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선 철학 전공자들마저 난색을 표할 만큼 어려워 논란이 된 문제가 등장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의 미학과 관련된 지문을 읽고 푸는 문제였다. 그런데 정답률은 수험생의 절반에 가까운 45%에 육박했다. 정반합 등 헤겔 철학의 핵심을 몰라도, 심지어 지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훈련된 기술을 적절히 활용만 하면 문제를 맞힐 수 있게 된 수능의 현실을 보여준 것이다.
저자들은 현재의 수능이 출제 원리나 정답을 찍는 기술 등이 유출된 ‘해킹’ 사태라고 진단한다. 해킹에는 드라마에 나오는 입시 브로커나 뒷거래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패턴 파악에 재능 있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최근 수년간 수능 및 모의고사 기출문제를 들여다보면 그만이다. 사교육계의 유명 강사들의 능력이 바로 이런 것이다.
수능 제도가 어떻게 변질돼 왔는지 추적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저자들은 현직 의사와 SF 소설가지만 수능 사설모의고사 출제 경험이 있는 등 사교육 시장의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저자들은 수능 패턴 고착화가 해킹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수능 출제를 담당하는 한국교육평가원의 역대 원장 11명 가운데 3년 임기를 채운 이는 3명에 불과하다. 수능 난이도 조절 실패, 출제 오류 등의 비판을 받고 떠나기 십상이다. 저자들은 평가원이 자신들의 보신을 위해서라도 난이도 유지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출제 경향의 고착화, 문제 유형의 경직화가 발생했다고 꼬집는다. 이 틈을 파고들어 사교육 시장의 스타 강사들이 족집게식 문제풀이 방식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수능에 있어 ‘이해’보다 ‘기술’ 습득이 각광받으며 재수생은 늘고, 사교육은 팽창한다. 2024학년도 수능 응시자 중 N수생 비율은 35.2%로 2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1년 사교육비 총액은 23조4000억 원, 2022년은 26조 원을 기록하는 등 매년 사교육 지출은 늘고 있다. 킬러 문항, 의대 증원, N수생 등 교육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국 사회에 유용한 참고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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