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남동부 멜버른이 주도인 빅토리아주는 대자연 속에서 트레킹하며 야생동물을 만나고, 와인과 미식을 즐길 수 있는 힐링 여행지다. 멜버른에서 뉴사우스웨일스(NSW)주 경계까지 동쪽으로 542km가량 뻗어 있는 ‘깁슬랜드(Gippsland)’ 지역은 호주의 떠오르는 와인 미식 투어 여행지. 바다를 바라보는 윌슨스 곶과 흑조가 헤엄치는 광활한 호수, 공룡이 살던 고사리 숲이 우거진 타라불가 국립공원(Tarra-Bulga National Park)에서 경이로운 자연과 신기한 야생동물을 만났다.
● 공룡들이 거닐던 온대우림
강수량이 많은 지역에 사시사철 울창하게 숲이 우거진 정글을 우림(雨林·Rainforest)이라고 한다. 보통은 적도 부근에 열대우림이 발달해 있다. 그런데 지구상 일부 지역에는 냉온대 우림(Cool-temperate Rainforest)이 형성돼 있다. 열대우림보다는 인류의 생존 환경에 맞기 때문에 일찍이 숲이 개간당해 쉽게 볼 수 없을 뿐이다.
호주 멜버른에서 남동쪽으로 약 180km 떨어진 사우스 깁슬랜드의 타라불가 국립공원에는 잘 보전된 원시 온대우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양치류로 뒤덮인 울창한 숲에는 키 큰 유칼립투스와 거대한 마가목, 너도밤나무가 최상위층에서 지붕을 이루고 있고, 그 아래에는 나무고사리와 버섯, 이끼 등이 자라고 있다.
타라불가 국립공원의 여러 트레킹 코스 중 양치류로 덮인 열대우림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코리건 현수교(Corrigan’s Suspension Bridge)까지 약 30분을 걸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로열 유칼립투스 나무가 관광객을 맞는다. 키는 약 74m로, 유럽인들이 호주에 처음 도착했을 때에도 존재해 수령(樹齡)이 200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수교에서 계곡을 내려다보니 거대한 고사리 나무(Fern Tree)들이 우산을 펼친 듯 빼곡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사리가 풀처럼 자라는데, 이곳에선 야자수처럼 쭉쭉 뻗는 나무로 자란다. 공룡들이 걸어다녔던 중생대 쥐라기의 풍경이 그대로 살아 있는 숲이다. 계곡 밑으로 내려가면 너도밤나무가 거대한 구렁이처럼 꿈틀거리는 뿌리를 드러내고 있고, 숲속 바닥에는 이끼와 버섯이 자라고 있다.
초록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온대우림 숲을 트레킹하고 나오는 길에 호주의 토종새인 금조(琴鳥)를 만났다. 거문고 금(琴)자를 쓰는 이 새의 화려한 꼬리는 리라를 닮았다. 꼬리를 펼치면 공작새처럼 아름다운 새다.
깁슬랜드에는 바다 주변에 광활한 호수가 발달해 있다. 호수 중간에는 길이 약 6km, 너비 2km의 ‘미니섬’인 레이먼드섬이 떠 있다. 해안에서 불과 200m 거리라 페인즈빌 마을에서 페리를 타고 5분이면 도착한다. 레이먼드섬에는 1953년에 코알라 몇 마리를 들여온 뒤로 코알라가 번식해 퍼졌다고 한다. 코알라가 유칼립투스 나무마다 거의 한 마리씩 살고 있는 그야말로 ‘코알라 천국’이다. 이 섬에서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코알라 트레일’을 즐길 수 있다. 유칼립투스 나무 아래를 지날 때는 고개를 들어 위를 봐야 한다. 나무 위에 솜 인형 같은 코알라가 한 마리씩 앉아 있다.
섬에서 나와 페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노을이 지고 있다. 황금빛으로 물든 호수에는 검은색 새들이 떠 있다. 모양은 영락없는 백조인데, 색깔이 검다. 말로만 듣던 블랙 스완(Black Swan), 흑조다. 차이콥스키 발레 ‘백조의 호수’ 3막에서는 백조 오데트로 변장한 흑조 ‘오딜’이 지크프리트 왕자를 유혹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블랙 스완’에서 내털리 포트먼이 완벽하게 연기하고 싶어 했던 1인 2역 변신 장면이다.
‘블랙 스완’은 금융시장 용어로는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흑조는 호주에만 살고 있는 특산종인데, 유럽인들이 호주에 와서 검은 백조를 처음 봤을 때 얼마나 놀랐을지 이해가 가는 용어다.
● 미텅 온천의 포섬
깁슬랜드 호수 인근에는 지하 500m에서 솟아나는 미네랄이 풍부한 미텅 온천(Metung Hot Spring)도 있다. 호수가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선셋 풍경을 내려다보면서 참나무로 만든 와인 숙성용 오크통 안에 들어가 즐기는 노천온천은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우리나라는 온천을 커다란 탕 속에서 여럿이 함께 하는 경우가 많은데, 호주인들은 1인용 오크통 안에서 하는 것을 즐긴다. 오크통 안에는 섭씨 38∼40도가량의 온천수가 솟아나는데, 통 안으로 몸을 집어넣으면 부피만큼 물이 넘쳐난다.
호주 빅토리아주에는 1997년 모닝턴 반도에 개장한 페닌슐라 온천도 있다. 1990년대 초반 찰스와 리처드 데이비슨 형제가 일본에 머물면서 수십 개의 온천을 경험하고 난 뒤 ‘왜 호주에는 이런 온천 관광지가 없을까?’ 하며 최신 시설을 갖춘 노천온천을 개발했다. 이들이 페닌슐라 온천에 이어 깁슬랜드에 미텅 온천을 두 번째로 개발한 것. 호주도 온천을 즐기는 인구가 한 해 5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미텅 온천에는 호숫가에 글램핑 숙소가 있는데, 천막 한쪽 테라스에도 개인용 오크통 온천이 있어 숙소에서 프라이빗 온천을 즐길 수도 있다.
미텅 온천 글램핑장 부근에서 저녁에 또 다른 유대류 동물인 주머니여우 포섬(Possum)을 만났다. 긴 꼬리를 흔들며 빠르게 움직이는 동물로 고양이와 미어캣을 합쳐놓은 생김새다. 크기는 고양이만 한데 얼굴은 쥐처럼 생겼고, 맑은 눈동자와 분홍색 코가 귀여운 동물. 한참 사람들을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더니, 살짝 다가서자 꼬리를 흔들며 빠르게 사라졌다.
● 깁슬랜드 와인과 미식 여행
깁슬랜드 미첼강 계곡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라이트풋(Lightfoot) 와이너리는 테라스에서 바라보이는 드넓은 포도밭 풍경이 압권이다. 풍부한 붉은 토양을 가진 고대 석회암 능선에는 머틀 포인트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호주 와인은 1800년대 중후반 유럽에서 온 개척자들이 포도나무를 심으면서 시작됐다. 호주 건국(1901년) 이전부터 생산된 셈이다. 호주 와인을 대표하는 품종은 ‘시라즈’. 프랑스 론 북부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는 품종인 시라(Syrah)가 호주로 건너가 ‘시라즈(Shiraz)’라고 불리게 됐다. 호주의 시라즈는 말린 베리, 초콜릿, 흙 향이 뒤섞인 부드럽고 농밀한 맛이 특징이다. 빅토리아주 깁슬랜드, 야라밸리, 모닝턴페닌슐라 등에서는 화려한 풍미의 과일향이 나는 피노 누아르(Pinot noir)도 많이 생산된다.
깁슬랜드 윌슨스 곶의 뷰를 감상할 수 있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거니스 사이다(Gurney’s Cider)는 영국 정통 제조 방식의 사과주(Cider)를 생산하는 양조장이다. 농장에는 프랑스, 영국, 미국, 아일랜드에서 가져온 5000여 그루의 사과주용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다. 지하 저장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크통에서 숙성 중인 사과주들이 보인다. 이곳에서 사이다(알코올 도수 16도)와 사과주 증류주인 브랜디(41도)를 시음할 수 있다.
호주 빅토리아주 그레이트오션로드로 가는 헬리콥터 안에서 비가 갠 후 둥그런 원형 모양의 무지개를 만났다. 지상에서 보면 무지개는 반원으로 보이지만, 하늘에서 보면 무지개가 원형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폴로베이에는 야생동물 보호구역 투어(Wildlife Wonders)도 진행된다. 타조를 닮은 호주의 국조인 에뮤(Emu)의 당당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의 수제맥주인 스포티드 에일(Spotted Ale) 병 라벨에는 점이 박혀 있는 야생동물이 그려져 있다. ‘주머니고양이’로 불리는 Tiger Quoll(타이거 퀄)이다. ‘이 맥주를 마시면 수익금 100%를 멸종 위기에 처한 타이거 퀄 보호를 위해 쓰인다’는 문구에 작은 보탬이 되고자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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