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Creator]〈3〉작년 동아연극상 희곡상, 20대 신인 극작가 강동훈
제약 넘어선 희곡 창의력에 끌려… 학부때 영화 전공후 연극 무대로
아트디렉터-시나리오 작가활동도… “한 우물만 파서는 고이기 쉬워
게임 시나리오 등 새 물 찾아야… 언젠가 아이돌 노래 작사도 할것”
극작가의 스마트폰 메모장에 글감이 금세 100개 넘게 모였다. 이제 이야기의 골격을 세울 때다. 통상 스타트업에서 쓰는 생산성 툴을 켜고, 포스트잇을 뗐다 붙이듯 메모들을 이리저리 배열해 보며 스토리보드를 만든다. 이야기가 관객에게 명료히 이해될지 문득 의구심이 든다. 챗GPT에다 이 희곡의 원형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본다. 유수한 희곡을 숱하게 학습한 인공지능(AI)이 이해 못 할 구조라면 관객도 혼란스러워할 터다.
지난해 제60회 동아연극상에서 데뷔작 ‘그게 다예요’로 희곡상을 품에 안은 극작가 강동훈(28)의 이야기다. 스타 소리꾼 이자람 등이 거쳐 간 DAC(두산아트센터) 아티스트로도 선정되며 큰 주목을 받은 신인 작가다. 그는 연출가와 나눌 법한 대화를 AI와 나누며 작품을 쓴다.
16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만난 강 작가는 “기술을 지독하게 느껴봐야 내가 쓰는 글이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다. 과학기술은 시대를 구분 짓고 사고를 전복하는 이정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시대 연극계에선 젊은 극작가가 귀하다.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그 역시 학부 땐 영화를 전공했다. 그러다 갑자기 무대에 발을 디딘 건 역설적으로 연극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서사를 예로 들었다. “영화라면 바다에서 촬영하면 돼요. 하지만 연극은 극작가가 창의력을 총동원해야 하죠. 배우, 연출가가 무대 언어로 바다를 재현할 수 있게끔 고민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아름답고 유용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그의 문체는 포말처럼 반짝이면서 수평선 너머 감춰진 존재를 조명한다. 오랜 세월 드레스 제작사로 일한 할머니의 기억을 좇으며 3대에 걸친 시간을 교차시킨 ‘그게 다예요’는 연극상에서 “진정한 상생과 연대를 담아낸, 묻히기 아까운 작품”이라는 심사평을 받았다. 좋은 이야기란 ‘동일한 대상을 달리 볼 시선을 진부하지 않은 미학으로 전하는 것’이라는 그는 “이야기에는 뉴스나 칼럼과는 다른 정확성이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기자 출신 작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는 기사체만큼 건조하게 쓰였음에도 전쟁 후의 패배감, 공허감이 온몸으로 느껴지잖아요. 이야기는 사건과 인물, 구조를 동원해 감정을 비롯한 모호한 영역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힘이 있어요.”
강 작가는 자신을 ‘양자역학과 스마트폰의 세계관을 타고난 세대’로 규정했다. 불확정적이면서 탈중심·초연결적 문화가 지배하는 시대란 뜻이다. 그는 “오늘날엔 오디세우스처럼 거창한 시련도, 절대적 구원자도 없다. 삶은 불확실하고 불안하기만 하다”며 “사람들의 감각에 맥락을 만들어줌으로써 삶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돕고 싶다”고 했다. 청감 문화 스타트업 ‘사운드 울프’에선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며 소리에 서사를 더한다. 농구공이 네트를 스치며 골인할 때의 소리로부터 짜릿함의 서사를 발굴하는 식이다.
그는 무언가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느끼면 얼른 새 물을 끌어다 자신의 세계를 희석한다. “우리 세대는 한 우물만 파서는 고여 버리기 쉽다”며 차기작으로 장편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 중이다.
“좋은 극작가라면 가상현실(VR) 게임 시나리오도, 증강현실(AR) 광고 카피도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싶고, 해야 하죠. 노랫말 쓰는 것이 취미라, 언젠간 아이돌 그룹 음악도 작사해 보고 싶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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