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에서 사자를 실제 보고 읊은 경우는 드물다. 한자문화권 안에서 접하기 어려운 동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한시에서도 최치원처럼 사자탈 공연을 보고 쓴 것이나(‘鄕樂雜詠’) 그림 속 사자에 대해 읊은 경우를 제외한다면 사자에 대한 한시를 찾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구한말 역관 김득련(金得鍊·1852∼1930)이 모스크바의 동물원에서 사자를 보고 남긴 시는 이채롭다.
시인은 1896년 특명 전권공사 민영환을 수행하여 러시아에 갔다. 시인이 생물원(生物院)이라 부른 그곳엔 처음 보는 동물들이 많았는데 그중에 사자가 있었다. 실제 사자를 보고 쓴 시는 이전에도 있기는 했다. 1419년 베이징으로 사행을 간 장자충(張子忠)이 정화(鄭和)가 남해원정에서 가져온 사자, 기린, 얼룩말을 보고 시를 남긴 바 있다.(‘判書公朝天日記’) 하지만 이를 명나라 영락제의 덕치를 보여주는 상서로운 징조라고 보았을 뿐 사자의 모습에 대한 묘사는 없었다. 이때 실제 사자 그림이 조선에 전해졌지만 그림의 행방은 알 수 없다.
과거 우리 지식인들에게 사자는 가상(假想)의 존재였다. 송나라 주희(朱熹)는 사자를 좋아하던 외손자에게 육탐미의 사자 그림을 보낸 적이 있는데, 함께 부친 편지에서 떨쳐 포효하면 뭇 짐승들을 두렵게 만드는 사자를 닮길 바란다고 썼다.(‘答黃直卿’) 주희가 우리 지식인들에게 미친 영향을 고려하면 우리 역시 사자에 대해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시인은 예상했던 모습과 다른 초라한 사자의 모습에 당황했던 듯하다.
동물원 동물들의 삶을 애정 어린 시각으로 조명한 왕민철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동물, 원’(2019년)에도 사자가 나온다. 이젠 늙고 병들어 수컷 사자의 상징인 탐스러운 갈기마저 빠져버린 사자의 모습에서 백수의 왕으로서의 위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영화에는 동물원에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동물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수의사와 사육사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영화에선 야생 동물은 스스로를 동정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시인은 잡혀 온 동물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또 공연에 동원되어 인간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동물에 대해 애처로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戱象’). 독일의 동물학자 알렉산더 소콜로브스키는 동물원에 잡혀 온 동물(고릴라)이 자유를 잃어버린 슬픔을 극복하지 못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유인원의 정신에 대한 관찰) 시인은 1864년에 개장한 러시아 최초의 동물원을 구경하며 우리에 갇힌 사자의 전락(轉落)에 마음 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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