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른다며 늘 호들갑을 떤다.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은 나중에나 느껴도 된다며 다른 감정들을 폭군처럼 쫓아낸다. 결국엔 13세 소녀 라일리의 마음을 조정하는 ‘감정 컨트롤 본부’를 독차지한다.
하지만 이 캐릭터는 미워하기엔 사랑스럽다. 악역이라기엔 너무 귀엽게 생겼기 때문이다. 튀어나온 두 눈은 끊임없이 사방을 살핀다. 커다란 입은 늘 고성을 지른다. 파 뿌리처럼 위로 쭉 뻗은 머리카락, 가슴팍까지 올려 입은 바지, 끈을 꽉 조여 맨 부츠 때문에 어쩐지 안쓰러워까지 보인다. 디즈니 픽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 2’를 보고 나온 관객이라면 새로 등장한 캐릭터 ‘불안’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국내 개봉한 ‘인사이드 아웃 2’는 9일 오전 11시 반 기준으로 누적 관객 수 700만166명을 기록하며 ‘700만 고지’를 넘어섰다. 전편인 ‘인사이드 아웃’(2015년) 497만 명을 훌쩍 뛰어넘었고, 지난해 개봉해 724만 명을 동원해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흥행 1위를 기록한 ‘엘리멘탈’의 성적은 이르면 이번 주말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인사이드 아웃 2’는 ‘겨울왕국 2’(1376만 명) ‘겨울왕국’(1032만 명)에 이어 국내 애니메이션 흥행 기록 3위에 오르게 된다.
관객들 사이에선 부정적으로 묘사되던 ‘불안’이란 감정을 긍정적으로 표현한 것이 흥행 이유로 꼽힌다. 처음 디즈니 픽사 스튜디오 제작진은 불안을 칙칙한 회색 괴물로 그렸다. 공룡처럼 등과 꼬리엔 뿔을 그렸다. 화가 날 땐 덩치가 커져 공포를 자아냈다. 귀엽고 사랑스럽게 생긴 ‘기쁨’과 반대로 묘사한 것이다.
하지만 제작진은 10대의 심리에 대해 연구할 수록 인간이 미래의 예기치 못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불안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십 차례의 회의를 거쳐 불안을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그렸다. 또 “‘기쁨’은 몰라. 대비를 안 한다면 위험한 걸” 같은 명대사를 만들었다. 그 덕에 틱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캐릭터는 불안이다. 귀여운 외모 덕에 2회 이상 관람하는 ‘N차’ 관람객 사이에선 불안이 그려진 텀블러, 열쇠고리, 교통카드 등 굿즈(기념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40, 50대를 사로잡은 점도 흥행에 영향을 끼쳤다. CGV에 따르면 ‘인사이드 아웃 2’ 관람객 중 40대는 32.9%, 50대는 8.2%다. 전편 ‘인사이드 아웃’ 관람객 중 40대는 27.1%, 50대는 4%였던 것에 비해 중·장년층 비중이 늘어난 것. 전편이 ‘기쁨’, ‘슬픔’ 등 기초적인 감정에 호소했다면 속편은 ‘불안’, ‘당황’, ‘따분’, ‘부럽’ 등 복잡한 감정으로 중장년층의 눈높이를 맞췄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서지명 CGV 커뮤니케이션팀장은 “9년 전 전편을 본 관객들이 시간이 지나 속편을 보러왔다”며 “13세 소녀 라일리와 비슷한 연령대의 사춘기 자녀와 부모가 가족끼리 영화를 보러 오기도 했다”고 했다.
상영 기간 중 관객의 호평을 이끌어 낸 다른 경쟁작을 찾기 어렵다는 것도 ‘독주’ 이유로 꼽힌다. 탕웨이, 박보검, 수지 등 호화 캐스팅으로 관심을 끈 영화 ‘원더랜드’는 지난달 5일 개봉했지만 관객 62만 명에 그쳤고, 지난달 27일 IPTV에서 VOD(주문형 비디오) 서비스에 들어갔다. 3일 공개된 영화 ‘탈주’ 관람객 수가 80만 명에 그치는 등 여름 텐트폴(거액의 제작비와 유명 배우를 동원해 흥행을 노리는 작품)의 부진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2022년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487만 명을 동원하며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흥행 1위에 오르는 데 이어 애니메이션 영화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한국 영화계도 아이뿐 아니라 성인도 사로잡는 애니메이션 시장에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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