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장 내내 계속해서 ‘우리 아빠 참 잘 살았네’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과 웃음이 함께 나오는 시간이었습니다. 고인도 한편으로는 뿌듯한 마음으로 가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故) 김민기의 조카인 김성민 학전 총무팀장은 29일 유가족의 입장을 정리한 보도자료를 통해 고인의 뜻에 따라 고인의 이름을 빌린 추모행사나 사업은 원하지 않는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민기 유가족 측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께서 장례식장을 찾아주셨다”며 “제한된 시간과 장소로 인해 조문 오신 한 분 한 분께 정성 들여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운을 뗐다.
이어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일해 오신 고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유족들도 잘 알고 있기에, 고인이 일생에 걸쳐 일궈낸 일들에 대해 유족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면서 “하지만 그것이 고인 혼자의 힘으로 이룬 것들이 아니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기 유가족 측은 고인과 관련한 기사가 다수 보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간단한 사실관계를 바로잡았다.
유가족은 “고인과 가족의 뜻에 따라 조의금과 조화를 사양한다고 밝혔음에도 장례 첫날 경황없는 와중에 많은 수의 조화가 놓이고 일부 조의금이 들어왔다”며 “많은 분이 줄지어 조문을 기다리고 계신 상황에서 강한 의지로 익명의 봉투를 쥐여 주시는 분들과 실랑이를 계속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경황없이 받은 조의금은 돌려 드릴 수 있는 것은 돌려 드렸고, 또 돌려 드리려고 한다”면서 “돌려 드릴 방법을 찾지 못하는 조의금은 유가족이 상의해 적절한 기부처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의 5000만 원 전달 보도와 관련해서는 “이수만 씨의 고인과 유족을 위한 배려로 인한 해프닝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며 “유족의 거듭된 사양에도 불구하고 봉투를 두고 가셨고, 다음날 이수만 씨와 동행했던 가수분께 서운하지 않도록 잘 전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봉투를 돌려드렸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유가족은 “고인의 작업이 ‘시대의 기록 정도로 남았으면’ 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고인의 이름을 빌린 추모 공연이나 추모사업을 원하지 않음을 밝힌다”고 했다.
김민기는 지난 21일 위암 투병 중 병세가 악화해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51년생인 고인은 서울대 미대 재학 시절 동창과 함께 포크 밴드를 결성해 음악 활동을 시작한 후, 1971년 정규 1집 ‘김민기’를 발매하며 정식으로 데뷔했다. 대표곡 ‘아침이슬’의 편곡 버전이 수록되기도 한 이 음반은 고인의 유일한 정규 앨범이다.
고인은 특히 ‘아침이슬’ ‘꽃 피우는 아이’ ‘봉우리’ ‘내나라 내겨레’ 등의 곡을 발표하며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노래하며 1970년대와 1980년대 청년 문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았다.
더불어 1990년대에는 극단 학전을 창단해 학전블루(2024년 3월 폐관)와 학전그린(2013년 폐관) 소극장을 운영해 왔으며, 이곳들은 ‘김광석 콘서트’,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등 라이브 콘서트 문화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또한 연극, 대중음악, 클래식, 국악, 무용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소극장 문화를 일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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