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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모래, 일렁이는 물결, 쨍한 햇살…. 기다림은 길었으나 행복한 여름휴가는 언제나 쏜살같이 지나간다. 눈감아도 아른거리는 휴가지의 여유로운 풍경은 사라지고, 어느새 몸은 북적이는 만원 지하철과 고단한 일터로 향하고 있다.
당연히 휴가를 길게, 자주 갈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직장인들은 1년에 쓸 수 있는 연차가 정해져 있을 뿐 아니라 그나마도 다 못 쓰는 경우가 흔하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근로자 휴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근로자들의 가용 연차 일수는 평균 16.6일이었지만, 실제로 사용한 연차는 12.7일이었다.
그렇다면 1년에 며칠 없는 휴가를 길게 몰아 써서 충분히 놀다 오는 게 좋을까, 아니면 조금씩 쪼개 짧은 휴가를 여러 번 가는 게 좋을까. ‘작고 소중한’ 휴가를 최대한 만족스럽게 쓸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자.
● 휴가 효과, 지속 기간은?
두 방법 중에 뭐가 더 심리적으로 만족감을 줄 수 있는지 알아보려면 먼저 휴가가 주는 효과가 얼마나 지속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연구진에 따르면, 번 아웃을 겪는 직장인은 휴가를 다녀오더라도 업무 복귀 3일 차에 휴가 효과가 사라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경우엔 어떨까.
안타깝게도 잘해야 최대 2주가 지나면 휴가 효과가 사라진다. 네덜란드 로테드람에라스무스대 연구진은 직장인 1530명을 대상으로 휴가를 얼마나 다녀왔는지, 삶에서 느끼는 행복도 수준은 어떤지 10개월에 걸쳐 반복적으로 조사했다. 이 기간에 휴가를 한 번도 가지 않은 사람은 556명이었고, 휴가를 하루라도 다녀온 사람은 974명이었다. 휴가 다녀온 일수에 따라 휴가 기간은 5일 미만, 1주, 2주, 3주 등으로 구분했다.
휴가를 가는 사람과 가지 않는 사람들의 행복 지수는 여행 전에 특히 두드러지게 차이가 났다. 휴가가 예정된 사람들이 여행을 기대하면서 평소보다 행복감을 더 느껴서다. 그러나 휴가 이후에는 휴가를 다녀온 사람들과 휴가를 가지 않은 사람들 간 행복 지수에 차이가 없었다. 휴가를 다녀왔든, 다녀오지 않았든 간에 출근해서 일하는 처지는 똑같아졌기 때문이다.
다만 ‘휴가지에서 아주 편안하게 잘 보냈다’고 답한 521명은 업무에 복귀하고 나서도 행복 지속 기간이 2주로 길게 나타났다. 물론 2주 이후면 행복 효과는 감소했다. 심지어 이런 결과는 휴가 기간의 길고 짧음과 관계없이 비슷하게 나타났다. 아무리 충분하게 쉬고 오더라도 최대 2주면 휴가가 주는 행복감이 사라지고 휴가 가기 전과 똑같은 상태가 됐다. 바꿔 말하면 휴가의 길이와 상관없이 만족스러운 휴가를 보내고 오면 2주 정도는 행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 ‘미니 휴가’ 자주 가는 게 더 유리
이러한 연구 결과에 따라 이론상으론 2주마다 휴가를 가면 계속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렇지만 2주마다 휴가를 주는 회사는 없으므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짧은 여행을 최대한 자주 가는 것이다. 휴가 길이와 휴가 효과 지속 기간은 큰 상관이 없으니, 휴가의 빈도를 늘려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주일 통째로 휴가를 내는 것보다 주말에 1, 2일 연차를 붙여 여러 번 쉬는 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번 아웃 근로자의 휴가 효과를 연구한 미나 웨스트먼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조직행동학 교수는 “짧은 휴가를 최대한 자주 갈수록 번 아웃 증상도 감소할 수 있다”고 했다.
비록 휴가에서 돌아오면 행복감이 급속히 사라지긴 하지만, 휴가 중에는 몸과 마음의 여러 긍정적인 지수가 올라가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라드보드대 행동과학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휴가 중인 직장인의 기분, 삶의 만족감, 건강 상태, 에너지 수준, 긴장도 등은 평상시와 비교해 급격히 좋아졌다. 따라서 휴가를 자주 간다면, 평상시보다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을 더 자주 느낄 수 있다.
● 남는 건 사진뿐? 진짜 그럴까
짧은 휴가를 자주 가는 것 외에도 휴가로 인한 행복도를 오래 유지하는 다른 방법이 있다. 좋았던 기억을 의도적으로 계속 곱씹는 것이다. 휴가지에서 돌아오면 곧바로 몸과 마음의 긍정적인 기운이 사라지는 이유는 곧바로 일상으로 복귀해 휴가지에서 좋았던 기분을 너무 빨리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았던 추억을 곱씹는 회상 단계에 특별히 신경 쓸 필요가 있다. 긍정심리학 분야에서는 이런 의식적인 과정을 ‘향유하기(savoring)’라고 한다. 좋은 추억이나, 기분 좋았던 일을 의도적으로 하나하나 떠올려 곱씹는 사고 과정을 말한다.
휴가지에서 가져온 기념품이나, 사진을 보면 행복해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향유하기를 통해 행복감을 증진하는 방법을 20년 동안 연구해 온 프레드 브라이언트 미국 로욜라대 심리학과 교수는 기념품이나 사진보다 더 도움 되는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브라이언트 교수는 실험 참가자 65명을 모집해 세 그룹으로 나누고, 하루에 2번, 10분씩 의도적으로 특정 기억을 떠올려 곱씹는 시간을 갖도록 했다. 첫 번째 그룹에는 좋은 추억이 있는 사진이나 기념품을 보면서 이와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도록 했고, 두 번째 그룹에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좋은 추억이나 기분 좋았던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해 보라고 했다. 세 번째 그룹에는 최근의 걱정거리들에 대해 생각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행복 지수를 측정했다.
당연히 행복 지수가 가장 낮은 그룹은 걱정거리를 생각한 세 번째 그룹이었다. 놀라운 점은 기념품이나 사진 없이 생각만 떠올린 그룹의 행복도가 가장 높았다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좋은 추억이 담긴 사진이나 물건을 보면 더 행복할 것 같은데 말이다.
그 이유는 눈에 보이는 사진이나 물건에 국한되지 않고 당시 기억을 자세히 떠올리려고 뇌를 자극하면, 더 다양하고 생생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어서다.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를수록 그날의 좋았던 기분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 반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매개체가 있으면 오히려 다양한 기억을 떠올리는 데 한계가 생긴다.
● 휴가의 추억을 오래 향유하려면
행복한 기억을 곱씹는 다양한 방법이 이외에도 많다. 앞서 연구에서는 비록 효과가 덜했지만, 사진이나 기념품을 보는 것은 여전히 좋은 방법이다. 다만,스트레스가 많은 장소(회사 사무실)에 기념품을 갖다 놓거나, 업무용 PC 바탕화면으로 휴가 중에 찍은 사진을 설정하지 않는 편이 더 좋다. 업무 스트레스가 좋았던 추억을 상쇄해 버릴 수 있어서다. 추억이 담긴 사진은 긴장을 풀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에서 보는 게 더 낫다.
향을 이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후각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 영역은 연결돼 있다. 그래서 특정한 향을 맡게 되면, 뇌에선 그와 연계된 기억과 정서를 떠올리게 된다. 호텔에서 썼던 세면용품과 같은 제품을 써보는 등 여행지에서 맡았던 향을 맡으면 당시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타는 효과가 있다. 물론 여행지에서 들었던 음악 또는 특정 소리를 다시 듣거나, 현지 음식 다시 먹어보기 등을 통해 시각, 미각 등 다양한 자극을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휴가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짜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예를 들어 새벽에 공항에 도착해 바로 출근하는 등 휴가에서 돌아와 정신없이 일상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긍정적인 정서가 훨씬 더 급격히 사라지게 된다. 가능하다면 휴가에서 돌아와 하루라도 쉬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일정을 짜는 게 더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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