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넘는 콘텐츠] 〈12〉 영화 ‘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 원작 비교
日 서점대상 수상한 원작 소설… 비정상적 상황속 ‘가족’ 의미 물어
영화는 ‘딸바보’ 양부모에 무게… 곳곳 반전 심어 ‘울음’ 유도하기도
“난 엄마가 2명, 아빠가 3명이야.”
20대 여성 ‘유코’(나가노 메이)는 결혼을 앞두고 동갑내기 남자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생물학적 부모 외에도 새엄마 1명, 새아빠 2명까지 부모가 5명이나 있다는 것. 그런데 유코의 얼굴엔 그늘이 없다. 부모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는지 표정도 해맑다.
사실 유코의 친엄마는 유코가 세 살 때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유코의 친아빠는 새엄마와 재혼했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이혼했다. 친아빠는 브라질로 떠났고 유코는 새엄마와 살게 됐다. 새엄마는 이후 결혼을 두 번 더 했다. 남들과 달리 유코에게 부모가 많은 이유다.
17일 국내 개봉한 일본 영화 ‘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는 여러 부모의 손에 길러진 한 여성의 성장을 그린 작품이다. ‘정상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주제를 톡톡 튀는 설정과 따뜻한 감성으로 풀어내며 일본에서 120만 명 관객을 모았다.
일본 서점대상 수상작이자 국내에 2019년 출간된 동명의 장편소설에서 유코와 3번째 아빠 ‘모리야마’(다나카 게이) 사이엔 긴장감이 흐른다. 예를 들어 유코는 “모리미야 씨”라며 ‘∼씨’라는 호칭을 붙인다. 친부모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 유코는 또 “친딸이 아니라 그런지, 아니면 아빠란 원래 그런 존재인지, 잔소리를 들은 적은 여태 없다”고 불만을 드러낸다. 모리미야도 속으론 따뜻하지만 겉으로는 퉁명스러운 ‘츤데레’로 묘사된다. 쉽게 가까워질 수 없는 새아빠와 딸 사이의 차가운 감정을 묘사하는 데 집중한 것이다.
반면 영화에서 부녀 사이엔 따뜻함이 가득하다. 모리야마는 유코를 자상하게 챙기는 ‘딸바보’로 묘사된다. 유코를 위해 매일 아침, 저녁을 차리고 “유코가 혹시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며 술도 마시지 않는다. 유코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독립한다는 말에 속절없이 좌절하는 모리야마의 모습은 친아빠와 다름없이 보인다. 유코가 “왜 재혼 안 하냐. 아빠처럼 굴지 말라”며 농담을 던지고, 모리야마가 “널 시집 보내는 게 내 의무”라고 당당히 외치는 대화를 통해 실소를 자아낸다. ‘비정상 가족’이란 무거운 주제를 마치 코미디 영화처럼 가볍게 전달하는 매력을 더한 셈이다.
새엄마 ‘리카’(이시하라 사토미)에 대한 설정도 다르다. 소설에서 ‘리카’는 병에 걸려 몸이 쇠약해진 상태지만 유코의 결혼식에 참여해 축하한다. 유코의 삶을 지지해 줬던 부모들이 ‘바통’을 유코의 남편 ‘하야세’(미즈카미 고시)에게 전달하는 순간을 함께한다.
반면 영화에선 유코가 결혼할 때 리카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다. 오랜 투병 사실을 유코에게 숨긴 채 세상을 떠나는 것. 이 때문에 영화 후반부 유코가 결혼식장에 입장할 때 유코 곁을 지키는 건 유코의 아빠들뿐이다. 과거 엄마가 유코가 피아노를 연주한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후반부에 반전으로 보여주며 극적 연출을 유도한다. 이처럼 영화는 ‘울음 버튼’을 곳곳에 배치해 대중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누군가는 이 설정이 비현실적이라 비판할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기에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필요한 것 아닐까. 친부모 아래서 자란 ‘하야세’가 “서로를 배려한다는 점에서 양부모가 친부모보다 낫다”며 유코를 부러워하고, 유코가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아빠 세 명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식에 입장하는 장면을 보며 깨닫는다. 어떤 ‘비정상 가족’은 ‘정상 가족’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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