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는 혼자 진화하지 않는다/피터 J 리처슨, 로버트 보이드 지음·김준홍 옮김/476쪽·2만5000원·을유문화사
진화론에 따르면 우월한 유전자는 ‘자기 씨’를 널리 퍼뜨리려는 본능이 강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출생률이 감소한 것은 인류 역사의 퇴보를 의미할까.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환경과학과 인류학을 연구하는 저자들은 인류가 어떻게 오늘날에 이르게 됐는가에 대한 답을 ‘유전자-문화 공(共)진화 이론’에서 찾는다. 인류가 유전적 본성이나 문화적 학습이라는 두 경로 중 하나만을 선택해 진화해온 게 아니라, 두 속성이 상호작용하며 진화를 이뤘다는 것이다. 총 7개 장에 걸쳐 인류 진화에 대한 폭넓은 가설을 펼친 뒤 심도 있는 논증으로 뒷받침했다. 2009년 출간된 ‘유전자만이 아니다’에서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고 주석을 보강했다.
저자들에 따르면 21세기 이전에 발생했던 모든 문화 진화적 사건들은 모두 지금과 연관돼 있다. 우리가 어떤 문화적 변형을 채택하거나, 무시할 것인지를 선택함으로써 진화 과정에 깊이 관여한다는 얘기다.
세계적으로 출생률이 떨어지는 추세에 대해선 ‘이기적인 문화 변형’이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을 내놓는다. 근대화로 인해 인류는 교육기관 등을 통해 부모가 아닌 사람들로부터의 문화 전달이 일상화됐다. 그런데 높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더 많은 교육을 받는 이들이 점차 결혼과 양육을 미루는 현상이 발생했다. 문화 전달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큰 이들이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확산시키면서 저출생이 심화됐다는 것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인류의 과거 선택도 치밀하게 분석한다. 과거 나치 독일 치하에서 유대인 친구를 보호하려고 애쓴 독일인이 별로 없었던 사실에 대해 ‘사회적 본능’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한다. 서로 구분된 집단에서 살아가는 ‘부족 본능’이 극단화되면서 내집단(개인이 규범, 가치 등에서 동지의식을 갖는 집단)에 속하지 않은 유대인들을 의심과 살해의 대상으로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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