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희정 파리
광희정 2정목292번지 윤기병
광희정 사람 말이 내 동리 명물은 파리라 어느 집을 가보던지 사람의 집이라기 보담 파리의 집이라고 하는 것이 상당할 만큼 파리가 숱하게 많다고 합니다. 파리는 추한 곳에 많이 꾀이는 물건이니 파리를 명물로 내세우는 것은 동리가 추하다고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못된 바람 부는 곳에 무슨 좋은 명물이 차지가겠습니까?
파리가 늦은 가을에 알을 배고 그대로 과동(過冬)을 한답니다. 봄 새 날이 따뜻하여지면 일백 45개 색기 파리를 낳는데 그 색기가 얼마 동안만 지내면 또 알을 배게 된답니다. 그래서 봄에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암파리 한 마리가 가을까지 가면 칠십구억사천백이십칠만 가량되는 파리의 조상 할미가 된답니다. 이 파리가 만일 잡히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몇 해 동안만 지내면 이 세상은 파리의 물건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세계에 파리 만키로 제일 갈 만한 곳은 아마 압록강 건너 안동현인가 합니다. 안동현 거리를 지나가자면 거리의 먼지가 떼를 지어 날아갑니다. 이 먼지는 참말 먼지가 아니요 파리가 먼지를 뒤여 쓴 것입니다. 광희정 파리쯤은 아마 명함도 못 들일줄 압니다.
1924년 8월 11일자 동아일보
광희정에 살고 있는 윤기병이라는 독자가 자기 동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특별한 자랑거리는 없고 파리가 득실되어 유명하다고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기 보다 오히려 파리가 사는 지역이라고 자기 동네를 비하하고 있습니다. 특정 지역이 더럽고 위생상태가 엉망이라고 지적하는 내용이니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동네 사람들에게 꽤나 욕을 먹었을 내용입니다.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파리가 많은 것은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서 전염병의 위험까지도 의미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지적은 단지 불평이 아니라, 지역 사회에 대한 건강과 안전에 대한 경고로 볼 수 있습니다.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필자는 가을에 암컷 파리 한 마리를 살려 놓으면 겨울을 지낸 후 45마리의 새끼를 까고 그 새끼들이 몇 세대 이어가면서 다음 해 가을이 되면 79억4천1백2십칠만 마리의 파리가 생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막아야 한다는 의미일겁니다. 여기서 파리의 번식력에 대한 경고는 단순히 과장된 숫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파리와 같은 해충이 어떻게 통제되지 않을 경우 빠르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경고하고 있습니다.여름철에는 우리가정에서도 당국과 협력, 방역에 특별한 유의가 있어야 한다. 우선 모기가 숨어있을 수채나 정원수(庭園樹)등에 대한 청소와 방엮을 철저히 해야겠다. 여름철의 모기가 무섭다는 것은 말라리아를 비롯해 여러가지 병균을 전염시킬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모기와 더불어 파리잡기운동도 벌여야하겠다. 변소의 소독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며 각 국민학교에서는 어린이들에게 파리의 무서움을 알리고 집에서 파리잡기운동을 벌이도록 했으면 한다. 병균을 뿌리고 다니는 파리를 잡는다는 점에서나 어린이들에게 위생과방역관념을 심어준다는 점에서나 장려할만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1972년 6월 5일자 동아일보 사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