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나만 몰랐네?” 소외감 못 견디는 ‘트민남’에게 진짜 필요한 것[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3일 14시 00분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트민남’은 방송인 전현무가 유행에 민감한 자신의 특성을 드러내려고 만든 말이다. 유행뿐 아니라 대인관계, 재테크 등에서도 대세에서 소외될까 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MBC 화면 캡처
‘트민남’은 방송인 전현무가 유행에 민감한 자신의 특성을 드러내려고 만든 말이다. 유행뿐 아니라 대인관계, 재테크 등에서도 대세에서 소외될까 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MBC 화면 캡처

두바이 초콜릿, 요거트 아이스크림, 아샷추(아이스티에 에스프레소 샷 추가), 크루키(크루아상+쿠키), 생과일 하이볼….

올해 상반기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행한 먹거리들이다. 먹고 입고 마시는 각종 트렌드에 민감한 ‘트민남(男)’ ‘트민녀(女)’들은 동나기 전에 사려고 ‘오픈런(매장 문 열자마자 뛰어가기)’을 하고, 몇 시간씩 줄을 서기도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유행이 뜨고 지지만, SNS에는 유행을 따르는 데 진심인 사람들이 올린 인증샷이 넘쳐난다.

유행뿐 아니라 내가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질투하고 비교하는 것도 트민남, 트민녀와 비슷한 맥락이다. 홀로 소외되는 것을 불안해 한다는 점이 같다. 예를 들어 금요일 오후 10시, 샤워하고 푹신한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있다가 무심코 열어 본 SNS 앱에서 나 빼고 모인 친구들 사진을 봤다고 상상해 보자. 1분 전까진 천국 같았던 소파 위가 갑자기 외딴섬처럼 느껴질 수 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누가 날 싫어하나?’ 하는 생각으로 복잡해지기도 한다.

물론 사람들에게 소외당하는 상황이 즐거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유난히 ‘나 빼고’ 일어나는 일을 못 견뎌 하는 사람도 있다. 나만 빼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SNS를 강박적으로 확인하기도 한다. 단지 ‘인싸(인사이더)’가 되고 싶어서라고만 보기에는 속내가 꽤 복잡하다. 남들 하는 일에 꼭 끼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도대체 왜 그럴까.

지난달 21일 ‘두바이 초콜릿’을 파는 백화점 팝업 매장 앞에 줄 선 사람들. 두바이 현지에서 파는 초콜릿 제품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없어서 못 구하는 인기 먹거리가 됐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소외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

소외당할까 봐 걱정하며 사는 건 요즘 사람만의 특징은 아니다. 2000년 전 고대 로마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도 대세에서 소외될까 봐 불안해 했다. 키케로는 수도를 잠시 떠나 있을 때마다 하인을 시켜 중앙 정치 쟁점부터 스캔들, 가십 같은 자잘한 이야기까지 모조리 편지로 받아 봤다고 한다. 그에게 소식을 전달하는 팀도 있었다. 일종의 인간 SNS를 둔 셈이다.

디지털 시대 들어 이같이 오래된 두려움에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말로는 소외불안증후군 또는 고립공포증후군이라고 한다. 나 혼자 소외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의미한다. 미국 기업가이자 ‘포모 사피엔스’ 저자 패트릭 맥기니스가 2004년 소비자의 조바심을 이용한 마케팅 용어로 처음 소개하며 알려졌다. 이후 심리학 분야에서 대인관계 소외감과 SNS 중독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국내에서 ‘포모 증후군’의 의미는 돈 벌 기회에서 소외되는 두려움을 뜻하는 말로 변형됐다. 출처 위키피디아

흥미로운 점은 포모 증후군이란 용어가 국내에서는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등의 상승장을 혼자만 놓쳐 낙오될까 두려워하는 투자심리’로 쓰임이 변형됐다는 것이다. 소외를 두려워하는 핵심 감정은 같지만 ‘벼락거지(갑자기 된 거지, 벼락부자의 반대말처럼 쓰이는 신조어)’ 같은 경제적 열등감을 더 강조하고 있다.

포모 증후군 같은 투자심리를 다룬 책 ‘살려주식시오’를 펴낸 박종석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는 “포모라는 말이 국내에서는 원래 의미보다 더 심한 불안과 무기력감, 강박을 유발하는 의미로 변형됐다”“초조하고 쫓기게 만들어 한곳에 진득하게 집중하지 못하는 성인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유발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 “나 혼자잖아?” 뇌에선 비상 선포

양상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소외 불안이 소비, 대인관계, 투자를 비롯해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는 이유는 집단에 소속돼 안정감을 찾고 싶어 하는 인간 기본 욕구와 관련돼 있어서다.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 욕구를 5단계로 나눴다. 1단계는 먹고 자는 생리적 욕구, 2단계는 안전 욕구다. 1, 2단계에서 최소한의 생존 욕구가 채워지면 3단계로 소속감과 애정을 갈망한다. 신체적 생존 다음으로 중요한 사회적 생존 욕구다.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되면 사회적 생존에서 낙오되는 강렬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소외된다는 것은 사회적 생존에 위기가 닥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티이미지
소외된다는 것은 사회적 생존에 위기가 닥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티이미지

실제로 뇌에서도 소외당하는 상황에 놓이면 생존 위협 신호로 인지한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를 관찰한 연구에 따르면 따갑거나 뜨거운 신체 통증에 반응하는 뇌 영역과 대인관계에서 소외됐을 때 반응하는 뇌 영역이 같다. 몸이 아플 때나 마음이 아플 때나 뇌는 똑같은 위급 상황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그래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네이선 드월 미국 켄터키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 결과 대인관계로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때 중추신경에 작용하는 타이레놀 같은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진통제를 먹으면 심적 고통이 완화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소외불안을 유독 많이 느끼는 사람은 다른 사람 상태를 살피고 공감하는 뇌 영역이 남들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카를로 라이 이탈리아 로마 사피엔차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소외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사진을 볼 때 뇌 오른쪽 중간측두회가 유독 활성화됐다. 이 영역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모니터링하는 데 관여한다. 연구진은 “다른 사람들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거기에 소속되고 싶은 강한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삶에 불만족…나이와 관계 없이 나타나

소외불안이 큰 사람들은 유행을 따르고 많은 모임에 나가는 등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으로는 외로움, 우울감, 낮은 자존감 같은 심리적 결핍이 있을 수 있다. 모임에 못 나가면 불안해하고, 혼자 있을 땐 다른 사람들 뭐 하나 신경 쓰여 SNS를 확인하느라 편히 쉬지도 못한다.

● 나도 포모 증후군?
·내 친구나 지인들이 나를 빼놓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까 봐 걱정된다
·주변을 신경 쓰는 데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 같아 걱정된다
·휴일에도 친구나 지인들이 무엇을 하는지 SNS를 계속 확인한다
·약속된 모임에 빠지게 되면 불안하다
·갑자기 잡힌 약속에 가지 못하면 신경이 쓰인다
·친구나 지인들 소식을 접하지 못할 때 불안하다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나은 경험을 할까 두렵다

자료: 소외불안증후군 척도 일부

앤드루 프시빌스키 영국 옥스퍼드대 인간행동기술학 교수는 소외불안을 느끼는 사람들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 22~65세 2079명을 조사했다. 소외불안 수준과 함께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대인관계나 자기 능력에 만족하는 수준은 어떤지, 평소 어떤 기분으로 지내는지를 측정했다.

그 결과 전반적인 삶과 대인관계, 자기 능력을 못마땅히 여기는 사람일수록 소외불안을 더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좌절, 우울, 불안,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도 소외불안 수준이 높았다. 미 휴스턴대 심리학과 연구팀의 비슷한 연구에서는 자존감이 낮고 ‘더 잘해야 한다’며 자신을 몰아붙이는 사람일수록 소외불안이 높았다. 즉, 자신과 삶에 관련한 만족감이 전반적으로 낮을 때 외부 집단에 소속돼 안정감을 찾으려는 욕구가 높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두 연구에서 모두 이런 특징들이 SNS 중독으로 이어진다는 점도 발견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강해 식사나 운전 중, 잠자기 전후에 SNS 앱을 더 많이 켰다. 특히 잠자기 직전 SNS를 많이 해서 수면장애도 겪었다. 이런 결과는 우울, 불안을 더 강화한다.

놀라운 점은 이런 현상이 유행에 민감하고 SNS를 많이 사용하는 10, 20대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휴스턴대 연구에서는 실험 참가자를 14~17세, 24~27세, 34~37세, 44~47세로 나눠 총 419명을 모집했는데 모든 그룹에서 이런 결과가 비슷하게 나타났다. 사람들에게서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성향은 나이와 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가?

소외불안의 핵심 문제는 ‘나는 중요한 존재인가’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가’ 같은 질문일 수 있다. 자기 능력이나 존재 자체를 못마땅히 여기고 삶이 불만족스러운 상황에서는 유행을 따르고 SNS에 집착한들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나만 혼자 낙오됐다는 느낌은 실제보다 과장됐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SNS에서 부와 행복을 과장해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 소외불안을 조장한다. 게티이미지
나만 혼자 낙오됐다는 느낌은 실제보다 과장됐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SNS에서 부와 행복을 과장해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 소외불안을 조장한다. 게티이미지

우선 나만 낙오됐다는 느낌은 대부분 실제보다 왜곡된 경우가 많기에 불안감이 과장됐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인관계, 소비, 투자 등에서 남들과 비교하며 ‘나는 왜 이 모양이지’ 하는 질투심, 소외감, 조바심을 느낀다면 자신이 소외불안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박 교수는 “어쩌면 대한민국 전체가 상위 몇 %의 삶과 비교하며 ‘낙오됐다’고 여기는 함정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하루하루 나아지는 내 모습을 스스로 칭찬해 주며 만족감과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앞서 소개한 휴스턴대 연구에서 또 하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연구진은 ‘더 잘해야 한다’며 자신을 모질게 몰아붙이는 사람일수록 소외불안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꿔 말하면 자기 연민(self compassion) 수준이 높으면 소외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의미다. 자기 연민이란 △나의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비난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 친절하며 △실패하더라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시련이라 여기며 극복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려고 애쓰며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면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균형 잡힌 시선으로 보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를 말한다.

‘핵인싸(아주 인기가 많은 사람)’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서 거리를 두는 것도 방법이다. 실제로 SNS에서 친분, 부(富), 행복을 과장해 ‘인싸력(力)’을 자랑하는 화려한 사진을 보면 뇌의 보상회로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쾌감, 부러움, 질투가 동시에 일어난다. 이런 느낌은 열등감, 초조함, 우울함까지 일으킬 수 있어 심각한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박 교수는 “허세가 심한 사람의 SNS 계정을 차단하거나 단체 채팅방에서 나오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트렌드#유행#트민남#트민녀#오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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