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영화계에서 이런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 흥행 성적이 ‘대박’(상업영화 기준 1000만 명 이상) 혹은 ‘쪽박’(100만 명 이하)으로 양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올 들어 22일까지 관객 200만 명을 넘긴 한국영화는 ‘파묘’(1위·1191만 명)와 ‘범죄도시4’(2위·1150만 명) 2편에 불과하다. 올해가 절반가량 남은 걸 감안해도 200만 명 이상 영화는 2014년 13편,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18편과 비교하면 크게 줄었다. 코로나19 이후 극장을 찾는 관객이 줄어든 점을 고려해도 2022년 8편, 지난해 6편과 비교해 흥행 성적이 신통치 않다.
영화계에선 올 들어 200만~500만 명이 보는 ‘중박’ 영화가 사라지면서 시장이 양극화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높은 제작비 없이도 개성 있는 각본과 탄탄한 완성도로 관객을 사로잡는 영화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 부산에서 여성 밀수단이 활동한 사실을 신선하게 재해석한 ‘밀수’(514만 명), 포스트 아포칼립스(종말 이후의 세계를 다룬 작품)라는 독특한 장르로 관객을 사로잡은 ‘콘크리트 유토피아’(384만 명)가 지난해 선전한 것과 비교된다.
올해 여름 텐트폴(거액의 제작비와 유명 배우를 동원해 흥행을 노리는 작품)의 성적도 시원치 않다. ‘탈주’(195만 명), ‘하이재킹’(174만 명), ‘핸섬가이즈’(161만 명)가 200만 명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하이재킹’(6월 21일), ‘핸섬가이즈’(6월 26일), ‘탈주’(7월 3일) 등 비슷한 시기에 영화가 연달아 개봉한 점을 실패 원인으로 지적한다.
유명 배우가 흥행 보증수표가 되지 못하고 있다. 탕웨이, 박보검, 수지 등 호화 캐스팅으로 관심을 끈 영화 ‘원더랜드’는 지난 달 5일 개봉했지만 관객이 62만 명에 그쳤다. 올해 텐트폴 가운데 가장 많은 제작비(185억 원)가 투입된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고 이선균의 유작으로 주목받았으나 열흘 동안 61만 명만 들었다. 올 1월 개봉한 영화 ‘웡카’가 미국 배우 티모테 샬라메 신드롬을 일으키며 353만 명의 동원한 것과 비교된다.
1억9000만 달러(약 2629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가 투입된 ‘듄: 파트2’ 같은 미국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견줄 만한 체급도 없다. 한 영화제작사 대표는 “코로나19를 거치며 전반적으로 투자가 위축됐다”며 “펜데믹 때 개봉하지 못했던 ‘묵은 작품’들을 이제 개봉하니 최근 콘텐츠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흥행 공식에 매몰돼 관람층을 넓히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인사이드 아웃 2’가 808만 명을 동원한 데 이어 ‘슈퍼배드 4’, ‘명탐정 코난: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이 23일 기준 영화 예매율 3, 4위에 오르는 등 외국 애니메이션이 입소문을 타며 성인 관람객들도 대거 극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한국 영화계에선 애니메이션은 아이만 보는 작품이라는 시선이 강하다”며 “외국 애니메이션이 관객층을 성인으로 넓힌 것과 대조적”이라고 분석했다.
31일 조정석 주연 ‘파일럿’, 다음 달 7일 전도연 주연 ‘리볼버’, 다음 달 14일 이선균·조정석 주연 ‘행복의 나라’ 등이 줄줄이 개봉할 예정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24일 공개되는 ‘데드풀과 울버린’ 등 할리우드 영화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시무 영화평론가는 “‘중박 영화’의 실패는 한국영화의 다양성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컴퓨터그래픽(CG)의 질보단 신선한 소재와 완성도 높은 각본이 있어야 높아진 관객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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