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좁은 지하철 운전실, 기관사의 얼굴이 갑자기 사색이 된다. 평상시 상비하고 다니는 지사제를 먹어도 소용없는 배탈이 난 것. 한번 운전대를 잡으면 2시간 30분 동안 절대 내릴 수 없다. ‘똥 대기’로 불리는 대기 기관사를 태우기 위해서는 아직도 몇 개 정거장을 더 가야 한다. 고독한 운전실에서 맞은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기관사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부산 지하철 2호선 현직 기관사인 저자가 쓴 에세이다. 대도시에 사는 평범한 이라면 누구나 이용하는 지하철의 세계를 새로운 각도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일터이자 삶의 공간인 지하철과 그 역사에서 만나는 동료와 승객들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무리하게 지하철 문으로 돌진한 경험, 승객이라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중에서도 비가 오는 날이면 출몰하는 일명 ‘쟈철 에페’가 공포의 대상이라고. 마치 펜싱의 에페 종목 선수처럼 닫히는 문을 향해 우산을 꽂아 넣는 이들을 말한다. 정시 운행을 사수해야 하는 기관사들에게는 기피 1순위다. 진상 승객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다. 지하철에서 갑자기 쓰러진 이를 돕기 위해 승객들이 나선 감동의 순간도 포착한다.
저자가 종착역에서 늘 한다는 안내 방송은 마음에 위로를 준다. “우리 열차의 마지막 역인 양산역입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모두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안 좋은 일, 슬픈 일들은 열차에 두고 내리시면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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