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가벼운 듯 뼈 있는 삶의 단상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13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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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고백/김영민 지음/256쪽·1만8800원·김영사


옳고 그름, 내 편과 네 편, 흑과 백을 분명히 가르면 세상사는 편해질 것 같지만 그 경계는 언제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시간이 지나면 그 사이의 무언가가 삐져나와 ‘정말 그게 맞아?’라고 물으며 판을 흔들곤 하는데, 저자는 이런 판을 흔드는 말을 ‘드립’이라고 규정한다. 드립은 인터넷에서 흔히 헛소리나 딴소리 같지만, 뼈가 있는 말을 의미하는 데 사용됐던 용어다. 저자는 이런 드립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서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인생이 농담은 아니다. 누구나 넘어지면 아프고, 살갗이 찢어지면 피가 난다.…생존에 관한 한 인간은 맷돌처럼 진지하다. 그러나 인간은 끝내 진지하기만 할 수는 없다.…삶은 종종 부조리와 경이를 간직한 모호한 현상이므로, 때로는 구름을 술잔에 담듯 삶을 담아야 한다. 드립은 바로 언어로 된 그 술잔이다.”

서문이 끝나면 저자가 일기, 메모, 웹사이트를 통해 남겼던 짧은 글들이 펼쳐진다. 약 1500개가 넘는 문장을 365편으로 추리고 1부 ‘마음이 머문 곳’, 2부 ‘머리가 머문 곳’, 3부 ‘감각이 머문 곳’으로 나눴다. 각각 인생, 배움, 예술에 대한 문장들이다.

그 문장들은 “잘 먹고 플랭크를 하니 배로 가던 살들이 길을 잃고 온몸에서 방황하는 것 같다”며 피식 웃음을 짓게 하다가도, “인간은 필멸자다. 인생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우아한 패배다”라며 삶의 깊은 곳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런가 하면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어릴 적 글짓기 숙제,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던 아끼던 제자가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며 마지막 연락을 전해 온 이야기, 북토크를 하며 느낀 감정 등 일상 속 단상도 있다. 만화 ‘슬램덩크’, 영화 ‘패터슨’이나 살바도르 달리, 카라바조,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한 생각도 담았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문장들은 맷돌 같은 진지함과 구름 같은 허무함을 오가는 기술인 듯하다.

#인생#일기#메모#짧은 글#글짓기 숙제#일상 속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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