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고마켓을 뒤적뒤적, ‘디올백’을 찾고 있어요. 그러다 사람들이 선물을 참 많이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디올백’이며 다이아몬드를 ‘약소하지만 선물!’이라며 주는 사람들도 많은가 봅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선물을 주고받은 적은 언제였나? 번쩍, 해를 정면으로 본 것처럼 앞이 하얘지더라고요. 선물. 제 인생에서 결락된 것들에 추가된 또 한 가지. 그나저나 사자 이빨을 내놓은 분, 그러니까 2억9000만 원에 거래를 희망한다는 외국인 판매자는 그 귀한 선물을 한국의 ‘당근’에 내놓게 된 경위를 할아버지에게 어떻게 설명할지도 궁금합니다.
‘당근 유니버스(디지털과 오프라인을 포함한 새로운 중고거래의 세계)’에서 고가품의 판매가는 ‘정품의 증거’가 (완벽하게) 있는지 없는지로 결정됩니다. 정식 부티크에서 쇼핑했음을 보여주는 온갖 증거들을 넘겨줄 수 있다면 새 상품 가격 그대로, 때로는 ‘피’(프리미엄)까지 받을 수 있죠. 여기서 ‘증거’란 정품보증서(개런티 카드), 라벨들, 영수증, 인보이스(수입 증명서)와 브랜드가 정중하게 음각된 봉투, 마찰과 먼지를 막는 더스트백, 제품을 감싼 사각사각한 종이들, 금고로 써도 될 것 같은 상자와 실크 리본, 그리고 쇼핑백(구겨지지 않았다면 당근에서 1만 원에 단독 거래 가능)이 포함됩니다.
결정적으로 정품보증서와 제품의 각인이 일치해야 해요. 진짜 정품보증서에 가짜 시계를 팔다 걸린 거래자도 있었거든요. 아마 그는 자신이 갖기 위해 정품을 하나 샀고, 이때 받은 ‘증거’들이 중고거래 가격의 핵심이라는 걸 알고, 진품보증서에 가짜 시계를 ‘끼워’ 팔았나봐요. 브랜드와 상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제품에 새겨넣는 각인은 정품임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리고 수선에 필요한 정보를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2024년 각인의 가방 수리 요청이 들어왔다면 제조사는 2024년 생산한 동일한 가죽으로 수선을 한다는 거죠.
사실 별 쓸모는 없는 ‘증거’들이지만 가격에는 영향을 많이 미칩니다. 대략 상품 가격의 10%~30%를 좌우하죠. 정품보증서와 영수증, 박스 등이 없다면 거래가가 상당히 낮아지는 거예요. 하지만 선물이라면? 보통 선물에 영수증을 함께 주진 않잖아요. 언제나 환불을 시도하는 엄마를 예외로 한다면, 그 자리에서 포장지를 힘차게 찢고 선물을 껴보고 뿌려보면서 최대한의 고마움을 전하죠. ‘교환 환불 없이 내가 영원히 간직할게’라는 뜻으로요. 그래서, 중고거래에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설명, ‘선물 받은 물건입니다’가 붙으면, 영수증 등 정품 구매의 ‘증거’들이 없다는 뜻인 경우가 많아요. 또는 이런 뜻일 수도 있으니, 소름주의. ‘이 물건은 가짜일 수도 있습니다만 정품가로 팔고 싶네요. 난 진짜 선물을 팔았으니, 가짜라고 해도 내 책임은 아닙니다.’
하여튼 선물은 중고마켓 활성화에 정말 큰 기여를 하고 있어요. 쇼핑플랫폼의 ‘선물하기’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핸드크림이 중고거래의 ‘선물 팔기’로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만 봐도 알 수 있죠. ‘선물하기’와 당근마켓의 콜라보 상품 같은 느낌이에요. 이렇게 선물이 곧바로 ‘당근’이 된다면 ‘선물깡’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만약 중고거래도, ‘나눔’도 불가능한 마음의 선물을 주고 싶다면? 책을 선물하세요. 책 안쪽에 고마운 마음과 이름을 적어 넣고요. 그러면 중고서적 전문점에서 받아주지 않아요. 뭐든 팔고사는 중고마켓에서도 책은 미운 오리 새끼고요. 선물로 받은 책은 간직하거나 버리거나, 둘 중 하나예요. 그런데 앞으로 중고 마켓에서 선물 팔기가 줄어들지도 몰라요. 공정거래위원회가 당근마켓이 거래자의 정보를 받아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재 절차에 착수했거든요. 판매자 정보가 공개된다면, 선물 팔기가 꺼려지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요. 진짜 디올백을 구하고 싶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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