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을 그만둔 이유 [소소칼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13일 1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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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더워지고 겉옷이 얇아지니 다시 트레이닝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헬스장을 검색했는데 마침 근처에 새로 생긴 곳이 있었다. 그 헬스장은 아파트 단지들 사이 익숙한 장소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헬스장이 없어졌다 생기길 반복하는 곳이었다.

헬스장 안내판에는 기본 12회부터 시작해 P.T 수업 횟수를 늘릴 때마다 얼마나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횟수를 늘릴수록 회당 수업료가 낮아졌다. 상담 트레이너는 반년은 넘게 운동을 배워야 효과가 나타난다며 회원들의 ‘비포·애프터’ 사진을 내밀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많은 횟수를 끊고 싶지 않았다. 잊을 만하던 들려오던 헬스장 폐업 사건이 떠올랐다. 막상 받아보니 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동네 헬스장 치곤 비싼 값에 수업을 받아야 했지만, 두 달만 먼저 받아보기로 했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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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연장하라는 압박은 횟수가 다섯 번 정도 남았을 때부터 시작됐다. 수업이 모두 끝나면 생각해 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했지만, 트레이너는 집요했다. 반드시 수업이 끝나기 전에 연장 결제를 받으라는 특명을 받은 듯했다. 요청과 거절이 반복되니 수업을 받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살갑던 트레이너도 점점 냉담해져갔다. 이렇게 남은 수업을 볼모로 잡아 마음에 부담을 주면서 지갑을 열도록 만드는 게 헬스장의 전략일 거란 생각도 들었다. 막바지에 이르자 트레이너는 혼자 운동하고 있을 때도 다가와 마음이 바뀌었는지 물었다. 특별히 할인해 줄 테니 200만 원이 넘는 수업료를 한 번에 결제해야 한다고 했다.

트레이너의 제안을 거듭 거절하며 점점 주눅이 들었다. 헬스장에선 마땅히 보여야 할 덕목들이 있다. 이를테면 무거운 운동기구를 힘든 기색 없이 훅훅 들어 올리는 것,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것, 옷을 걷어 터질 듯한 근육과 핏줄을 내보이는 것. 또는 트레이너에게 쿨하게 카드를 건네는 것. 이 공간은 ‘너 근육도 없는데 돈도 없는 게냐’며 한 사람의 자존감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트레이너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어느 날 “헬스장을 옮길 테니 남은 수업 횟수를 차감해 환불해 달라”고 했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련 없음. 동아일보DB
헬스장이 선납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회원들이 운동을 가장 열심히 할 땐 돈을 낸 지 얼마 안 됐을 때라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회당 얼마’라는 효용 감각은 떨어지고, 헬스장을 찾지 않게 된다. 그런 회원이 많아지면 헬스장은 붐비지 않고 더 많은 회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집착은 트레이너들에 대한 실적 압박과 회원들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지고 만다.

반대로 뭉칫돈을 한 번에 내는 회원들은 큰 위험을 안게 된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매년 헬스장에서 발생하는 계약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3000건 이상이고, 합산 피해 금액은 40억 원이 넘는다. 이마저도 피해자가 신고하는 비율은 10% 미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해액이 작아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헬스장 계약 관련 분쟁이 잦아지자, 코네티컷 같은 일부 주들은 총액의 일정 비율 이상을 선납 받을 수 없도록 법으로 제한해 버렸다. 호주에선 헬스장들이 최대 1년 치만 선납 받을 수 있고, 계약 기간이 3개월보다 적게 남았을 때만 계약 연장 관련 논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다행히 국내에도 월 구독형 헬스장이나 선납 이용료를 예치 받아 보호해 주는 서비스가 등장하는 등 회원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헬스장 가격표시제’처럼 유명무실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소소칼럼#헬스장#트레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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