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중반 포르투갈인이 정착하기 시작해 1999년 중국에 반환되기 전까지 100년 넘게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마카오에서는 포르투갈의 향기가 아직도 짙게 남아 있다. 분홍색, 노란색 파스텔톤의 바로크풍 건물이 시내 곳곳에 산재해 있고, 포르투갈의 해산물 요리와 매운 고추, 인도 향신료가 섞인 매케니즈(macanese) 요리가 한국인들의 입맛을 돋군다. ‘동양의 유럽’으로 불리는 마카오는 코로나 이후 대거 오픈한 메가 리조트에 공연장, 전시장,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갖춰 가족여행과 젊은 세대의 호캉스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 성바오로 성당과 역사지구
마카오의 면적(30㎢)은 서울의 자치구인 송파구(34㎢)보다 작다. 그러나 포르투갈 식민시대부터의 오랜 유적지가 몰려 있는 역사지구를 비롯해 럭셔리 호텔이 새롭게 들어선 코타이 스트립, 한적한 콜로안 섬까지 도보와 대중교통을 이용한 골목길 탐험이 흥미를 자아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25개의 광장과 건축물로 이뤄진 역사지구의 출발점은 성바오로(St.Paul) 성당 유적지다. 계단이 펼쳐진 언덕 위에 바로크 양식 성당의 석조 파사드(전면 부분)가 우뚝 솟은 모습은 유럽의 한 도시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성당의 앞면에 새겨진 조각상에는 창세기와 신약성서 내용 뿐 아니라 ‘귀시유인위악(鬼是誘人爲惡·악마가 사람을 유혹해 죄를 짓게 한다)’ 등의 한자가 적혀 있고, 성모상 주변엔 중국과 일본을 상징하는 모란과 국화 문양도 새겨져 있다. 그런가 하면 성당 옆에는 빨간색 현판이 새겨져 있는 도교사원 ‘나차 사원’이 함께 있고, 성당 앞쪽으로는 멀리 황금색 불꽃모양의 그랜드 리스보아 카지노 호텔이 보인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동서양의 문화, 성스러운 종교와 자본주의가 어우러진 마카오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성바오로 성당 유적지엔 원래 예수회가 세운 동아시아 최초의 서양식 대학과 마터 데이 성당이 있었다. 동아시아 가톨릭 선교의 중심대학으로 1562년 목조로 지었다가 화재가 나서 1637년에 전면부만 석조로 재건했는데, 1835년 화재로 또 소실돼 현재는 성당의 전면부와 지하실, 일부 벽면과 계단만 남아 있다.
대항해시대 아프리카와 인도를 거쳐 중국에 도착한 포르투갈 상인들은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1543년 일본 다네가시마에 상륙해 조총과 고추를 전하게 된다. 일본은 포르투갈에게 배운 조총을 이용해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전래된 고추는 조선인들이 붉은색 배추 김치를 먹게 된 계기가 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2022년 개봉한 영화 ‘탄생’에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이 마카오로 유학을 왔던 장면이 나온다. 18살 청년이었던 김대건 등 3명의 유학생은 걸어서 압록강을 건너 만주와 중국을 거쳐 1837년 약 7개월 만에 마카오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들이 마카오에 도착했을 때 성바오로 대학은 2년 전에 불타 버린 후였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며 기도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김대건 일행은 성 바오로 성당에서 멀지 않은 성 안토니오 성당 부설 임시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꽃의 성당’으로 불리는 성 안토니오 성당 내부에는 두루마리를 입은 김대건 신부의 목상이 서 있다. 또한 인근의 카모예스 공원에도 그의 입상이 세워져 있어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성바오로 성당 계단을 내려오면 마카오의 명물인 육포 거리가 이어진다. 길을 걷다보면 가게마다 큼직하게 육포를 썰어서 나눠준다. 상점과 주거 건물이 빼곡이 들어찬 마카오의 골목은 홍콩의 뒷골목 못지 않은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러다가 마주친 예쁜 골목! 색색의 파스텔톤으로 칠해진 집들이 있는 골목 끝 담벼락 위로 성 바오로 성당이 보이는 곳이다. 포르투갈어로는 ‘트라베사 다 파이샹(Travessa da Paixao)’이라고 하는데, 중국어로는 ‘연애항(戀愛巷·연애골목)‘으로 불리는 길이다. 1920년대 만들어진 약 50m의 짧은 골목이지만 데이트, 웨딩촬영, 드라마 촬영으로 유명해진 골목이다. 포르투갈어로는 ‘파이샹’(사랑, 격정)은 원래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뜻하는 단어였으나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연애골목’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이 곳에서 알록달록한 우산을 쓰고 인생샷을 찍는 관광객들도 많다.
마카오 역사지구는 세나도 광장까지 이어진다. 어묵 골목에서는 1889년에 지어진 중국의 부유한 사업가 로우 카우 저택도 구경할 수 있다.
청회색 벽돌로 지은 이층집 내부에는 서양식 스테인드 글라스와 동양화 문양, 대나무가 심어진 정원 등 동서양이 어우러진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포르투갈 식민시절 당시 총독 사무실과 시의회가 있던 세나도 광장은 물결무늬 타일이 깔려 있다.
포르투갈 상선이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 같은 상품을 싣고 가기 위해 빈 배로 왔는데, 배의 무게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싣고 왔던 돌을 활용해 광장의 바닥을 깔았다고 한다. 성도미니크 성당 옆 2층에 있는 ‘포국생활체험관’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면 한결 시원하고 여유롭게 세나도 광장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 가족여행과 호캉스의 도시
“마카오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에 그냥 잠자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호텔과 시설을 새롭게 오프닝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지난해 한국을 찾았던 마리아 헬레나 드 세나 페르난데스 마카오관광청장은 코로나 이후 마카오의 관광전략과 준비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실제로 마카오에는 팬데믹 이후 안다즈, 런더너, 래플스, 그랜드 리스보아 팰리스, 칼라거펠트, 팔라초 베르사체 등 수많은 호텔들이 오픈했다. 또한 기존 호텔도 ‘초대형 복합리조트(IR)’를 표방해 숙박과 함께 미식, 쇼핑, 엔터테인먼트, 국제회의, 전시 등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여행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 이전인 2020년에 마카오 내 호텔은 총 132개였는데, 올해 2월에는 148개로 늘었고 호텔객실도 7000개 가량 늘어났다.
올해 인천 영종도에 문을 연 모히건 인스파이어 리조트에서는 천정 LED화면에 대형 고래가 헤엄치는 영상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마카오의 럭셔리 호텔인 MGM코타이 호텔 로비에서도 매시간 돌고래 쇼가 펼쳐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감을 가졌다. 그런데 돌고래쇼가 시작되자 예상 외로 은박지 풍선으로 된 돌고래 나타나 관람객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것이 아닌가. 관람객들은 어린 아이는 물론 나이 지긋한 분들까지도 동심으로 돌아간 듯 돌고래를 잡으러 쫓아다니며 웃음을 지었다. 자세히 보니 돌고래 지느러미에 자그마한 프로펠러가 달려 있고, 단상 위에는 리모컨으로 조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멀티미디어 영상의 시대에 아날로그 풍선으로 된 ‘돌고래 드론쇼’는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로비에는 또한 청나라 시대 자수 카페트, 설탕 조각품을 비롯한 300여 점의 아트 컬렉션이 있어 무료 감상을 할 수 있다.
마카오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버스 야경투어. 한화 약 2만5000원 정도면 2층 버스 지붕 위 좌석에서 3D 아이맥스 영화를 보는 듯한 압도적 야경을 구경할 수 있다. 베네시안(Venetian)과 파리지앵(Parisien) 호텔에는 실제 크기의 2분의1 크기로 정교하게 세운 에펠탑과 개선문, 리얄토 다리와 두칼레 궁전이 화려하게 빛난다.
그 맞은편에 지난해 5월 오픈한 런더너(The Londoner) 호텔에는 실제와 똑같은 높이(96m)로 재현된 빅벤을 비롯해 웨스트민스터 궁전(국회의사당)이 황금빛 조명을 발해 유럽에서도 볼 수 없는 동시다발적 야경이 펼쳐진다.
또한 검은색과 붉은색, 서치라이트로 장식된 스튜디오 시티(Studio City) 호텔은 영화 배트맨의 고담시티를 모티브로 한 이색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윈팰리스(Wynn Palace) 호텔에서는 15분마다 한번씩 분수쇼 ‘퍼포먼스 레이크’가 펼쳐지는데, 호텔 앞 호수를 가로지르는 ‘스카이 캡 케이블카’(무료)에 탑승하면 공중에 분수쇼를 내려다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MZ세대를 겨냥한 엔터테인먼트 공간도 가족 여행객들을 불러모은다. 런더너 호텔에는 영국의 대표적인 문화 상품인 ‘해리포터 전시장’이 지난해 오픈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마법지팡이를 나눠주고, 호그와트 마법학교 기숙사에 등록하고 각종 마법을 배우는 게임을 하면서 영화 속 세상으로 들어가는 전시다.
해리포터 시리즈와 함께 자란 20~30대 관람객들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닐 정도로 좋아하는 공간이다.
베네시안 리조트에는 3차원의 빛의 향연이 펼쳐지는 ‘팁랩 슈퍼네이처’가 문을 열었는데, 어두운 방에서 마시는 녹차 찻잔 위로 디지털 조명으로 만든 꽃잎과 나비가 날아드는 다도 체험은 특별했다. 1954년부터 마카오의 시내 도로에서 열리는 F3 자동차 경주와 오토바이 경주인 ‘마카오 그랑프리’의 역사를 한 눈에 보여주는 박물관에서는 역대 우승자들의 밀랍인형도 볼 수 있다.
갤럭시 리조트의 안다즈(Andaz) 호텔은 마카오가 기업회의, 컨벤션, 전시를 뜻하는 ‘마이스(MICE) 산업’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보여준다. 지난해 개장한 이 호텔에는 4만㎡ 규모 전시와 회의시설을 갖춘 ‘갤럭시 인터내셔널 컨벤션 센터(GICC)’와 1만6000석 규모의 공연장 시설인 ‘갤럭시 아레나(Galaxy Arena)’도 있다. 이 곳에선 지난해 5월 블랙핑크의 아시아 투어가 열렸고, 올해 10월 26-27일에는 여자아이들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미식의 도시
오랜 기간 포르투갈의 교역항이었던 마카오의 독특한 식문화를 ‘매케니즈(Macanese Cuisine)’라고 한다. 매케니즈에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와 인도, 넓게는 중국, 동남아 등의 다양한 식문화가 포함돼 있다. 리토랄 레스토랑은 대표적인 매케니즈 식당. 조개찜 등 포르투갈식 해산물 요리가 있는 이 곳에는 ‘아프리카 치킨’이라는 이색메뉴도 있다. 마카오에서 웬 아프리카? 포르투갈식 닭구이에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나는 매운 고추에 여러 향신료를 섞은 ‘피리피리 소스’를 사용하는 치킨요리다. 여기엔 인도에서 가져온 코코넛 밀크와 커리 향신료도 들어가기 때문에 대항해시대 포르투갈이 거쳐갔던 나라의 향기가 모두 담긴 요리인 셈이다.
콜로안 빌리지는 마카오 사람들이 주말에 놀러가는 한적한 교외 분위기 나는 곳이 어촌마을이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도둑들’을 촬영한 성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성당 앞 광장 노천식당 등 예쁜 카페가 많아 여유있게 산책하기에 좋다. 한국에 이런 곳이 있으면 당장 ‘콜리단 길’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 같은 분위기다. 이 곳은 또한 마카오의 유명한 간식인 에그타르트를 맛볼 수 있는 원조 가게인 ‘로드 스토우 베이커리와 카페’가 있다.
● 마카오 가는 방법=대한항공이 지난 1일부터 인천~마카오 노선을 첫 취행했다. 대한항공은 이 노선을 주 7회 일정으로 매일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약 3시간 40분. 그간 마카오는 에어마카오(FSC)와 저비용항공사(LCC) 노선만 있었다. 마카오에서 버스를 타고 세계 최장(55km) 해상교량인 강주아오 대교(홍콩~중국 주하이~마카오를 잇는 다리)를 건너면 40분이면 홍콩국제공항에 도착해 홍콩을 관광하고 돌아올 수도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