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트 라이트, 빅 시티… 그리고 옛사랑[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13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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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내려다본 로스앤젤레스 야경. 쭉쭉 뻗은 도시의 가로등 불빛이 별빛처럼 보인다.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내려다본 로스앤젤레스 야경. 쭉쭉 뻗은 도시의 가로등 불빛이 별빛처럼 보인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최대 도시 로스앤젤레스(LA)는 박찬호, 류현진이 뛰었던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LA다저스와 한인타운으로 유명하다. 그런가 하면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을 그린 영화 ‘라라랜드’의 감동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LA에선 2026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2027년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결승전 슈퍼볼, 2028년 올림픽 같은 세계적 스포츠 이벤트가 잇따라 열린다.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세계 엔터테인먼트 수도이자 미술관과 박물관의 도시 LA를 찾아가 보았다.

● 꿈꾸는 별들의 도시

‘라라랜드’에서 남자 주인공이 ‘City of Star’를 부른 허모사 비치의 잔교.
‘라라랜드’에서 남자 주인공이 ‘City of Star’를 부른 허모사 비치의 잔교.
라라랜드는 2016년에 개봉했지만 LA를 찾는 사람에겐 영원한 현재다. 누구나 스타가 되기를 꿈꾸는 ‘별들의 도시(City of Star)’에서 아련한 옛사랑을 되새길 수 있는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LA에서 라라랜드 속 배경을 찾아가는 첫 번째 코스는 허모사 비치다. LA 도심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인 이 해변은 해 질 녘 하늘이 분홍빛과 보랏빛으로 물들 때 찾아야 한다. 스페인어로 허모사는 ‘아름답다’라는 뜻. 해변에서 바다로 길쭉하게 뻗은 잔교(棧橋)를 걸으며 남자 주인공 서배스천(라이언 고슬링)이 노래 ‘City of Star’를 부른다.

‘라라랜드’ 두 주인공이 만난 ‘더 라이트하우스’ 카페.
‘라라랜드’ 두 주인공이 만난 ‘더 라이트하우스’ 카페.
해변에서 벗어나면 바로 앞에 ‘더 라이트하우스’ 카페가 있다. 재즈 피아니스트 서배스천이 배우 지망생 미아(에마 스톤)와 첫 데이트를 한 곳이다. 서배스천은 미아에게 재즈의 매력을 이야기한다.

“재즈는 그냥 듣는 음악이 아니에요. 얼마나 치열한 대결인지 직접 봐야 하죠. 저 친구들을 보세요. 방금 곡을 가로채서 멋대로 가지고 놀잖아요. 매번 새로워요. 매일 밤이 초연이에요.”

1940년 문을 연 이 카페는 전설적 뮤지션 마일스 데이비스, 쳇 베이커도 연주했을 만큼 유명한 재즈클럽. 지금도 매일 밤 재즈 피아노와 밴드 공연이 펼쳐진다. 음악을 들으며 바에서 칵테일이나 맥주 한잔하기에 좋다.

다음 발걸음은 두 사람이 탭댄스를 추던 언덕이다. LA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리피스 천문대와 캐시스 코너가 있다. 1935년 개관한 그리피스 천문대에는 테슬라 코일, 태양계 행성 모형을 비롯해 천문학 등에 관한 다양한 전시품이 있다. 천문대 앞에는 배우 제임스 딘(1931∼1955) 동상도 서 있다. 그가 주연한 영화 ‘이유없는 반항’(1955년)에도 이곳에서 촬영한 장면이 나온다.

커다란 ‘할리우드(Hollywood) 사인’이 세워져 있는 산 너머로 주홍빛 노을이 검붉게 짙어질 즈음, LA 다운타운의 쭉쭉 뻗은 도로들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진다. LA가 별들의 도시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노을을 배경으로 서배스천과 미아가 노란색 드레스와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탭댄스를 춘 곳은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약 1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있는 캐시스 코너다. 둘은 그리피스 천문대 ‘푸코의 진자’ 앞에서도, 천체투영관에서도 하늘로 떠올라 별 속에서 춤춘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에 만난 두 사람. 사랑에 빠지면서도 서로의 꿈을 응원한다. 이 영화가 다른 멜로영화와 달랐던 점은 엔딩 장면.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꿈을 향해 가고 결국 성공한다. 그러나 사랑은 깨져버린 후다. 사랑하면서도 꿈을 포기할 수 없는, 21세기 젊은이의 사랑법이다.

밤하늘 별처럼 빛나는 도심의 무수한 불빛을 바라보며 영화 속 불안한 미래의 젊은 연인들 대사를 떠올린다.

“우리 지금 어디쯤 있는 거지?”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

● 올림픽 3번 치르는 경기장

올림픽 개막식만 3차례 치르게 된 LA 메모리얼 콜리시엄.
올림픽 개막식만 3차례 치르게 된 LA 메모리얼 콜리시엄.
LA 시내 엑스포지션 공원에 있는 LA 메모리얼 콜리시엄은 세계 최초로 올림픽 개막식이 3번이나 열리게 되는 경기장이다. 1932년과 1984년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쓰였고 2028년 올림픽 주경기장으로도 쓰일 예정이다. 올 5월 3∼7일 열린 미국 최대 여행박람회 ‘2023 IPW’ 개막 파티도 여기서 열렸다. 저녁이 되면 메모리얼 콜리시엄은 분홍빛과 푸른빛 파스텔톤 조명으로 빛난다. 1923년 고대 로마 콜로세움을 본떠 디자인한 이 경기장 입구 기둥에는 실제로 콜로세움에서 가져온 돌이 전시돼 있다.

항공사 유나이티드항공(UA)이 후원을 하고 있어 ‘UA 필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메모리얼 콜리시엄에서 운동경기만 열린 것은 아니다. 1960년 7월 존 F 케네디가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을 했고, 1990년 6월에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책)에 반대하며 27년간 수감됐다 풀려난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 투사 넬슨 만델라가 찾았다. 1987년 9월에는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다. 이곳을 찾은 세계적 명사들 얼굴은 동판으로 만들어져 입구에 걸려 있다.

IPW2024 개막 파티에서는 경기장 주변에 유럽 한국 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코너가 마련됐는데 ‘코리안 바비큐’가 단연 인기였다. 커다란 그릴을 걸어놓고 고추장 양념을 한 고기를 구워줬다. ‘Bulgogi(불고기)’ ‘Samgyepsal Gui(삼겹살 구이)’ ‘Banchan(반찬)’이라고 쓴 간판 앞에 밤늦도록 몰려든 사람들이 줄을 선 것을 보고 한식의 인기를 실감하게 됐다.

LA는 약 300억 달러(약 41조 원)를 들여 LA국제공항(LAX) 현대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 호텔 객실을 크게 늘리고 새로운 미술관 및 전시장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내년에는 영화 ‘스타워즈’의 조지 루커스 감독을 기리는 ‘루커스 박물관’이 개관할 예정이다.

● 박물관과 미술관 도시

로스앤젤레스 게티 센터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게티 센터 미술관.
미 동부에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다면 서부에는 LA 게티 센터가 대표적인 미술관이다. 게티 센터는 미국 최대 석유 재벌이던 진 폴 게티(1892∼1976)가 평생 모은 미술품을 전시한다. 샌타모니카산 해발 270m 지점에 있는 게티 센터는 주차장에서 노면전차 트램을 타고 5분 정도 오르면 그 위용을 드러낸다.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한 것으로 웅장한 요새를 방불케 한다. 무료로 개방되는 게티 센터는 한 해 200만 명 이상이 찾는다.

게티 센터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아이리스’를 비롯해 모네, 마네, 고야를 비롯한 세계적 화가의 명작이 즐비하다. 이달 21일까지는 카미유 클로델(1864∼1943) 특별전이 열린다. 유명한 조각가 오퀴스트 로댕의 조수이자 모델, 연인이던 클로델의 ‘왈츠’ ‘샤쿤달라’ 같은 대표작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영화 ‘카미유 클로델’(1988년)에서 로댕과의 스캔들을 만천하에 알리게 된 작품 ‘성숙의 시기(중년)’는 시간과 죽음, 노화와 청춘을 생각케 한다. 누군가 먼 곳으로 데려가려는 늙어가는 남자를 벌거벗은 젊은 여인이 두 손을 내밀어 붙잡으려고 하는 이 작품은 감동적이다. 태평양 연안에 있는 또 다른 정원 속 미술관 게티 빌라에는 고대 그리스, 로마, 에트루리아 유물이 소장돼 있다.

아카데미영화박물관.
아카데미영화박물관.
할리우드에 문을 연 아카데미영화박물관도 가볼 만하다. 매년 아카데미영화제를 주최하는 영화예술아카데미(AMPAS)가 2021년 문을 연 최신 박물관이다. 이탈리아 건축가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유리돔 천장 아래 5층 테라스에 서면 할리우드 언덕이 바라다보이는 탁트인 전망이 기막히다. 박물관에는 영화 ‘대부’(1972년) 촬영 세트, ‘죠스’(1975년)의 상어 같은 흥미로운 전시가 펼쳐진다. 아카데미영화제 시상식 무대를 재현한 공간에서는 2020년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기생충’ 봉준호 감독의 얼굴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 앞 조형물 ‘어반 라이트’. 1920, 30년대 가로등 202개를 복원했다.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 앞 조형물 ‘어반 라이트’. 1920, 30년대 가로등 202개를 복원했다.
아카데미영화박물관 옆 LA카운티미술관(LACMA) 앞마당에는 조형물 ‘어반 라이트(Urban Light·도시의 빛)’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1920년대와 1930년대 글렌데일과 애너하임을 비롯해 남부 캘리포니아 거리에 있던 실제 가로등 202개를 복원해 숲처럼 꾸며 놓은 크리스 버든의 작품이다. 야자수 사이로 클래식한 가로등들이 밤거리를 따뜻하게 밝혀준다.


글·사진 로스앤젤레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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