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은 수어가 모국어인 소수 집단… 더 많은 농인 사제 배출되길”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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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초 농인 사제 박민서 신부
5월 농인교회 주제 박사학위 받아… “힘들었지만 지도교수 응원 큰힘 돼”
두 살 때 홍역 앓아 청각-언어 장애… 해외선교 사제로 美서 사목 활동중

수어로 미사를 집전하고 있는 박민서 신부. 박 신부는 “한국의 농인 신자가 1만 명 정도 되지만 농인 신부는 제가 유일하다”며 “좀 더 많은 농인 사제가 배출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민서 신부 제공
수어로 미사를 집전하고 있는 박민서 신부. 박 신부는 “한국의 농인 신자가 1만 명 정도 되지만 농인 신부는 제가 유일하다”며 “좀 더 많은 농인 사제가 배출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민서 신부 제공

“‘당신이 포기하면 가톨릭 농인(聾人·청각장애로 인해 수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 교회에 대한 논문을 쓰는 농인은 아마 없을 것’이라는 말에 힘을 냈습니다.”

박민서 베네딕토 신부(56)는 지난달 26일 동아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논문지도 교수님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박 신부는 올 5월 미국 시카고 가톨릭연합신학대학원에서 ‘에파타! 시노달리타스에 관한 시노드에 응답하는 농인 교회’를 주제로 실천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아시아 최초의 농인 사제. 2021년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으로부터 해외선교 사제로 발령받아 현재 미국 워싱턴 대교구에서 사목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농인 사제가 농인들의 신앙생활에 관해 직접 연구하고 논문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 농인 사제가 20여 명밖에 안 돼 그동안 농인의 입장에서 신앙생활을 연구한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가능하면 기사에서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 대신 ‘농인’이라는 말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수어로 의사소통하는 차이만 있을 뿐, 이것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이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올 5월 미국 시카고 가톨릭연합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있는 박민서 신부. 박민서 신부 제공
올 5월 미국 시카고 가톨릭연합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있는 박민서 신부. 박민서 신부 제공
그는 논문에서 “많은 농인 학자가 ‘농인을 장애인으로 보지 않고 언어적 소수 집단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썼다. 농인은 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다를 것이 없어서다. “모든 기준과 시선은 청인(聽人·청력의 소실이 거의 없는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지요. 하느님 앞에서 청인과 농인은 평등합니다. 청인의 입장과 기준으로 농인을 판단하는 것은 농인들을 힘들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어로 논문을 쓰는 것은 일반인도 쉽지 않은 일. 수어가 모국어 역할을 하는 대부분의 농인에게는 몇 곱절 더 힘든 길이다. 그는 두 살 때 홍역으로 청각·언어 장애를 가졌다. 박 신부는 “대부분의 한국 농인에게 한국어는 제2의 외국어”라며 “여기에 한국 수어와 많이 다른 미국 수어도 따로 배워야 했다”고 말했다. 강의를 듣는 데는 미국 수어 통역사 2명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의 농인 신자는 약 1만 명. 서울대교구 에파타성당, 인천교구 청언성당 등 농인성당이 있지만 대부분은 일반 성당에서 수어 통역으로 미사에 참례한다. 박 신부는 “다른 나라 말을 통역을 통해 들으면 답답한 것처럼 수어 통역으로는 신부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당연히 농인 사제나 수어를 하는 일반 사제가 직접 주관하는 미사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농인 사제는 여전히 그가 유일하다.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올 2월 서울대교구 명동대성당에서 김동준 부제가 부제품을 받았다. 김 부제가 사제가 되면 농인으로는 두 번째 신부가 된다.) 한국에서 가톨릭 사제가 되려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남자여야 하고, 장애가 있는 경우 천주교 교구장이 예외적으로 허락해야만 사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박 신부는 “저도 당시 서울대교구장인 고 정진석 추기경님이 농인을 위해 사목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예외적으로 특별히 사제품을 주었던 것”이라며 “앞으로는 좀 더 많은 농인 사제가 배출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농인#사제#박민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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