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현 그루앳홈 대표(54)의 서울 종로구 평창동 집에 처음 가본 건 지난해 겨울이었다. 어느 날 인스타그램으로 쪽지가 왔다. “안녕하세요. 기자님 인스타그램 구독자이자 가드너인 박소현입니다. 이번 주 토요일 저의 가드닝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겨울 정원 워크숍 & 마켓’에 초대하고 싶어서요. 뜬금없이 연락드려 죄송해요.”
어쩌다 ‘인친’(인스타그램 친구)이었지만 그때까지 그에 대해 잘 몰랐다. 쪽지를 받고 인스타그램 피드를 살펴보니 그 자신이 정원을 가꾸는 가드너이면서 홈가드닝 클래스를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었다.
주소를 들고 찾아간 평창동의 3층 주택은 그의 집이자 가드닝 스튜디오였다. 인스타그램 공지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은 옥수수와 떡 등 건강한 다과를 함께 하며 그의 강의를 듣고 정원을 둘러본 후 마음에 드는 식물 화분을 사서 되돌아갔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가드닝 문화가 퍼지고 있구나 싶었다.
최근 다시 그곳을 찾아가 박 대표와 마주 앉았다. 북한산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전망이었다. 그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카페’와 부산 ‘오초량’의 정원, 몇몇 주택 정원 등을 꾸며주는 일을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고 했다. 이날도 식탁에는 블루베리와 허브를 올린 참외, 구운 옥수수와 고구마, 삶은 달걀, 서리태 콩물 등이 단아한 도기에 담겨 나왔다.
-정원 디자인을 전공했나요. “아니에요. 저는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했어요. 졸업 후 패션 회사에 들어가 3년 정도 일했는데 일이 저랑 맞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요리를 배우러 다니다가 꽃꽂이도 배웠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어요. 2000년대 중반 서울 방배동 서래마을에 살면서 동네를 관찰해보니 맛있는 빵집은 있는데 마땅한 꽃집이 없더라고요. 꽃집을 열자 ‘대박’이 났죠. 프랑스인들을 비롯해 사람들이 줄 서서 꽃을 사 갔으니까요.”
-대박 난 비결은 무엇이었나요. “최고의 선생님들을 찾아 배운 뒤 가게를 열어 본전을 뽑는 식으로 계속 배웠어요. 자신의 감각만 믿고 자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보는 눈이 있다면 무조건 배워서 발전시켜야 해요. 꽃집 주인들이 다들 새벽 꽃시장에서 꽃을 사 오지만 어떻게 연출하는지 결과물은 제각각이니까요. 꽃을 배우는 건 주부 입장에서 돈이 많이 드는 일이었지만, 꽃집을 하면서 투자금을 다 회수했어요.”
-지금은 꽃집을 접고 정원을 디자인하는데요. “서래마을에서의 성공에 취해 청담동으로 꽃집을 옮겼다가 망했어요. 사람들이 걸어 다니지 않는 골목이더라고요. 입지 조사에 실패한 거죠. 1년 반 만에 꽃집을 접고 집에서 정말로 아이들 밥만 해줬어요. 또다시 ‘경단녀’(경력단절여성)가 된 거죠. 그래도 꽃과 가드닝은 계속 배웠어요. 그러다가 서울 신세계백화점이 라이프스타일 매장(‘피숀’) 안에서 꽃을 판매할 운영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문을 접했어요. 공들여 준비했죠. 새벽 3시에 인터넷으로 제안서를 냈더니 다음 날 오전 9시에 백화점 측으로부터 만나자고 연락이 왔어요. 그날 오후 3시에 미팅한 후 입점 계약했어요.”
-피숀에서도 성공했습니까. “100만 원짜리 화분이 척척 팔렸어요. 서울 양재동에서는 평범한 화분에 식물을 심어 파는데, 저는 이탈리아나 독일에서 들여온 토분에 식물의 조형미를 살려 심어 팔았으니까요. 예를 들어 남천은 여백의 미를 살려 가지를 쳐서 나무 형태를 디자인했어요. 집에서 밥만 한 주부였지만 끊임없이 배웠던 감각이 통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알음알음 소문이 나니 지인들로부터 ‘우리 가게 정원 좀 디자인해줘’ 이런 부탁을 받게 된 거죠.”
-유명 정원 디자이너가 된 건가요. “언제 ‘프로’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확실한 건 더 이상 ‘아마추어’는 아니라는 거예요. (겸손한 답이었지만 그에게는 이미 몇 달치 정원 디자인 의뢰가 쌓여 있다.) 적은 돈이든 큰돈이든 남의 돈을 받고 정원을 꾸며주는 일을 하면서 또 엄청나게 배우고 있어요.”
정원은 사람을 닮는다. 평창동에 있는 그의 정원은 ‘러블리’한 느낌이다. 아담한 규모에 교목과 관목, 지피식물이 어우러져 있다. 다과로 내온 블루베리도 정원에서 따온 것이다. “제가 사는 공간이기 때문에 언제 봐도 질리지 않으면서 계절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을 담고 싶었어요. 매년 조금씩 식물을 더했다 뺐다 하면서 실험해보고 있어요.”
그의 손을 거친 상업 공간들도 화사해졌다. 둥그런 형태의 유럽 핸드메이드 도자 화분(‘아틀리에 비에르칸트’)에 담긴 식물들은 서정적 분위기가 난다. 그는 상업 공간들이 대개 중국산 짝퉁 화분을 사용하는 게 늘 안타까웠단다. 땅이 좁은 도심 정원에서는 식물만큼 화분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서울 통의동 보안카페도 도심 속에 자연을 구현한 사례다. 봄에는 꽃, 가을에는 열매, 겨울에는 수형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핑크백당과 홍자단 등으로 구조적 식재를 하고 쥐꼬리새풀속과 털수염풀로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큰꿩의다리로 수직적 느낌을 내고 중간 키로는 마타리, 아래에는 휴케라 등을 심어 크지 않은 직사각형 화분 안에서도 식물들이 작은 숲을 이루도록 했다. 카페 내 창가 자리에 앉아 화분들을 바라보면 절로 명상이 되게 했다.
-주택정원들은 어떤 식으로 작업했나요. “대개 기존의 주택정원들은 마당에 소나무를 심고 중앙에 잔디를 깐 경우가 많아요. 제가 디자인을 맡게 된 어느 정원은 60대 후반 주인 부부가 이젠 나이 들어 잔디 깎는 것도 힘들다 하셨어요. 잔디를 과감하게 걷어내고 숲처럼 정원을 만들어 맨발로 거닐 수 있게 해드렸더니 매일 숲속에 사는 것 같다고 행복해하세요.”
-정원을 가꾸면 잡초와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요. “정원은 인생 같아요. 살다 보면 꽃길만 걷는 게 아니라 논길도 걷죠. 정원에서 잡초 뽑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는 분들을 많이 보는데, 정원의 노예가 되지 마세요. 조금 안 예뻐도 그냥 놔두세요. 내 에너지도 절약해야죠.”
-이 땅의 경단녀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파악한 후 꿈을 갖고 도전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준비하고 두드리는 자에게 길은 열립니다.”
자신의 가드닝 클래스에 처음 기자를 초대한 것도, 백화점에 입점 제안서를 냈던 것도 ‘준비하고 두드리는 자’의 도전들이었던 것 같다. 그는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마치고 며칠 후 미국 동부로 열흘 간 정원 여행을 다녀왔다. “정원은 아는 만큼 가꿀 수 있거든요”라면서….
여행을 마치고 온 그에게 어땠느냐고 물었다. “한여름 폭염을 뚫고 하루 2만 보씩 걸으면서 열심히 둘러본 미국 정원들은 창의성과 혁신을 강조하고 있었어요. 예술과 자연을 조화롭게 결합해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더라고요. 전통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제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박소현 그루앳홈 대표가 다녀와 방문을 추천하는 미국 정원
①챈티클리어 가든
박 대표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신나는 공공 정원’. 성공한 제약 사업가의 아들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별장을 1993년 공공에 개방했다. 테니스코트가든, 채소정원 등 각 정원마다 창조적 디자인이 가득하다.
②마운트 큐바 센터
1935년 미국 듀퐁사 사장 부부의 개인 주택으로 처음 지어졌다. 부부가 1960년대 야생화와 자생식물의 중요성에 눈을 뜨면서 1985년 자생식물을 보전하고 연구하는 식물원으로 변모했다. 지역 식물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③스톰 킹 아트 센터
1960년 문을 연 아름다운 조각공원. 작품을 다양한 각도와 거리에서 감상할 수 있어 가슴이 펑 뚫리는 세련된 장소다. 현대적이고 창의적인 관점에서 정원을 해석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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