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를 딱 읽으면서 냄새가 코에 들어간다고 상상해보세요. 시가 훨씬 감각적으로 와닿겠죠.”
12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시인의 목소리는 들에 나와 풀꽃 향기를 음미하는 사람처럼 생생했다. 종이와 잉크에 천연향을 입힌 향기시집 ‘잠시향’(존경과행복)을 낸 나태주 시인 얘기다. 시인은 국내 1호 향기 작가 한서형 씨와 협업해 ‘향기시집’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 데 이어 오는 9월 사랑, 소망, 감사, 행복 각각의 주제와 향을 짝맞춘 향기시집 시리즈를 낼 예정이다. 시인은 독서의 본질이라 할 이 경험을 오감으로 극대화하고 싶어했다. “그동안 시를 시각, 청각과 연합하려는 노력은 아주 많았다”며 “‘만져지는 시집’, 촉각시집 등 또 다른 감각을 일깨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출판계에서 시각뿐만 아니라 후각, 촉각, 청각 등을 활용한 이른바 ‘오감 마케팅’이 뜨고 있다. 출판계 불황에 출판사와 서점들이 독자에게 적극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대표적인 감각이 시각이다. 다산북스는 박경리 작가의 ‘토지’ 완간 30주년을 기념해 ‘반 고흐 에디션’을 선뵀다. 토지 20권을 고흐 작품 20점으로 각각 감쌌다. 고흐가 그린 19세기 말 남부 프랑스의 드넓은 가을 정경이 그 시절 최참판댁에서 내려다본 평사리 평야와 닮았다. 반 고흐 에디션은 서울국제도서전 선공개 당시 최고 화제작 가운데 하나였다. 어느새 서른 살이 된 토지가 고루한 대하소설에 머물지 않고 젊은 독자와 새로운 접점을 만들고 있는 것.
민음사는 최근 K-팝 씬에서 주목받는 일러스트레이터들과 협업해 ‘세계문학 일러스트 에디션’을 16면 화폭의 ‘병풍 책’ 형태로 고안했다. 책을 펼치면 일러스트가 풍경처럼 펼쳐진다. 그림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고, 글은 하단 6분의1 지점에만 담았다. 모파상의 ‘달빛’을 작업한 권서영 일러스트레이터는 “문장을 그대로 재현하는 그림이 아니라 이야기를 견인해가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열린 책들은 반려동물 백과사전 ‘개와 고양이 의학 사전’(열린책들)을 만들면서 손끝에 닿는 질감이 포근하고 따뜻한 천 양장을 택했다. 종이는 잘 찢어지고 물에 젖으면 손상되지만 천(직물) 표지는 오래 소장할 수 있고 유행을 덜 탄다. 704쪽, 8만 원에 이르는 가격에도 3일 만에 재판을 찍었다. 도서전 당시에도 독자들이 만져보고 책의 만듦새에 관심을 가졌다. 문학동네는 특정 번호로 전화하면 시를 읽어주는 ‘전화 시집’ 서비스를 운영 중이고, 창비가 도서전에서 선보인 ‘시와 어울리는 음악 듣기’ 부스에는 헤드셋을 낀 젊은 독자들이 몰렸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책 취향을 미각에 빗댄 ‘북다이닝’ 부스를 운영 중이다. ‘극강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는 코스’에선 로맨스 소설 ‘말하고 싶은 비밀’을 소개하고, ‘정신이 번쩍 드는 매콤한 코스’에선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를 추천하는 식이다. 교보문고 강남점은 칸타타와 협업해 각 원두에 어울리는 도서를 추천한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책을 ‘읽다, 보다’ 1차원적인 감각에서 벗어나 책을 ‘맛보다, 음미하다’ 등 다른 감각으로 접근해 독자에게 새로운 재미를 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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