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곤충학자 꿈 이룬 저자
곤충들 소소한 일상 다룬 에세이
◇곤충은 남의 밥상을 넘보지 않는다/정부희 지음/224쪽·1만7800원·김영사
멸종위기 곤충인 ‘물장군’ 수컷은 유난히 육아에 지극 정성인 것으로 유명하다. 먼저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은 알이 붙어 있는 풀줄기를 앞다리로 감싸 안는다. 알이 햇빛에 마를세라 자기 몸에 물을 묻혀 알에 바른다. 햇볕이 뜨거울까 걱정돼 몸으로 그늘을 만든다. 또 수컷은 알과 알 사이를 뾰족한 주둥이로 벌려주기도 한다. 공기가 잘 통하게 해 알이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알을 낳는 건 암컷의 몫이지만 알을 부화시키는 건 수컷의 몫인 셈이다.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인 ‘라테 파파’의 곤충판이랄까.
한국 여성 곤충학자의 에세이다. 저자는 이화여대 영어교육과를 나와 ‘엄마’로 살다가 마흔 살에 곤충과 사랑에 빠졌다. 뒤늦게 성신여대에 진학해 곤충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정부희 곤충학 강의’(보리·2021년) 등 꾸준히 곤충학 관련 서적을 펴냈다. 곤충학의 대중화에 앞장선 프랑스 곤충학자 장앙리 파브르(1823∼1915)에 빗대 ‘한국의 파브르’라는 별명도 생겼다.
신간엔 저자가 관찰한 곤충들의 소소한 일상이 생생하게 담겼다. 예를 들면 곤충 ‘밑들이’가 짝짓기를 하기 위해선 ‘선물 증정식’이 필수다. 먼저 수컷은 암컷에게 음식을 선물로 준다. 암컷은 조심조심 선물로 다가가 곧바로 주둥이를 푹 찔러 넣는다. 이때야 수컷은 짝짓기에 들어간다. 벌, 매미, 메뚜기, 잠자리, 나비 등 우리에게 익숙한 종뿐만 아니라 춤파리, 톱사슴벌레, 물자라 같은 생소한 종에 대한 다채로운 소개엔 저자의 애정이 짙게 묻어 있다.
저자는 곤충의 편에 서기도 한다. 곤충에게 감정이 없다는 주장에 “곤충은 그들의 방식대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다”고 반박한다. 또한 “곤충은 자신들만의 영역을 정해 놓고 각각의 입맛에 맞게 식사하면서 각자의 식량을 충분히 확보한다”며 어떤 면에서 인간은 곤충에게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책엔 호기심 가득한 삶의 태도도 묻어 있다. 덕분에 독서하며 잠자리를 채집하면서 놀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향수에 젖었다. 곤충에 대한 과학적 사실만 나열한 도감 대신 이 에세이를 읽어 보면 어떨까. 매일 걷다 만나는 곤충을 이젠 해충(害蟲)이 아니라 익충(益蟲)으로 바라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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