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에선 기관 중 하나인 심장
고대엔 생명력의 근원으로 여겨
심장-뇌 상호작용 최신 연구 소개
◇신비한 심장의 역사/빈센트 M. 피게레도 지음·최경은 옮김/364쪽·1만9800원·진성북스
“내가 그의 심장을 만져보아도 전혀 뛰지 않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로 알려진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영웅왕 길가메시가 친구 엔키두의 죽음에 대해 탄식하는 내용이다. 기원전 2600년경 쓰인 이 문헌은 인류 최초의 심장 박동에 대한 언급으로 추정된다. 무려 4600여 년 전 인류는 심장이 뛰지 않는 것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미국 심장 전문의인 저자는 수만 년에 걸친 심장의 역사를 설명한다. 고대 문헌 등에서 길어올린 심장의 문학적, 역사적 의미까지 다면적으로 다룬다.
고대 영어 ‘헤오르테(heorte)’에서 유래된 심장이란 단어는 본래 가슴, 영혼, 정신, 용기 등 다양한 의미를 지녔다. 고대 여러 문명에서 심장은 생명의 상징이나 영혼이 깃드는 곳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고대 인도 의사들은 인간의 심장이 두 개라고 생각했다. 몸에 영양분을 전달하는 육체적 심장과 욕망·비애를 느끼는 감정적 심장은 별개라는 것이다. 기원전 6세기 고대 인도 의사 수슈루타가 남긴 논문에는 “임신한 여성은 두 개의 심장을 가지고 있을 때 ‘갈망하는 여성’으로 불릴 수 있다”며 “갈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아이는 곱사등이거나 손이 없거나 절름발이가 된다”는 대목이 있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심장 기능에 대한 믿음은 다소 축소됐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심장도 다른 기관과 같이 손상될 수 있는 인체의 일부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후 뇌과학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심장은 단순 혈액을 공급하는 펌프 역할에 그친다는 견해가 대세가 됐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심장이 인간의 성향 또는 감정을 결정짓는 기능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47세 전직 무용수인 클레어 실비아는 오토바이 사고로 숨진 18세 남성 팀 라미란드의 심장을 이식 받았다. 이후 클레어는 걸음걸이가 남자처럼 바뀌었고, 원래 싫어하던 맥주와 치킨너겟을 좋아하게 됐다. 팀의 가족은 “팀이 생전에 그랬다”고 증언했다.
이 외에도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최근 ‘심장신경학’에선 심장과 뇌 방향 사이 양방향 대화가 이뤄진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며 “심장에는 4만여 개의 감각 뉴런으로 만들어진 고유 신경계가 있고, 뇌가 심장에 보내는 것만큼 심장도 뇌에 많은 신경 신호를 보낸다”고 주장한다.
의사로서의 저자의 전문성이 드러나는 부분도 흥미롭다. 20세기 들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심장 치료법에 대한 정보가 풍부하다. 1944년 소아 심장학의 창시자인 헬렌 타우시그는 최초로 아동 환자에 대한 심장 수술을 시행했고, 1952년 존 루이스는 처음으로 저체온증을 활용한 개흉(開胸·심장을 열다) 수술에 성공했다. 이제 매년 전 세계에서 8000명이 심장 이식을 받고 있다.
“심장이 부서질 것 같다”처럼, 우리는 여전히 애끓는 감정을 심장을 활용해 표현한다. 오랜 기간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로 여겨진 심장을 역사, 문화, 과학이란 다각도에서 톺아 볼 수 있다. 학문적 지식과 스토리텔링이 적절히 조화돼 있어 읽기 부담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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