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런던 등서 텍스타일 전시 열려
국립현대미술관도 ‘근현대자수’展
잊힌 역사 재조명 과정서 주목받아
“주제의식-테크닉 지니면 예술품 돼”
물감과 붓으로 그린 회화부터 통조림 수프, 바나나와 덕트 테이프는 물론 인공지능(AI)이 만든 이미지까지. ‘이것도 미술관에 넣을 수 있을까?’ 싶은 것들이 현대 미술관의 문턱을 넘나드는 가운데 최근에는 실과 바늘로 만든 자수와 태피스트리를 조명하는 움직임이 국내외로 일고 있다.
미국 워싱턴 내셔널갤러리는 20세기 초반부터 현대까지 돌아보는 ‘짜인(Woven) 역사: 직물과 모던 추상’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안데스 문명과 현대 미국 작가를 조명하는 ‘고대와 모더니즘 예술의 직조 추상’전을 열고 있다. 영국 런던 공공미술관인 바비컨센터도 ‘풀기: 예술에서 텍스타일의 파워와 정치’전을 선보인다. 현대미술관은 왜 실과 바늘에 주목할까? ● 잊힌 역사의 재조명
섬유를 소재로 한 예술은 여성 예술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졌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순수 예술 대접을 받지 못했던 텍스타일을 20세기 초 여성 예술가들이 적극 활용했고, 1960, 70년대에는 페미니스트 예술가들이 저항의 표현으로 생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는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도 여성 예술가 재조명 과정에서 탄생했다. 박혜성 학예연구사는 “2017년 ‘신여성 도착하다’ 전시를 준비하며 일제강점기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조시비)에 자수를 배우러 간 한국 여성이 많았음을 알게 됐고 여기서 연구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서는 학생, 장인이 만든 자수는 물론 추상 등 새로운 표현을 시도한 흔적을 만날 수 있다. 1992년 개인전을 마지막으로 미술계에서 자취를 감춘 송정인 작가가 그중 하나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권복혜를 사사한 그는 철망, 마대, 그물 등 낯선 재료와 파격적 기법을 사용해 눈길을 끈다. 1967년 ‘새 시대’에 기고한 글에서는 “미술과 자수는 사용하는 재료가 다를 뿐 뚜렷한 주제 의식과 시공에 대한 감각, 테크닉을 지닌다면 예술품이 될 수 있다”고 썼다.
서울 강남구 에스파스 루이비통 서울에서 개인전 ‘착륙’을 여는 셰일라 힉스도 1960년대부터 활동했지만 최근에야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착륙’전은 커다란 섬유 덩어리를 쌓거나 다채로운 색감의 덩굴이 흘러내리는 모습 등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힉스의 ‘착륙’(2014년)과 ‘벽 속의 또 다른 틈’(2016년) 등을 전시한다.
● ‘반복 노동’의 매혹
실과 천이 주는 따뜻한 느낌, 만져보고 싶은 질감, 독특한 작업 방식 등은 현대 미술가들에게 새로운 표현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국 근현대 자수’전에 삼베에 금실로 자수를 놓은 작품 ‘무제’ 등을 전시한 이강승 작가는 “처음에 소외된 장르이자 반복적 노동을 한다는 자수의 개념적 의미를 가져오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다 ‘반복 노동’의 매혹에 빠졌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자수를 놓는) 노동의 고통만큼 작업이 완성됐을 때 만족감도 크다”며 “취미로 십자수를 해본 분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반복적 바느질을 하는 동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것이 중요했다”며 “(반복 노동 속에서 깊은 생각이 나온다는 점에서) 개념 미술과 공예는 상반된 개념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자수에서 사용되는 모양을 회화로 그린 써니 킴의 ‘Underworld’(1999년), 자수를 재료로 ‘자아 탐구’를 그린 최환성의 ‘불가분의 유동’(2023년) 등도 선보인다. ‘한국 근현대 자수’전은 8월 4일까지. ‘착륙’전은 9월 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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