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카 한 획’ 부가티… 새 역사 그린다[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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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스바겐 인수 후 하이퍼 스포츠카로 재탄생
2026년 출시 예정 모델 ‘투르비옹’ 이달 공개
V형 16기통 엔진, 3D프린팅 부품으로 새로움 더해
아날로그식 계기 등 브랜드만의 우아함은 그대로


폴크스바겐 그룹이 크로아티아 스포츠카 업체 ‘리막 오토모빌리’와 손잡고 내놓은 부가티의 최신 하이퍼 스포츠카 ‘투르비옹’. Bugatti Automobiles S.A.S.
폴크스바겐 그룹이 크로아티아 스포츠카 업체 ‘리막 오토모빌리’와 손잡고 내놓은 부가티의 최신 하이퍼 스포츠카 ‘투르비옹’. Bugatti Automobiles S.A.S.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부가티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강력함과 호화로움, 우아함을 겸비한 스포츠카로 한 시대를 풍미한 자동차 브랜드다. 20세기 후반 들어 자동차 시장 재편으로 설 자리를 잃고 역사 저편으로 사라질 뻔했지만 이탈리아 사업가 로마노 아르티올리의 열정으로 부활한 데 이어 폴크스바겐 그룹 인수 이후 제2의 역사를 시작한 것이 불과 사반세기 전 일이다.

새로 출발한 부가티는 2004년에 최고출력 1001마력을 내는 엔진을 얹은 ‘16.4 베이롱’으로 본격적인 ‘하이퍼 스포츠카’ 시대의 문을 열었다. 이어 2016년에는 처음으로 최고출력 1500마력의 벽을 깬 ‘시롱’으로 자동차 역사에 다시 새로운 장을 썼다.

2021년 폴크스바겐 그룹은 부가티를 지속가능한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파트너와 손을 잡았다. 독보적 고성능 전기 동력원 기술을 보유한 크로아티아 스포츠카 업체 ‘리막 오토모빌리’가 그 주인공이다. 리막 오토모빌리와 폴크스바겐 그룹 계열 포르셰는 공동 출자를 통해 부가티 리막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미래형 하이퍼 스포츠카의 새 시대를 열 새 모델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첫 결실이 6월 말에 모습을 드러냈다.

투르비옹은 간결한 실내와 섬세한 계기가 이루는 대비로 기능적 이면서도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투르비옹은 간결한 실내와 섬세한 계기가 이루는 대비로 기능적 이면서도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6월 20일 부가티로부터 초청받은 참관객 300여 명에게 먼저 공개된 새 모델의 이름은 ‘투르비옹’이다. 전작인 베이롱과 시롱은 과거 모터스포츠에서 부가티의 명성을 높인 자동차 경주 선수들을 기리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붙인 차다. 그러나 투르비옹은 기계식 시계의 정확성을 높이는 장치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는 전기차 시대에도 기계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새로운 이름처럼 투르비옹은 이전과 다른 개념과 기술을 담았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부가티 역사상 처음으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쓴다는 점이다. 부가티는 시스템을 이루는 핵심 구성 요소들, 즉 가솔린 엔진과 전기 모터, 고전압 배터리 등을 새로 개발했다.

새 동력계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역시 가솔린 엔진이다. 투르비옹의 심장은 영국 엔지니어링 업체인 ‘코스워스’와 함께 개발한 새 V형 16기통 엔진이다. 그동안 부가티 차들은 폴크스바겐 그룹이 개발한 W형 16기통 엔진에 네 개의 터보차저를 더해 높은 출력을 끌어냈다. 새 엔진은 기통 수만 이전 모델과 같을 뿐 알파벳 V자처럼 양쪽으로 갈라진 실린더 블록 형태를 비롯해 구조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최신 탄소섬유 소재로 만든 뼈대와 인공지능(AI)으로 개발하고 3D프린팅으로 만든 서스펜션 부품, ‘브레이크 바이 와이어’ 전자식 제동 시스템 등 눈으로 쉽게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새롭다. 그러나 부가티의 상징인 말굽 모양 그릴과 역사 속 명차들에서 영감을 얻은 투톤 차체 색, 기능과 미학의 조화를 표현한 차체 형태는 115년 브랜드 역사와 전통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다.

도어를 위로 들어 열면 눈에 들어오는 우아한 실내에서도 이전 모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다만 세부 요소의 섬세함과 정교함은 전보다 더 깊이가 느껴진다. 특히 스티어링 휠 너머에 자리를 잡은 계기들은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속 550㎞까지 표시된 속도계를 중심으로 좌우에 놓인 크고 작은 아날로그식 계기들은 하나같이 정교하게 세공한 기계식 시계와 닮았다. 간결한 실내 분위기와 대비되는 모습이 돋보일 뿐 아니라 차 이름이 뜻하는 바를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계기 외 나머지 실내 요소에 절제미를 최대한 표현하려는 노력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독특한 구조로 만든 스티어링 휠은 허공에 뜬 듯한 모습이다. 이리저리 돌려도 가운데에 있는 부가티 로고는 고정돼 있다.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은 감춰져 있다가 필요할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 스포티한 형태의 시트도 실내를 이루는 곡면과 마치 하나가 된 듯한 분위기를 낸다. 모든 부분이 기능적이면서도 우아한 부가티만의 개성을 담고 있는 셈이다.

투르비옹 첫 구매자가 차를 받는 시기는 2026년이 될 예정이다. 부가티는 투르비옹을 250대 생산할 계획인데 지난 몇 년간 생산량을 되짚어 보면 2029년까지는 꾸준히 만들어질 듯하다. 가격은 380만 유로(약 57억 원)부터 시작하고 주문 내용에 따라 값은 더 오를 수 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부가티의 역사를 경험할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기꺼이 감당할 만한 투자일 것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스타일매거진q#스타일#스포츠카#폴크스바겐#투르비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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