제공
뮤지컬 ‘등등곡’에서 초 역을 맡은 강찬. 나인스토리 제공

어지러운 세상에서 노는 것을 즐기는 등등회의 수장 김영운 역은 김재범 유승현 김지철이 맡았다. 넉살 좋고 무게감 있는 김영운은 길삼봉에 대한 소문으로 흔들리는 등등회를 이끌어 가야 한다. 허무함 가득한 천재 최윤은 김바다 정재환 안지환이 연기한다. 영운의 종으로 글재주가 뛰어난 초 역은 강찬 박준휘 김서환이 맡았다. 기축사화의 중심에 있던 서인 정철의 아들로, 술과 풍류로 죄책감을 달래는 정진명은 박선영 김경록이 연기한다. 황두현 임태현은 영의정의 아들로 태어나 세상에 이름을 날리길 원하지만 늘 최윤에게 밀리는 이경신 역에 발탁됐다.

뮤지컬 ‘등등곡’에서 이경신 역을 맡은 황두현. 나인스토리 제공

뮤지컬 ‘등등곡’에서 정진명을 연기하는 박선영. 나인스토리 제공


이들은 각자 마음 속 깊이 품었던 생각을 드러내고 욕망을 분출하며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는다. 새로운 소재가 선사하는 흥미로움과 함께 개성 강한 인물들이 각기 다른 색깔로 뿜어내는 에너지가 무대를 채운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TOM1관. 8월 11일까지.

전시 ‘리얼 뱅크시’(REAL BANKSY: Banksy is NOWHERE)
발랄하고 전복적인 상상력, 현실을 뒤흔들다

‘꽃 던지는 소년’(2003년), ‘펄프 픽션’(2004년), ‘몽키 퀸’(2003년)….
영국 출신의 ‘얼굴 없는 화가’로 유명한 뱅크시의 작품 13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국내에서 열린 뱅크시 전시 중 최대 규모다. 1998년부터 최근까지 20여 년간의 작품세계를 볼 수 있다.
뱅크시를 좋아하는 이들 중에는 영국에 가서 그의 작품이 그려진 곳을 일일이 찾아다니기도 한다. 힘들게 발품을 팔지 않고 한 자리에서 뱅크시의 작품을 볼 수 있어 요즘 가장 ‘핫한’ 전시로 꼽힌다.
뱅크시는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기에, 뱅크시가 설립한 인증기관인 ‘페스트 컨트롤’을 통해 진품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선 페스트 컨트롤의 공식 인증을 받은 뱅크시 작품 29점을 선보인다. 뱅크시 작품 대다수는 스프레이 벽화로, 이 중 일부를 뱅크시가 승인한 기관을 통해 석판화로 만든다. 페스트 컨트롤은 그 진위를 확인한다.


뱅크시의 ‘꽃 던지는 소년’.                      아튠즈 제공
뱅크시의 ‘꽃 던지는 소년’. 아튠즈 제공


전시는 총 4개 섹션으로 구성돼 지하 4층에서부터 시작한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뱅크시가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지역에 세운 ‘월드 오프 호텔(Walled Off Hotel·벽에 가로막힌 호텔·2017년)’ 영상과 영국에 만든 ‘디즈멀랜드’(2015년) 영상을 볼 수 있다. ‘월드 오프 호텔’은 가자지구의 장벽 바로 옆에 뱅크시가 세운 숙박시설. ‘세상 최악의 뷰를 자랑하는 호텔’이라고 홍보하며 지난해까지 운영됐다. 끝을 알 수 없는 분쟁에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
‘디즈멀랜드’는 파파라치에게 둘러싸인 신데렐라, 아름다운 호수 위 난민 보트 등으로 디즈니랜드를 풍자했다. 이들 작품은 세계적 분쟁에 따른 폭력과 차별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14m 높이의 디즈멀랜드 드로잉도 그려져 있다. 그 옆에 회전목마가 있다. 회전목마는 디즈멀랜드의 분위기에 맞춰 전시팀이 제작했다. 한 개 층씩 올라가며 작품을 관람하면 된다.


뱅크시의 ‘풍선을 든 소녀’를 보는 관람객.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뱅크시의 ‘풍선을 든 소녀’를 보는 관람객.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풍선을 든 소녀’(2004∼2005년)는 2019년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된 직후, 액자 아래로 그림이 스르르 내려가면서 문서 파쇄기를 통과하듯 저절로 파쇄돼 화제가 됐다. 전시에는 이 작품의 다른 에디션을 볼 수 있다. 소더비 경매 때 작품이 파쇄돼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모습을 담은 영상도 나란히 배치했다.


뱅크시의 ‘네이팜’.                   아튠즈 제공
뱅크시의 ‘네이팜’. 아튠즈 제공

베트남전쟁 때 네이팜탄으로 피해를 입은 소녀의 두 팔을 맥도널드의 대표 마스코트인 로널드와 미키마우스가 양쪽에 잡고 있는 ‘네이팜’(2003년)도 있다. 이들 기업의 돈이 다른 한쪽에서는 무기로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자본주의의 그늘을 비판한 뱅크시의 작품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아이러니한 현실에서 뱅크시는 작품 판매 수익을 난민과 전쟁 피해자 등을 위해 사용하며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발랄하면서도 전복적인 상상력이 놀랍고 유쾌하다. 예술이 현실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서울 종로구 그라운드서울. 10월 20일까지.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뮤지컬#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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