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을 천으로 떠 간’ 서도호
세계적 주목 받는 작가로 명성
21년 만에 아트선재서 개인전
‘북극의 집’ 등 다양한 상상 펼쳐
“1997년 서도호 작가(사진)가 ‘한옥을 천으로 떠서 미국에 가져가고 싶다’고 했을 때 ‘그게 가능할까?’ 싶었어요. 그때도 지금도 서도호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작가입니다.”
아트선재에서 21년 만에 서도호의 두 번째 개인전을 선보이는 김선정 예술감독이 말했다. 김 감독은 당시 일본 시세이도 갤러리 그룹전 ‘아시아 산보’의 큐레이팅을 맡으면서 대학원생이자 젊은 작가였던 서도호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때만 해도 의구심을 가졌던 작가의 구상은 2년 뒤 대표작 ‘서울집/L.A.집’을 비롯한 연작으로 태어났다.
김 감독은 “큐레이터는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하는 실무를 맡아야 하기에 예술가의 제안에도 현실적 제약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면서 “주변에서 의심할 때도 작가가 포기하지 않고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낸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서도호의 머릿속 상상들을 펼쳐낸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가 17일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 전관에서 개막했다.
● 천으로 만든 집, 그 뒤의 생각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서도호는 2000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PS1 그룹전을 시작으로 휘트니미술관, 영국 헤이워드갤러리 등에서 활발히 조명돼 왔다. 내년에는 영국 테이트 모던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어릴 적부터 살았던 한옥을 비롯한 ‘집’을 천으로 제작한 설치 작품이다.
그런데 이번 개인전은 이러한 대표작은 배제했다. 가장 익숙한 데다 ‘인증사진’을 찍기에도 좋아 관객을 모을 수 있는 작품임을 감안하면 과감한 선택이다. 대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작가의 생각을 담은 기록과 스케치, 모형이 전시장을 채웠다. 덕분에 작품의 배경에 깔린 생각과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서도호는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제 작품 대부분은 ‘만약에’라는 가정으로 상상의 날개를 펴는 사변적 사유로 전개된다”며 “2003년경부터 그런 아이디어를 스케치북에 시각화했고 그것들이 하나둘씩 모여 이번 전시에 선보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서는 영국 리버풀의 두 건물 사이에 처박힌 한옥, 어린 시절 살았던 집과 정원을 화물칸에 싣고 미국을 횡단하는 트럭, 미국 대학 건물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가정집 등의 모형이 등장한다. ● 완벽한 집은 어디에 있을까
전시장 2층에 있는 ‘스페이스1’에서는 이런 사변적 사유의 과정을 담은 ‘스페큘레이션스’ 연작을 볼 수 있다. 관객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더그라운드(1층)의 ‘완벽한 집: 다리 프로젝트’다.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살았던 작가가 2010∼2012년에 두 도시의 중간 지점에 ‘완벽한 집’을 상상하며 여러 가능성을 전문가와 협업해 상상해 보았는데, 이번엔 뉴욕 서울 런던 사이 북극에 만들어질 완벽한 집에 관한 여러 가설들을 전시했다. 북극의 척박한 기후부터 이동 수단, 국경까지 현실적인 제약을 극복할 방법을 고민한 시행착오의 과정을 볼 수 있다. 이런 어려운 과정들은 ‘완벽한 집’은 불가능하다는 체념을 극복하려는 희망과 긍정적 태도를 심어준다.
마지막 ‘스페이스2’(3층)에서는 재개발로 사라지는 공동주택단지를 느리게 기록한 영상 작품 ‘동인아파트’(2022년)와 ‘로빈 후드 가든, 울모어 스트리트, 런던 E14 0HG’(2018년)를 통해 상상의 고삐를 쥐는 현실을 조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11월 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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