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연출가 겸 배우 이미숙
“‘고도를 기다리며’ 속 신발서 영감… 싸움과 패배 반복하는 삶 담아내”
비극적 죽음을 맞은 뒤 이승에 남지도, 저승에 가지도 못하는 ‘도’와 ‘신’. 자신이 누구였는지조차 잊은 이들은 생전 신던 신발을 하염없이 찾는다. 신발에서는 한 사람의 삶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다음 달 1일까지 서울 성북구 놀터예술공방에서 공연되는 극단 ‘놀터’의 연극 ‘나를 찾아 나를 떠나고 나를 지우고 나를 기다린다’의 줄거리다. 배우 겸 연출가 이미숙(47)이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주인공들이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신발을 갖고 노는 데서 영감을 얻어 대본을 쓰고 연출했다. 2021년 초연 이후 3년 만에 재연된다.
16일 첫 공연이 끝난 뒤 극장에서 만난 이미숙은 얼마 전 선물 받은 새 신발을 신고 있었다. 매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와 성북구 동소문동에서 노원구 상계동 집까지 걸어 다니며 작품을 고민하는 그의 신발 밑창에 어김없이 큰 구멍이 나서다. 쉬지 않고 걸어도 왕복 7시간에 달하는 거리. “물집이 나고 터지며 굳은살이 박이기를 반복하는 과정이 인생 아닐까요. 나 자신과 싸우고 패배하면서도 살아내야 하는 삶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했어요.”
연극계에서 ‘몸 잘 쓰는 유쾌한 배우’로 정평이 난 이미숙답게 작품에는 배우들의 다채로운 움직임과 입소리, 언어유희로 가득하다. 그는 “뼈대에 살이 붙어야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인간이 되듯, 배우의 움직임은 대사에 생명을 불어넣는 필수 요소”라며 “대사 이외 입소리와 말놀이로 웃음과 운율감을 더했다”고 말했다. 굿판을 접목해 한(恨) 서린 영혼들을 위로하는 과정도 특색 있게 담았다.
“작품 속 인물들에게 부끄럽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진 그는 스무 살이 되던 1997년 극단 ‘미추’에 입단하며 연극 인생을 시작했다. 26년이 흐른 지난해 제60회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품에 안았다. 그는 “연극쟁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상이기에 수상 소식을 듣고 한참 넋을 잃었다”며 “형편이 어려워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못했는데 고집스럽게 무대를 지킨 끝에 보상을 받는 듯해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어느덧 중견 배우가 됐지만 연극을 향한 고집과 애정은 변함없다. 그에게 연기상을 안겨준 ‘싸움의 기술, 졸’에서 장기 두는 것이 낙인 ‘뒷방 늙은이’ 기봉 역을 연구할 땐 동네 공원을 찾았다. 장기 두는 어르신들의 표정과 몸짓, 말투를 온종일 꼼꼼히 관찰했다. ‘무슨 관심이 그렇게 많냐’며 걱정 섞인 핀잔을 들어도 소주를 나눠 마시며 거리를 좁혔다.
“연극은 모방이라지만 가짜를 연기하면 안 돼요. 연출가로서 배우들도 ‘진짜’ 그 인물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죠. 관객과 단원들에게 극장이 가장 소중한 공간이 되게끔 앞으로도 묵묵히 무대를 지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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