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체에 지붕 고정되고 문이 2개인 차량… 마차 시대에 등장해 전동차까지 이어져
스포티한 이미지로 다양한 차종 출시… 전기차 등장에도 여전히 인기있는 모델
럭셔리를 우리말로 옮길 때면 ‘사치’라는 부정적 표현도 종종 쓰이지만 문맥상 ‘호화로움’이나 ‘화려함’으로 번역하는 쪽이 더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 평범함을 넘어서는 가치를 가진 럭셔리의 속성을 더 잘 나타내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자동차 차체 형태 가운데 럭셔리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것은 역시 쿠페와 컨버터블이라 할 수 있다. 공간과 실용성을 고루 고려해 만들어지는 세단이나 왜건, SUV와 같은 장르와 비교하면 쿠페와 컨버터블은 호화로움에 여유를 더한 럭셔리 카의 본질에 더 가까운 속성을 담고 있다. 컨버터블에 관해서는 이 지면에서 몇 차례 다룬 바 있는 만큼 이번에는 쿠페의 특징과 매력에 관해 살펴볼까 한다.
대개 쿠페라고 하면 차체 양쪽에 문이 하나씩 있고 지붕이 고정된 형태의 차를 뜻한다. 자동차의 형태에 관련된 여러 표현이 그렇듯 쿠페 역시 마차 시대에 등장해 자동차로 이어졌다. 쿠페라는 이름은 자르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쿠페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샴페인 잔으로 사랑받는 쿠페 글라스도 같은 뿌리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마차에서는 4인승 네 바퀴 마차의 앞쪽을 잘라내 두 사람만 탈 수 있는 형태로 짧게 만든 것을 ‘카로세 쿠페’ 또는 ‘베를린 쿠페’라고 불렀던 것이 그 시작이다. 마차 시대에는 마부가 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지만 자동차 시대로 접어들어서는 그마저도 필요가 없어져 탑승 공간은 더 짧아졌다. 대신 시간이 지날수록 지붕이 낮아지며 차체에 멋을 부린 형태로 진화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지붕이 고정된 차체에 문이 두 개 있는 2인승 차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굳어지게 됐다.
특히 유럽에서는 그랜드 투어러, 즉 장거리를 빠르고 편안하게 달릴 수 있는 성격의 호화로운 차들이 나름의 입지를 다졌는데 그중에서도 쿠페는 그랜드 투어러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또 뒷좌석 탑승자 중심으로 만들어진 세단과 달리 앞좌석에 앉는 운전자에게 초점을 맞춘 차라는 점에서 쿠페는 운전자의 지위를 상징하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쿠페는 그랜드 투어러와 교집합을 이루며 실용성보다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차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쿠페의 럭셔리 카 이미지는 시간이 흐르면서 대중적 자동차 브랜드들이 비슷한 구조의 차를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데 영향을 줬다.
쿠페는 스타일이 뛰어나고 스포티하다는 이미지도 있다. 이 역시 탑승 공간이 짧은 구조적 특징에서 비롯됐다. 초기 쿠페는 옆에서 봤을 때 엔진이 있는 앞부분이 차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고, 상대적으로 탑승 공간과 짐칸의 비율이 낮았다. ‘롱 노즈 숏 데크’라고 불리는 그와 같은 스타일은 차의 실루엣에 속도감을 부여하는 중요한 특징으로 여러 형태의 차 가운데서도 특히 쿠페에 구현하기가 더 좋다. 나아가 1960년대 이후 탑승 공간 뒤쪽에 엔진을 놓는 미드엔진 배치가 스포츠카 설계에서 떠오른 뒤로는 쿠페의 모습이 한층 더 날카롭고 날렵해졌다. 그래서 쿠페는 스타일이 돋보이는 스포티한 차를 대표하는 이름이 됐다.
그 덕분에 지금은 쿠페와 다른 형태일지라도 스포티한 스타일을 가진 차라면 쿠페라는 표현을 수식어처럼 사용해 묘사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예컨대 날렵한 스타일의 세단을 가리키는 ‘4도어 쿠페’나 지붕이 뒤로 갈수록 낮아지는 모습의 ‘쿠페형 SUV’가 대표적이다.
쿠페와 같은 형태의 차를 가리키는 다른 표현들도 있다. 페라리를 비롯한 이탈리아 브랜드들이 주로 쓰는 베를리네타가 대표적이다. 이는 세단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베를리나’에서 비롯된 것으로 ‘작은 세단’이라는 뜻인데 쿠페의 어원을 생각하면 알맞은 이탈리아식 표현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프랑스 브랜드도 세단을 가리키는 프랑스어 ‘베를린’을 변형한 베를리네트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또 영국에서는 4인승 컨버터블을 가리켜 ‘드롭헤드 쿠페’라고 부르는데 스타일은 쿠페를 연상시키면서 지붕을 열 수 있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으로 보인다.
지금의 럭셔리 카 브랜드에도 쿠페는 모델 라인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애스턴 마틴, 맥라렌 등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쿠페가 모델 라인업의 허리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형태의 차를 만드는 브랜드라도 쿠페를 만들지 않는 곳은 지극히 드물다. 롤스로이스는 첫 전기차 스펙터를 쿠페 스타일로 만들었고, 최근 SUV에 힘을 싣고 있는 마세라티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모델인 그란투리스모가 있다. 벤틀리 역시 컨티넨탈 GT로 부가티도 최근 공개한 투르비옹으로 쿠페 모델을 이어가고 있다.
다가올 미래에도 쿠페는 여전히 인기 있는 럭셔리 카 형태의 하나로 명맥을 이어갈 듯하다. 마세라티의 최신 그란투리스모는 내연기관 모델과 함께 전기 모델인 폴고레(번개를 뜻하는 이탈리아어)가 나왔고, 부가티의 모기업 리막 오토모빌리도 전기 스포츠카 기술을 꾸준히 발전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미래 자동차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콘셉트카들에서도 쿠페는 여전히 가장 인기 있는 장르다. 럭셔리 카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호화로움의 상징인 쿠페에 대한 애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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