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의 눈으로 재구성한 조선의 마지막 날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22일 14시 51분


장편소설 ‘마지막 왕국’(김영사)

다니엘 튜더.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많은 분들이 제 책을 보고 김란사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고종 아들 의친왕 이강(1877~1955)의 일생을 그린 장편소설 ‘마지막 왕국’(김영사)을 내놓은 영국인 작가 다니엘 튜더는 22일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모두가 유관순은 아는데 유관순에게 독립운동 정신을 가르쳐준 김란사는 모른다. 의친왕, 김란사 등 잊혀진 인물들에게 빛을 비추고 싶은 마음으로 썼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란사(1872~1919)는 독립운동가로 조선 최초의 여성 미국 유학생이다.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인물을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으로 불리는 그가 신작 소설에 등장시킨 것.

그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으로, 한국 사회에 대한 비평 에세이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문학동네), ‘익숙한 절망 불평한 희망’(문학동네)을 펴냈다. 신간은 그의 첫 소설로, 영어로 쓴 뒤 한국어로 번역했다. 이르면 내년 영어판이 출간될 예정이다.

그는 기자 시절 의친왕의 아들인 이석 황실문화재단 이사장을 인터뷰한 뒤 소설 집필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석 선생은 미국 불법체류 경험에 사업에 실패하고, 노래를 발표해서 스타가 되기도 했어요. 이런 내용들을 기사화했는데, 그분과 가문의 이야기를 소설화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소설은 조선 왕실의 비참한 상황을 이강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불우한 어린 시절, 방황하던 미국 유학생활, 조선 총독 데라우치 암살시도 후 가택연금 등이 그려진다. 그는 “이강은 주변 독립운동가들과 얘기하면서 목표가 생겼고 상하이 임시정부 망명 작전에 참여했다”며 “여러 약점에도 성장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1시간 10분가량 이어진 간담회 내내 한국어로 답했지만, 한글 책을 읽는 데 모국어인 영어보다 5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료조사와 집필에 꼬박 5년이 걸린 이유다. 그는 취재 과정에서 이강의 자녀 중 한 명인 이해경 여사를 미국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구한말 왕실에서 왕자나 공주는 김치의 하얀 부분만 먹을 수 있었는데 이해경 여사는 초록색 부분을 가장 맛있어 했다고 한다”며 “작품에서 왕자나 공주가 상궁들에게 ‘제발 초록색 김치 주세요’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렇게 탄생했다”고 말했다.

한국 여성과 결혼해 생후 10개월 된 딸을 둔 그는 “아빠가 되고 나서 저출산 이슈에 관심이 생겼다”며 “차기작으로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한 논픽션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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