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시집 낸 나태주 “다음은 촉각”
‘토지’ 20권 표지마다 반고흐 명작
전화하면 시 읽어주는 서비스도
책 취향-미각 맞춘 ‘북다이닝’까지
“‘하늘 아래 내가 받은/가장 커다란 선물은/오늘입니다’를 읽는 부분에서 향기를 맡을 수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시를 훨씬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겠죠.”
나태주 시인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말 향기가 나는 시집 ‘잠시향’(존경과행복)을 냈고, 올 9월에는 사랑, 소망, 감사, 행복 각각의 주제와 향을 짝맞춘 향기시집 시리즈를 낼 예정이다. 나태주 시인은 “독서가 주는 즐거움을 오감을 통해 극대화하고 싶었다”면서 “‘향기시집’에 이어 이후에는 ‘만져지는 시집’, 촉각시집 등을 통해 또 다른 감각을 일깨워 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출판계에서 시각뿐만 아니라 후각, 촉각, 청각 등을 활용한 이른바 ‘오감 마케팅’이 뜨고 있다. 출판계 불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좀 더 새로운 경험을 독자들에게 선사해 눈길을 끌려고 하는 것. 체험형, 참여형 콘텐츠를 중시하는 MZ세대들의 ‘경험 소비’ 트렌드를 적극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트렌드는 대하소설 ‘토지’도 외면할 수 없었다. 박경리 작가의 ‘토지’ 완간 30주년을 기념해 이달 말 ‘반고흐 에디션’(다산북스)을 선보이는 것. 토지 20권 표지를 고흐 작품 20점으로 각각 감쌌다. 이른바 ‘박경리×반고흐’ 콜라보 작품인 셈이다. 두 예술인이 언뜻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고흐가 그린 19세기 말 남부 프랑스의 드넓은 가을 정경에서 최참판댁에서 내려다본 평사리 평야가 연상된다는 평들도 나오며 관심을 끌고 있다.
민음사는 최근 K팝에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들과 협업해 ‘세계문학 일러스트 에디션’을 16면 화폭의 ‘병풍 책’ 형태로 고안했다. 책을 펼치면 일러스트가 풍경처럼 펼쳐진다. 그림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고, 글은 하단 6분의 1 지점에만 담았다. 모파상의 ‘달빛’을 작업한 권서영 일러스트레이터는 “문장을 그대로 재현하는 그림이 아니라 이야기를 견인해 가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촉각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책도 있다. 반려동물 백과사전 ‘개와 고양이 의학 사전’(열린책들)은 손끝에 닿는 질감이 포근하고 따뜻한 천 양장을 택했다. 종이는 잘 찢어지고 물에 젖으면 손상되지만 천(직물) 표지는 오래 소장할 수 있고 유행을 덜 탄다. 8만 원(704쪽)에 이르는 가격에도 출간 사흘 만에 재판을 찍었다.
‘오디오북’ 형태는 진화하고 있다. 문학동네는 특정 번호로 전화하면 시를 읽어주는 ‘전화 시집’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앞서 창비가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선보인 ‘시와 어울리는 음악 듣기’ 부스에는 헤드셋을 낀 젊은 독자들이 몰렸다. 마치 음반 사듯이 시집을 고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오감 만족 마케팅은 급기야 미각까지 확장했다. 교보문고가 올 4월 광화문점에 마련한 ‘북다이닝’ 부스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선 테이블 위에 음식 대신 책이 손님을 맞고 있다. 책 취향을 미각에 빗대, ‘극강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는 코스’에선 로맨스 소설 ‘말하고 싶은 비밀’을 소개하고, ‘정신이 번쩍 드는 매콤한 코스’에선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를 추천하는 식이다. 각각의 부스를 돌며 도장을 찍는 ‘스탬프 이벤트’에는 한 달 만에 9000명 넘는 고객이 참여했다. 한기호 출판평론가는 “책이 정보만 담아내는 그릇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을 끌어내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게 출판계 내 전반적인 공감대”라며 “일본에선 300여 개 악기를 최고의 음원으로 들을 수 있는 음악도감이 나오는 등 공감각과 오감을 자극하려는 흐름은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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