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무더위가 기상청 창설 이래 최악의 폭염이었다는 2018년 기록을 깨뜨렸다. 전쟁은 잔혹하지만 무더위나 혹한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더욱 잔혹하다. 철모와 방탄조끼는 총알을 막는 대신 열사병을 일으킨다. 강철로 만든 갑옷을 입어야 했던 옛날에는 더위와 추위의 고통이 더했다. 여름이면 갑옷은 화상을 입힐 정도로 달아오르고, 겨울이면 살이 달라붙을 정도로 얼었다. 로마군은 천하무적인 듯했지만, 열사의 스텝 지역에 가면 갑옷도 입지 않은 경기병대에 번번이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항복했다.
거란이나 몽골 같은 유목군대와의 전쟁은 주로 겨울에 벌어졌다. 병농일치인 유목군대는 봄에서 가을까지는 생업에 종사해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살수대첩이나 안시성 전투는 7, 8월 삼복더위에 진행되었다. 수나라, 당나라처럼 재정이 튼튼하고 징병한 병사를 사용하는 군대는 1년 내내 군대를 운영할 수 있었는데, 겨울보다는 여름이 편했던 모양이다. 봄여름에는 마초가 풍부하고, 농사철에 침공하면 농사를 망쳐 상대국에 기근의 고통을 선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임진왜란은 봄에 시작했다. 임진년 여름에 선조는 의주에 피란 가서 명나라 원군을 기다리고 있었고, 왜군은 평양성을 점령하고 의주를 노려보고 있었다. 반면에 만주족인 후금과 청의 침공은 겨울에 행해졌다.
6·25전쟁은 어땠을까? 여름과 겨울을 가리지 않고 혹서와 혹한기에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날씨든 지형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최고의 전술이다. 눈과 비를 맞으며 행군하게 하고, 폭염이나 혹한에 최대한 노출시킨다. 편히 잠자지 못하게 하고 굶주리게 한다. 그래서 군대는 몰상식해 보이지만 고통을 감내하는 훈련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편하게 지내면서 기능 훈련만 하는 군대는 승리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인생도 마찬가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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