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음식 서빙후 식탁앞에서 공연
부산-양양 등 입소문 타고 인기몰이
신인 배우들에겐 무대경험 제공도
26일 서울 중구의 뮤지컬 펍 ‘쇼플릭스’. 오후 8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웃고 떠들던 손님들이 일제히 식당 앞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검정 유니폼과 앞치마를 입은 배우 6명이 안개 효과 사이로 등장했다. 방금까지 와인과 감바스를 서빙하던 직원들이 뮤지컬 ‘록키호러쇼’의 캐릭터들로 변신한 것. 이들은 화려한 색감으로 변하는 조명 아래서 이 작품의 킬링 넘버 ‘타임 워프’를 노래하고 춤췄다. 10여 분간 이어진 공연이 끝나고, 손님들은 수저와 스마트폰 카메라를 내려놓은 채 손뼉 치며 환호했다. 손님 채모 씨(27)는 “밥을 먹으며 공연을 관람하는 건 일반 공연장에서는 상상 못 할 특별한 경험”이라며 “일상에 치여 극장에 가지 못했던 아쉬움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이 뮤지컬 펍은 오래전 쌀 창고로 사용되던 층고 높은 건물을 170석 규모 식당 겸 공연장으로 개조한 것이다. 공연장용 음향·조명 설비를 갖추고 배우 18명을 섭외했다. 사장 곽현걸 씨는 “뮤지컬 팬이 늘어났지만 값비싼 티켓, 경직된 관람 문화로 인해 공연을 쉽게 즐기긴 어려워졌다”며 “관객에겐 편안한 공연을, 신인 배우들에겐 무대 경험을 제공하고자 뮤지컬 펍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뮤지컬 펍이 ‘낮은 장벽’을 앞세워 젊은층 호응을 사고 있다. 서울 종로구의 ‘캐스팅’은 입장료 1만5000원에 매일 다른 공연을 제공한다. 1만 원대 음료를 주문하면 배우가 직접 서빙한다. 직장인 권지은 씨(28)는 “뮤지컬을 보려면 티켓 값 10만 원은 기본, 저녁밥도 거르고 공연장에 뛰어가야 한다”며 “뮤지컬 펍은 그보다 저렴한 가격에 객석 ‘1열’ 자리에서 공연을 보고 밥까지 먹을 수 있으니 가성비가 좋다”고 했다.
여기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경험소비 트렌드와 국내 뮤지컬 시장 성장세도 영향을 미쳤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지난해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약 4591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였다. 부산 수영구 ‘시카고’에서는 새빨간 롱부츠를 신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킹키부츠’ 등 광안대교 야경을 바라보며 뮤지컬 갈라쇼를 감상할 수 있다. ‘시카고’ 사장 김민지 씨는 “10대부터 40대에 이르는 젊은 손님들의 호응이 좋다. 대구, 남해 등 멀리서도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무대 경험이 소중한 신인 배우들에게는 성장의 발판이 된다. 강원 양양의 ‘양리단길호텔 Y라운지’ 무대에 서는 배우 김혁주 씨는 “올해 준비하던 공연 두 편이 무산돼 오디션을 찾아보던 중 뮤지컬 펍을 발견했다. 관객과 직접 소통하며 연기할 수 있어 더욱 즐겁고 배우는 점이 많다”고 했다. ‘캐스팅’ 사장 이재호 씨는 “오디션 문이 좁은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무명 배우들이 경험을 쌓고 즉석에서 캐스팅 제안도 받는 등용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원종원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오늘날 뮤지컬 산업은 단순 공연 관람을 넘어 관객이 교류, 소비하는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다”며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변모한 대학로 대신 뮤지컬 펍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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