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출신 소설가인 저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85일 기록
오랜 친구 만난 순간 미사일 피격… 몸에 이름 적은 채 목숨 걸고 피란
슬퍼할 겨를 없이 일상화된 죽음… 진영 너머 전쟁 속 인간 모습 담아
◇집단학살 일기/아테프 아부 사이프 지음·백소하 옮김/532쪽·2만2000원·두번째테제
잔잔한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햇빛은 따사로웠고, 바람은 선선했다. 그런데 갑자기 폭발음이 들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로켓이 창공을 가른 뒤 남은 연기만이 보였다. 훈련이라 생각했다. 가자지구에선 이런 일은 늘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폭발음은 갈수록 심해졌다. 깨달았다. 일회성 포격이 아니었다. 급히 해안으로 헤엄쳤다. 비명이 사방에서 들렸다. 차를 탄 뒤 미친 사람처럼 차를 몰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전쟁이 시작된 건지, 험악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어떤 사람들은 하마스의 짓이라고 했다. 다른 이들은 별일 아니라 했다. 지난해 10월 7일. 저자가 겪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첫날이다.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 문화부 장관이자 소설가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겪은 경험을 담은 에세이다. 저자는 가자지구 북부에서 이스라엘군의 첫 폭격을 맞았던 지난해 10월 7일부터 이집트로 탈출한 같은 해 12월 30일까지 85일을 일기로 썼다. 전쟁의 참혹함을 담은 이 일기는 미국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에 실려 주목받았다. 이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책 초반부 저자는 담담하게 전쟁을 묘사한다.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전쟁은 일상이기 때문이다. 전쟁 첫날 바다에서 같이 헤엄치던 아들을 어디에 두고 왔냐는 질문에 저자는 “상어한테 던져 주고 왔다”고 농담한다. 전쟁 넷째 날 저자는 자신이 머물던 호텔이 공습받은 뒤 태연하게 이렇게 쓴다. “뉴스를 읽지 않는다. 우리 삶 전체가 뉴스 아닌가.”
호들갑 떨지 않는 건 생사가 운이기 때문이다. 전쟁 서른 번째 날, 저자는 거리에서 오랜 친구가 길을 건너는 모습을 봤다. 잠깐 수다 좀 떨자고 불렀다. 친구는 화장실에 먼저 다녀오겠다 했다. 잠시 후 우레 같은 소리가 울렸다. 사방에서 고성이 들렸다. 미사일이 떨어진 것이다. 길 하나를 두고 친구는 죽고, 저자는 살았다. 이 외에도 저자의 처제는 미사일 공습으로 숨졌다. 조카딸은 두 다리와 한 손을 잃었다.
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저자는 가자지구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북부에서 출발해 남부의 이집트 국경까지 향하는 길에 절망으로 가득한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은 손발에 자기 이름이나 가족 전화번호를 새기고 있었다. 죽더라도 자기 시신이 확인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시체가 가득한 피란길을 걷다 저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디가 공격당할까? 이번에는 누가 살해당할까? 누가 살아남을까? 사는 걸 견딜 수 없는 일로 만드는 질문들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저자는 열다섯 살 아들과 이집트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저자의 가족과 이웃은 여전히 가자지구에 있다.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비명이 들렸다. 잔해가 보였다. 나는 여전히 그곳(가자지구)에 서 있었다.”
솔직히 책을 읽는 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비극을 재미난 읽을거리로 소비하는 듯한 마음이 들어서다. 또 누군가가 읽기엔 ‘살해’, ‘집단학살’ 같은 저자의 단어 선택이 과하다는 반발심이 들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안네의 일기’를 읽으며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당시 평범한 유대인의 마음을 생각하듯 ‘집단학살 일기’를 통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잠시 생각해보면 어떨까. 복잡한 사안에서 누군가의 편을 들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를 깊게 들여다보는 일이 먼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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