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과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개방적인 세상을 맞았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다른 문화, 종교, 욕망이 충돌하며 국경을 걸어 잠그거나 교역을 제한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국가주의, 고립주의로 돌아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책은 수백 년 전 세계의 상품이 모여들던 포르투갈 리스본에 살던 두 남자를 조명해 지금을 되돌아보게 한다.
첫 번째 인물은 16세기 후반 포르투갈 왕립 기록물 소장이던 다미앙 드 고이스(1502∼1574)다. 책은 그가 벽난로 옆에서 반쯤 타다 만 문서 조각을 쥔 채 사망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의 죽음에 관한 기록은 엇갈린다. 시신에 폭력의 흔적은 남았지만 불에 타 죽은 것인지, 교살당했는지, 그 범인은 누구인지 밝혀진 바가 없다. 이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두 번째 인물 루이스 드 카몽이스( ?∼1580)가 나타난다.
카몽이스는 세계를 방랑하며 겪은 경험을 서사시로 담아냈다. 이 서사시는 라틴어, 스페인어, 영어, 프랑스어로 번역돼 그는 포르투갈 국민 시인의 반열에 오른다. 그리고 그가 남긴 편지를 비롯해 다미앙 사망의 진범을 파헤칠 단서들이 드러나게 된다.
다미앙은 기록 보관소에서 종이 더미에 파묻혀 살았지만, 세계에서 모여든 기록을 탐독하며 넓은 시야로 변화하는 세상을 봤다. 반면 세계를 떠돌아다닌 카몽이스는 서사시를 통해 유럽인을 세계의 중심으로 내세우며 오히려 편협한 시각을 고집했다. 이 두 이야기를 교차하며 책은 어쩌면 인간은 낯선 사람과 문화를 접할수록 불안해하고 공격적으로 되며, 그러한 편협함이 본능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물리적 연결보다도 열린 태도로 세상을 볼 줄 알았던 다미앙의 시각과 상상력이 지금 더 필요한 자세임을 강조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책, 도서관, 여행을 연구하고 중세와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치는 저자의 꼼꼼한 연구와 이를 토대로 추리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서술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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