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소설 ‘동해’ 속의 영화 ‘만춘’은 허구 아닌 실제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23일 03시 00분


美영화 1936년 동아일보에 광고
권영민 교수, 호주서 영상 확보

이상의 소설 ‘동해’(1937년)에 등장하는 1935년작 미국 영화 ‘만춘’의 포스터. 권영민 교수 제공
이상의 소설 ‘동해’(1937년)에 등장하는 1935년작 미국 영화 ‘만춘’의 포스터. 권영민 교수 제공

천재 시인 이상(1910∼1937)이 남긴 마지막 소설 ‘동해’(1937년)에서 주요 모티브로 등장하는 영화 ‘만춘’의 원본 영상이 확인됐다. 그동안 작품 속 허구의 영화로 치부된 ‘만춘’의 실제 영상이 확보된 것으로, 이상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이상 연구에 천착해 온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국문학)는 동아일보 1936년 신문에 게재된 영화 ‘만춘’ 광고를 통해 영화가 실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22일 밝혔다. 권 명예교수는 “이상을 연구하며 수십 년간 이 영화를 찾아다녔는데 결국 호주의 한 영화사에서 보유 중인 영상 파일을 받을 수 있었다”며 “이상은 자신이 경험한 일이나 관람한 영화 등을 얽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메타픽션’ 방식을 잘 활용했는데, 그 사실을 그대로 입증해주는 영화가 발견된 것”이라고 말했다.

동해는 이상의 3대 소설(‘동해’, ‘날개’, ‘종생기’) 중 하나로 ‘임(姙)’이라는 여성을 둘러싸고 주인공과 친구의 삼각관계를 그렸다. 작품에서 어느 날 ‘임’이 ‘나’에게 불쑥 찾아온다. 나의 친구 ‘윤’과 헤어졌다며, 혼자 사는 집에 옷가방까지 싸 들고 찾아온 것. 다음 날 나는 임이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헤어졌다던 남편에게 다가서는 모습을 보고 질린다. 두 사람 사이에 내가 어정쩡하게 끼어들게 된 것. 이때 주인공이 친구 T 군과 보는 영화가 ‘만춘’이다.

권 명예교수에 따르면 ‘만춘’은 1936년 6월 23일부터 일주일 동안 서울 종로구의 단성사에서 상영됐다. 원제는 ‘The Flame Within’(정염·情炎)이다. 미국 MGM사가 1935년 제작하고, 에드먼드 골딩이 감독을 맡았다.

소설 ‘동해’처럼 남녀 간 삼각관계를 그린 영화 ‘만춘’은 정신과 의사 메리가 여성 환자 린다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린다는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약혼자 잭 때문에 실의에 빠져 자살까지 시도한다. 메리의 적극적인 치료 덕에 잭은 8개월 만에 건강해지고, 린다와 잭은 결혼에 성공한다. 하지만 이내 잭은 자신을 치료해준 메리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메리는 혼란에 빠진다. 영화는 메리가 잭에게 린다와의 결혼에 책임이 있음을 상기시키며 끝난다.

권 명예교수는 이상이 시 ‘오감도’를 발표한 지 90주년이 되는 24일 서울 종로구 ‘유심’ 사무실에서 영화 상영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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