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만난 얼음 가가(假家)
도매값은 싼데 소매값은 작년과 같다.
중복허리가 되니 날도 무던히 덥다. 일기가 더워 갈수록 세월이 좋은 사람은 어름장사들이다. 대체 경성 시내에서 한 여름 동안에 소비되는 얼음은 보통 2만 돈은 넘어간다하며 이 가격은 금년 도매 시세로 보도라도 일 돈에 13원 50전 식으로 이만 돈 가격이 17만원 안에 들지는 않는다 하니 이것을 소매 가격으로 환상하면 적어도 2,3배는 넉넉하리라 한다. 그런데 작년 겨울 일기가 전에 없이 따뜻하여서 한강(漢江) 채빙(採氷)이 여의치 못하였던 고로 경성 시내에 있는 얼음도가 이십여호 중에 경성천연빙과 조선천연빈의 두 회사를 제한 외에는 저장한 얼음이 전혀 없을뿐더러 앞의 두 회사에서도 경성 시내에서 일년 동안 소비되는 2만돈(돈)의 얼음은 가지지 못하였는 고로 금년 여름 어름 값이 좀 비싸리라고 일반은 기우(杞憂)를 마지 않하였더니 사실은 그와 반대로 소매값이 작년보다 오히려 싸다는 기현상을 나타내게 되었는데 그 이유인 즉 리(利)에 밝은 일본 사람의 얼음 장사들은 경성에 얼음이 부족한 것을 짐작하고 안동현(安東縣) 평북백마(平北白馬) 함남서호진(咸南西湖津) 등지로부터 얼음을 이입(移入)하여다가 경성시내에 퍼트려놓고 싸게 소매상에게 넘기기 때문에 이것을 본 조선, 경성의 두 천연빙(天然氷) 회사에서는 경쟁적으로 더 싸게 팔기를 시작한 까닭이라 한다. 그러나 소매값은 여전히 작년에 얼음이 비쌀 때와 같이 2백 여개의 소매상들은 ‘이찌고’ 같은 것에 별미만 조금씩 붙이면 의례히 한 ‘컵’에 20전 혹은 25전을 받는다.
수백 년 이래로 조선인 전래의 유업인 빙고업(氷庫業)은 심동에 한강이 결빙하면 그 부근에 빙고를 건축하고 채빙 저장하였다가 그 다음해 7,8월이 되면 각 방면 수요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채빙시에 비용은 빙괴 한 개에 불과 3,4전의 운임이 있을 뿐이요, 별로 큰 자본을 필요치 아니하고 그 다음해에 상당한 시세를 만나면 빙괴 한 개가 70, 80 전 내지 1원 이상의 가격으로 매매되여 상당한 이익이 있는 영업일 뿐만 아니라 연강( 沿江)에서 어업은 빙에 대하여 여름철의 신선을 보호하나니 그럼으로 이제 이 빙고업을 못하게 된다는 것이 따라서 어업을 못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겨울철을 당하여 노동자 실직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즉 빙괴채취로 연강에 유통되는 재화는 적어도 일 년에 7,8만원 내지 10만원에 달하는 까닭에 노동자는 이 시기를 소작인의 추수 시기와 같이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2,3년 이래로 당국이 그 허가를 아니하는 관계로 연강노동자들에게는 형언키 어려운 가련한 생활을 파급하게 되었다. 위정당국자가 위생이란 점에 치중하여 그 업에 간섭하는 것은 호의로 해석하여 이이를 제출할 여지가 없거니와 그러나 간섭에도 정도가 있지 아니한가. 반드시 거금을 투자하여 저장고를 설치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종래의 빙고가 비록 불완전하다 할지라도 오적물의 침입은 충분히 방어할 수 있고 소호의 개량을 가하면 충분히 쓸 수 있고 또한 어떠한 창고에 저장한다 할지라도 4,5삭(朔) 후에 꺼내는 것은 일반인즉 종래의 사정과 일반의 정형을 참작하여 각 기업에 안(安)하고 원한이 없게 하는 것이 정치의 요강이라한다면 당국자의 좀더 반성하기를 간절히 바라노라. 끝으로 조선빙고업자에 향하여 일언으로 원하노니, 목전의 작은 이익에 현혹하여 경쟁의 길을 취하지 말고 각기 자본을 구합(鳩合)하면 상당한 사회나 조합을 성립하여 완전히 경영할 수 있으니 이리하여 선조부터 이어온 유업을 유지하고 실업에 우는 노동동포를 구하기를!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가족과 풍경을 멋지게 찍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사진이 흔해진 시대에, 우리 사진의 원형을 찾아가 봅니다. 사진기자가 100년 전 신문에 실렸던 흑백사진을 매주 한 장씩 골라 소개하는데 여기에 독자 여러분의 상상력이 더해지면 사진의 맥락이 더 분명해질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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