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론 불능’ 이유로 시신에 ‘유죄’… 논리적 오류 가득한 역사 되짚어
SNS로 정치선동-사기 등 확산… 거짓 정보 노출 위험성 더 커져
인간의 비합리적 사고 패턴 분석… 잘못된 통념 깨는 사유 방식 소개
◇페이크와 팩트/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 지음·김보은 옮김/544쪽·2만5800원·디플롯
“연극용 물감과 BB탄으로 만든 자작극.”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암살 미수사건 직후 미 소셜미디어에선 이런 음모론이 확산됐다. 근거 없는 주장이 사실처럼 퍼지는 데는 수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뉴스피드를 통해 내가 신뢰하는 인플루언서의 의견만 보는 세상에서 음모론과 가짜뉴스는 활개를 치기 쉽다. 거짓과 진실이 뒤섞인 사회에서 진실을 가려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리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저자는 신간에서 인류 역사에서 일어난 비논리의 흑역사를 보여주며, 어떤 논리적 오류가 있었는지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인간이 비합리적으로 사고하는 패턴을 설명하고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방안을 제시한다.
897년 교황으로 선출된 스테파노 6세는 전임 교황 포르모소의 부패를 맹렬히 비난했다. “죄 없는 자만이 자신을 변호할 수 있다. 포르모소는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다. 따라서 포르모소는 유죄”라는 게 그의 논리였다. 스테파노 6세는 포르모소가 다시는 축복을 내릴 수 없게 오른쪽 손가락 세 개를 잘라버렸다. 황당하게도 포르모소는 재판이 시작되기 8개월 전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이미 시체가 됐는데 변론할 수 없다는 이유로 유죄로 몬 것.
“죄 없는 자만이 자신을 변호할 수 있다(전제 1), 포르모소는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다(전제 2), 따라서 포르모소는 유죄다(결론).”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는 삼단논법에 사람들은 속았다. 문제는 이보다 훨씬 더 교활하고 선동적인 미사여구 속에 숨어 진실을 판별하기 어려운 주장이 많다는 사실이다.
특히 인간의 기억은 타인의 의견에 의해 곧잘 왜곡된다. 2003년 스웨덴 외교부 장관 안나 린드 살인사건 당시 목격자들은 증언 전 차례를 기다리며 한방에 모여 있었다. 각자 목격한 사건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의 기억에 과도한 선입견을 심어줬다. 목격자들의 진술은 일치했지만 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해자인 미야일로 미야일로비치가 마침내 체포됐을 때 그의 모습은 목격자들의 증언과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 지식의 보고에 곧장 접속할 수 있는 지금은 논리적 함정에 더 취약하다. 이런 환경이 허위 사실을 어느 때보다 더 널리, 더 빠르게 퍼뜨리는 역설을 낳고 있다. 2014년 사이언스에 따르면 사람들은 TV나 신문으로 볼 때보다 온라인에서 부도덕한 사건을 접할 때 더욱 분노한다. 콘텐츠 크리에이터와 플랫폼이 이윤을 얻기 위해 뉴스를 자극적으로 소비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학의 기본 태도인 비판적 사고 방식을 인류의 자산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계에서는 설령 고교생이 학계를 대표하는 과학자의 주장에 반기를 들어도 증거만 충실하다면, 과학자는 자신의 주장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 과학으로 소통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편견 때문인 경우가 많다. 개인의 정치 성향과 편견이 기후변화, 원자력, 총기 규제, 예방접종 등 첨예한 사안을 판단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
이에 따라 거짓과 정치 선동, 사기꾼들의 속임수에 당하지 않기 위해선 분석적 사고 훈련을 통해 통념을 깨부숴야 한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적어도 “다른 방법으로 확인할 때까지 특정한 주장의 수용을 유보하는 방법만 배워도 매우 유익한 습관이 된다”는 조언은 새겨들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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