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지우고 ‘브로맨스’ 변형… 지나친 ‘조폭 미화’는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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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넘는 콘텐츠]〈10〉 드라마 ‘조폭고’ 원작 웹소설
웹소설 수위 낮춰 ‘누아르’ 느낌… 고교생 몸 빙의된 조폭 재미 살려
웨이브-티빙-왓챠서 동시 공개… 태국-인도네시아서 1위 달려

드라마 ‘조폭인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에서 고등학생 송이헌(윤찬영·왼쪽)이 조폭 조직원과 싸우고 있다. 넘버쓰리픽쳐스 제공
드라마 ‘조폭인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에서 고등학생 송이헌(윤찬영·왼쪽)이 조폭 조직원과 싸우고 있다. 넘버쓰리픽쳐스 제공

“지친다. 학교가 싫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 티빙, 왓챠가 지난달 29일부터 동시 공개한 드라마 ‘조폭인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조폭고)의 한 장면. 중년 남성 조폭 김득팔(이서진)은 왕따 고등학생 송이헌(윤찬영)이 쓴 일기를 우연히 읽다 이런 대목을 발견한다. 일기에서 이헌은 학교 폭력을 당하는 삶을 토로하며 “다 그만두고 싶다. 죽고 싶다”고 쓴다.

‘조폭인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웹소설 표지. 리디북스 제공
‘조폭인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웹소설 표지. 리디북스 제공
득팔은 불의의 사고로 이헌의 몸에 ‘빙의’된 상황.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태블릿PC에 저장된 이헌의 일기를 찾는다. 이헌을 이해하기 위해 일기를 읽던 중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한 이유를 알게 된다.

드라마와 달리 웹소설 플랫폼 리디북스 등에 2021∼2022년 연재된 동명의 원작 웹소설에선 같은 장면에 ‘동성애 코드’가 가득하다. 이헌이 괴롭힘을 당한 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들켰기 때문이라는 설정이다. 원작에서 이헌은 일기에 “화장실에 들어가니까 안에 있던 애들이 나왔다. 게이 새끼랑 같이 화장실을 쓰기 싫다고 한다. 처음 보는 애들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게이인 걸 알고 있다”고 토로한다. 원작 제목엔 남성 간 연애물을 뜻하는 ‘BL’(Boys Love) 표시가 들어 있고, 성인 인증을 거쳐야 내용을 읽을 수 있다.

원작에서 이헌은 동성 친구 최세경(봉재현)을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한다. “고개만 돌리면 반대쪽 창가 자리에 앉은 세경이가 작게 보인다. 턱을 괴고 웃는 세경”이라며 몰래 짝사랑하는 상황을 그려낸다. 이헌이 세경을 사랑하는 건 ‘동경’ 때문이다. 왜소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과 달리 완벽한 외모와 성격으로 ‘킹카’로 사는 세경이 부럽기 때문이다. 이헌의 몸에 빙의한 득팔은 세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환장하게 생겼고, 키도 큼직해 허우대는 멀쩡했다. 저런 학생이 아들이라면 부모님은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아시아 OTT 플랫폼 VIU의 태국, 인도네시아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는 드라마는 이헌과 세경의 관계를 ‘우정’으로 규정하고, 조폭이 왕따 고교생의 몸에 빙의한다는 설정에 집중한다. 재벌의 혼외자로 숨죽이며 살아가는 이헌과, 검사 아빠 아래에서 힘든 삶을 사는 세경이 친구로서 서로를 위로하며 나아가는 이야기로 바꾼 것. 마치 ‘브로맨스’를 그리는 홍콩 누아르 영화처럼 느껴진다. 극 중에서 이헌은 일기에 “세경이도 같은 반이라서 좋다. 세경이랑 친구가 되고 싶다” 정도로 언급한다.

이처럼 각색된 건 대중적 가치관에 민감한 드라마 특성상 동성애 코드를 전면에 내세우기가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어서다. ‘조폭고’ 제작진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BL 장르는 제작비 투자나 회수에 한계가 있다”며 “작품을 ‘브로맨스’로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다만, 드라마는 조폭을 미화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조폭인 득팔이 오랫동안 모범 시민으로 살아오기를 꿈꿨으나 가난 때문에 삶의 궤적이 바뀌었다거나, 수능을 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조폭 코미디 영화 ‘두사부일체’(2001년), ‘달마야 놀자’(2001년)를 생각나게 한다. 상대적으로 자극적인 내용을 더 많이 담고 있는 웹소설을 대중이 소비하는 드라마로 만들 때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브로맨스#조폭고#드라마#웹소설#조폭인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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