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夏至)엔 햇감자에 맥주 어때요?”…절기별 즐거움 담은 에세이 ‘제철 행복’[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18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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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정신없이 고단한 하루를 보내는 당신. 오늘 자그마한 기쁨을 누린 순간이 있는가.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기분 좋은 순간순간이 쌓여 행복을 만든다.

자연이 선사하는 계절의 감각을 느끼며 즐거움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김신지 작가(40)는 에세이 ‘제철 행복’(인플루엔셜)에서 한 해를 이루는 24절기별로 즐길 거리를 제안한다. 작은 더위 속 장마가 찾아오는 소서(小暑·7월 7일 무렵)엔 비 내리는 풍경을 보기 좋은 나만의 ‘비멍당’을 찾아보고, 여름에 이르러 낮이 가장 길어지는 날인 하지(夏至·6월 21일 무렵)엔 햇감자로 만든 음식과 맥주를 맛보자고.

‘제철 행복’은 올해 4월 출간된 지 두 달 만에 2만 권이 판매됐다.(국내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책 판매량 1만 권이다.) 판매 속도는 지금도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독자들은 ‘마음에 쉼을 가져다준다’, ‘계절마다 아껴가며 읽고 싶은 책’이라고 말한다.

김 작가를 16일 전화 인터뷰하고 이 책의 편집자인 허문선 인플루엔셜 편집3팀장(39)을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15일 만났다.

●행복의 단위, 절기

일상 속 작은 기쁨을 찾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김 작가는 계절마다 즐기는 것에 대해 써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사계절을 생각했지만 계절별 구분은 신선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월별로 할 수 있는 것도 떠올렸지만 멋이 없는 것 같았다. 고민하며 달력을 계속 들여다보던 그의 눈에 절기가 들어왔다.

“일년이 24절기로 이뤄져 있으니까 절기로 구분 지어 글을 써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북 문경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이 ‘소만(小滿)에 모내기 하고 망종(芒種)에 보리 거두고’ 같은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나누시거든요. 제가 열아홉 살까지 문경에서 자라 절기에 맞춰 제철 식재료를 먹었고요. 절기는 아주 친숙해서 ‘이거다!’ 싶었죠.”

‘제철 행복’을 쓴 김신지 작가. 김신지 작가 제공

김 작가는 온라인 서점 예스24에서 만드는 소식지 ‘채널예스’에 절기별로 누리는 행복에 대한 글을 10회 연재했다. 이를 눈 여겨 본 허 팀장이 김 작가에게 출간을 제안했다. 연재한 10개 절기에 나머지 14개 절기를 더해 24절기를 모두 담은 책을 만들자고. 허 팀장은 김 작가의 글을 구독하고 북토크에 참여하는 등 그의 팬이라고 했다. 김 작가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평일도 인생이니까’,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 등을 출간했고 여러 권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페이퍼’, ‘대학 내일’ 등에서 에디터로 일하다 전업 작가가 됐다. 허 팀장은 김 작가의 글에 대해 “읽고 나면 행동하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했다.

“작가님이 연재한 글은 보자마자 끌렸어요. 제철 행복이라는 게 빛나는 콘셉트잖아요. 제철 행복이라 명명함으로써 지금 챙겨야 하는 행복이 있다는 게 좋았어요. 젊은층은 절기처럼 오래된 것에 신선함을 느끼고 소소한 즐거움을 통해 삶을 행복하게 꾸려갈 방법에 대한 관심이 높기에 그에 딱 맞는 책이라 판단했죠. 물론 작가님에 대한 ‘팬심’도 작용했고요.(웃음)”
김 작가는 연재를 할 때 단행본 출간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작업을 같이 해보지 않은 허 팀장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뭘까.

“애정을 갖고 책에 대해 기획하신 게 느껴졌어요. 절기별로 일러스트를 넣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허 팀장님은 24개 절기 모두 일러스트를 배치하자고 하더라고요. 한 책에 일러스트를 24개나 넣는 게 출판사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거든요. 제가 원하는 시기에 책을 출간할 수 있다고 한 점도 끌렸어요. 팀장님이 한 해 만드는 책이 4권이어서 (다른 출판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어) 한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는데 이 역시 매력적이었고요.”

‘제철 행복’ 편집자인 허문선 인플루엔셜 편집3팀장이 서울 마포구의 동네책방 겸 작업실 ‘작업책방 씀’에서 올해 5월 열린 ‘작가의 책상’ 전에 설치할 문구를 들고 있다. 김신지 작가의 ‘제철 행복’이 소개됐다. 허문선 팀장 제공

● 나만의 꽃놀이 명소 찾고, 장마 전 자두 먹기

‘제철 행복’은 24절기의 의미와 절기별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담았다. 절기는 음력이 아니라 양력이며, 하루가 아니라 보름 남짓이다. 달력에 적힌 날짜는 절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천구상에서 태양이 1년에 걸쳐 이동하는 경로인 황도 한 바퀴(360도)를 15도 간격으로 나눠 구분한 게 24절기이기 때문이다.


4월 5일 무렵인 청명(淸明)은 산과 들에 꽃이 피어나는 맑고 밝은 봄날이다. 벚꽃을 즐기는 이들이 많은데, 소란함을 피해 자기만의 꽃놀이 명소를 찾아보고 누구와 언제 갈지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놓자고 말한다. 절기별로 ‘제철 숙제’도 3개씩 제안한다. 청명에는 골목길이나 산책로에서 앞으로 1년 간 지켜볼 ‘내 나무’를 정해보고, 청명주와 진달래 화전을 대신할 꽃놀이 페어링 메뉴도 찾아보길 권한다.

까끄라기 곡식인 보리를 베고 모를 심는 시기인 망종(芒種)은 6월 5일 무렵으로, 부지런히 바깥을 즐기기 좋을 때다. 자신이 어디를 좋아하고, 뭘 하면 마음이 편해지며 무얼 먹으면 행복한지를 찾아보고 목록을 작성해보라고 말한다. 살구 자두 앵두처럼 장마 전에 먹어야 더 단 과일을 먹어보길 권한다.

‘제철 행복’에서 작은 것들이 점점 자라서 대지에 가득 차는 때인 소만(小滿·5월 20일 무렵)을 담은 그림. 새끼 오리들이 어미 오리 뒤를 따르고 있다. ⓒ요리

김 작가가 제안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바쁜 일상에 지친 이들도 잠깐만 시간을 내면 마음을 여유롭게 만들 수 있다. 이는 직장 생활을 하며 김 작가가 오랜 시간 행복에 대해 고민한 데서 나왔다.

“번아웃 돼 회사를 그만뒀어요. 회사에서의 마지막 2년은 정말 힘들었어요. 시간과 월급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결국 시간이 있는 삶을 선택했고요. 일에 치여 고단할 때도 오늘치의 기쁨은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에게 챙겨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저만의 방식을 찾아나갔어요.”

김 작가는 지금 이 순간을 천천히 음미하며 기쁨을 느끼면 조금씩 더 행복해 질 수 있을 거라 말한다.

“비 오는 날 우리 동네 도서관 창가 자리 등 좋아하는 장소 목록이 있으면 일상이 풍요로워져요. 멀리 못 가도 이 계절에는 어디가 좋다는 걸 아는 거죠. 지금 무얼 하고 싶은지, 미루지 말고 챙겨야 할 기쁨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늘 살피며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철 행복’에서 작은 더위 속 장마가 찾아오는 소서(小暑·7월 7일 무렵)를 담은 그림. 기와가 있는 곳에서 빗물 웅덩이 행렬을 살펴보자고 제안한다. ⓒ요리

김 작가는 대설(大雪·12월 7일 무렵)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 내리는 어느 날 종묘에 갔다. 그는 반드시 와야 할 곳에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아 기뻤다며 눈이 내리면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장소를 품고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기자는 그의 안목에 감탄했다. 2021년 궁궐, 왕릉 관련 업무를 40년 가까이 한 나명하 당시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장을 인터뷰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계절별로 가기 좋은 궁궐 등 곳곳을 추천하며 “겨울에 눈 내린 종묘의 고요한 정취는 꼭 한번 느껴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고향에 내려가 남편과 함께 감자를 캐고 어머니와 고사리를 딴 일, 고향집에 제비가 집을 짓고 새끼들을 키운 풍경도 담았다. 산책하는 걸 좋아해 살고 있는 동네는 물론 새로운 곳에 가면 골목골목 누빈다. 계절에 따라 가까운 곳을 비롯해 전국 구석구석을 다닌다.
“제가 만 보 이상을 수월하게 걷는 걸 보고 남편이 ‘시골에서 자라 체력이 좋은 것 같다’고 말해요. 농사일을 거들고 감자 박스도 많이 들고 날라서 생활 체력이 길러진 것 같긴 해요.(웃음)”

‘제철 행복’에서 큰 더위와 열대야가 이어지는 여름날인 대서(大暑·7월 22일 무렵)를 담은 그림. 시원한 계곡에서 쉬며 수박을 맛보길 권한다. ⓒ요리

●입하에 꽃보고 소서에 허브 음료 마시며 북토크

‘제철 행복’은 대형 서점은 물론 동네 서점에서도 주문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지역 책방지기의 애정과 입소문으로 책이 나가는 게 참 귀하다고 생각해요. 독서 모임 책으로 선정됐다는 얘기도 자주 들어요. 북토크에 가면 ‘엄마와 같이 읽었다’, ‘딸이 보고 있어서 읽게 됐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요.”(김 작가)

“20, 30대에게 절기가 ‘힙하다’는 걸 알리고 싶었는데, 젊은층을 비롯해 다양한 연령대에서 호평해 주셔서 감사해요. 일러스트레이터인 요리 작가님이 예쁜 색감으로 아기자기하게 그림을 그려주셨어요. 책 표지인 춘분(春分·3월 20일 무렵)을 담은 그림에 봇짐 메고 길 떠나는 사람이 있는데 작가님이 이 그림처럼 북토크를 위해 전국을 다니게 됐어요.(웃음)”(허 팀장)

북토크는 절기별 특성에 맞게 기획하기도 한다. 입하(立夏·5월 5일 무렵)에는 독자들과 꽃을 보러다녔다. 소서에는 수목원에서 기른 허브로 음료를 만들어 마셨다. 하지에는 김 작가의 부모님이 수확한 감자를 요리 공방을 운영하는 김 작가의 이모가 요리해 나눠 먹었다. 부모님이 기른 햇양파와 햇감자를 이날 기념품(?)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제철 행복’에서 여름에 이르러 낮이 가장 길어지는 날인 하지(夏至·6월 21일 무렵)를 담은 그림. 햇감자에 맥주를 즐기기 좋다. ⓒ요리

2010년부터 편집자로 일한 허 팀장은 ‘제철 행복’을 만들며 편집자의 역할에 대해 찬찬히 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그는 인문 예술 만화 요리 소설 등 여러 장르의 책을 만들었다.

“작가 섭외, 트렌드 파악, 홍보 카피 쓰기, 독자 이벤트 기획 등 편집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많아 책을 만드는 게 어렵게 느껴졌어요. 김 작가님은 늘 기분 좋게 소통하고 글 분량이 많으면 ‘넘치니까 뺄게요’라며 마치 칼잡이처럼 자기 글을 확 빼는 걸 보고 놀랐어요. 작가님을 비롯해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와도 손발이 척척 맞아서 책은 여러 사람들의 협업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어요. 저는 편집자로서 그 사이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고요. 외롭고 버겁던 마음이 치유되는 걸 느꼈어요.”(허 팀장)

허 팀장 역시 우수(雨水·2월 19일 무렵)에 도다리쑥국을 먹고, 곡우(穀雨·4월 20일 무렵
)에는 전과 막걸리를 즐기며 자연의 흐름에 따른 재미를 맛보게 됐다.

“‘제철 행복’을 통해 김 작가님을 만나는 분들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앞서 출간한 책들도 읽게 되길 바랍니다. 시각이 참신한데다 글도 정말 잘 쓰기에 고정 독자층을 넘어 충분히 알려지게 만들자는 걸 저만의 목표로 삼았어요.”(허 팀장)

“행복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은 행복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찾으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구체적인 행복에 대해 잘 이야기하는 작가로 인식되면 좋겠어요. 독자들에게 손 내밀며 작은 것이라도 ‘이런 거 같이 해봐요’라고 얘기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김 작가)

■‘제철 행복’(인플루엔셜·2024년)은….
한 해를 구성하는 24절기의 의미와 절기별로 즐길 수 있는 일상 속 작은 즐거움을 담은 에세이다. 절기는 음력이 아니라 양력이고, 하루가 아니라 보름 남짓이다. 천구 상에서 태양이 1년에 걸쳐 이동하는 경로인 황도 한 바퀴(360도)를 15도 간격으로 나눠 구분한 것이 24절기이기 때문이다. 달력에 절기가 적힌 날짜는 절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곡우(穀雨)는 4월 20일 무렵으로 곡식을 기르는 봄비가 내리는 때다. 좋아하는 식당을 찾아 미나리전과 비빔국수에 막걸리를 곁들이면 그만이다. 이른 봄에는 남쪽으로, 늦은 봄에는 북쪽으로 가면 봄꽃을 오래 즐길 수 있다. 가을철 단풍을 오래 보고 싶으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 된다. 단풍은 남하하기 때문이다. 절기별로 제철 숙제도 3가지씩 제안한다. 곡우에는 돌미나리전 먹기, 봄 산 바라보기, 3개월 뒤 나를 위해 즐거운 계획 세우기.

7월 22일 무렵인 대서(大暑)는 큰 더위와 열대야가 이어지는 여름날이다. 이토록 더운 건 무리하지 말고 쉬어가라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성실하게 살아왔다면 더욱 그래야 한다는 것. 바다 수영하기, 얼린 잔에 맥주 마시기 등 자신이 좋아하는 피서법을 적어보고 행동에 옮기면 된다.

처서(處暑)는 더위가 멈추며 가을이 깊어지는 때다. 8월 22일 무렵이다. 옛사람들은 옷, 책, 곡식 등을 마당이나 담벼락에 널어 햇볕을 쬐고 바람에 습기를 말리는 포쇄를 했다. 볕 좋은 날 바깥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눅눅한 몸과 마음을 말려보는 것도 방법이다.
경북 문경이 고향인 저자는 부모님이 농사를 짓기에 틈틈이 고향에 가 농사일을 돕고 제철 음식을 즐기는 풍경도 전한다. 자연이 선사하는 것 하나하나에 경탄하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가까운 곳에 선물이 놓여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저자가 행복을 찾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날씨 좋은 날 점심 시간에 10분이라도 산책하고, 퇴근길에 맛있는 요리를 포장하면서 오늘 일과와 의무 사이에서 틈틈이 행복해지기. 몇 개월 뒤 좋아하는 숙소를 예약해두고 행복해질 시간을 미리 비워두기.

잡지사 등에서 에디터로 일한 저자는 번아웃 끝에 퇴사해 전업 작가가 됐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틈틈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 왔기에 그가 절기에 따라 제안하는 방법은 거창하거나 어렵지 않다. 일상 속에서 맛볼 수 있는 작은 즐거움이 쌓이면 그게 행복이라는 걸 다정하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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