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호 교수, 日강점기 작품 분석
“작가들이 민족정신 고취하려 해”
카프문학 이끌던 한설야 작품 등
식민지 노동계층의 고단함 담아
조선인 여성 ‘나’는 평소 일본인을 동경한다. 일본인처럼 머리카락을 손질하고, “일본인 같다”는 말을 들으면 더없이 행복해한다. 일본 남성과 결혼까지 한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남편은 서툴게 일본인 흉내를 내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시도 때도 없이 나를 구박하고 멸시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오빠가 일본군에게 붙잡힌다. 독립운동을 하다 끌려온 것이다. 슬퍼하는 나를 향해 남편은 차갑게 “(조선인은) 못된 근성이 없어질 날이 없다”고 비난한다.
분노한 나는 남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만주에서 선생이 돼 조선인 아이들을 교육하기로 마음을 다잡은 것이다. 나는 이렇게 되뇐다. “나는 알았나이다. 총과 칼이 세력 있는 시대에는 어디를 물론하고 강한 자가 문명인이요, 약한 자가 야만인인 것을.”
192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단편소설 ‘그릇된 동경’이다. 당선자의 필명은 김덕혜. 낯선 이름이지만 사실 당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문학단체인 카프(KAPF)를 이끌던 소설가 한설야(1900∼1976)가 필명으로 응모한 것이다.
최근 연구서 ‘근대 신춘문예 당선 단편소설: 동아일보 편’(사진)을 펴낸 손동호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 교수(44)는 25일 “동아일보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엔 일본의 허위를 고발해 민족정신을 고취한 작품이 눈에 띄게 많았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조선 민중의 표현기관’을 자임했습니다. 그래서 신춘문예에서 일제에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도 거침없이 뽑았죠. 당시 독자들에게 동아일보가 인기를 끈 이유죠.”
손 교수는 “당선작은 주로 당대 팍팍한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냈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1929년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인 박남조의 ‘젊은 개척자’는 가난 때문에 일본인 밑에서 일하는 조선인 남성 태신의 고민을 그렸다. 일본인 주인은 태신을 아껴 양자로 삼으려 한다. 일본인 여성도 태신에게 연정을 표한다. 하지만 태신은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고 떠난다.
손 교수는 또 “노동자 계급을 내세워 하층민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작품도 눈에 띈다”고 평가했다. 한 예로 1935년 단편소설 부문 선외(選外·입선에 들지 못함) 가작인 김정혁의 ‘이민열차’는 일본인에 의해 만주에 있는 회사 직공으로 팔려가는 조선 여성의 모습을 그려냈다. 이별의 정을 나누는 여성을 기다리는 일본인의 자동차가 “빵 하고 호령”하고, 여성들이 떠나간 조선을 “찬 바람만 휙휙 몰려가고 몰려온다”고 묘사한 점이 눈길을 끈다.
다음 계획을 묻자 손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신동아 등 신문 자매지의 독자 참여제도를 분석하는 등 잡지를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더 폭넓게 언론이 문학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연구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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