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10년 휴가’ 마친 ‘원조 신궁’ 김수녕 “양궁의 재미 함께 나눠요”[이헌재의 인생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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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년 9월 2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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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10년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원조 신궁’ 김수녕은 요즘 양궁의 재미와 즐거움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사우디아라비아 10년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원조 신궁’ 김수녕은 요즘 양궁의 재미와 즐거움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임시현, 전훈영, 남수현으로 구성된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은 지난달 파리 올림픽에서 단체전 10연패의 위업을 이뤘다. 단체전이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36년간 단 한 번도 정상의 자리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여자 대표팀 에이스 임시현은 혼성전과 개인전에서도 금메달을 따내며 3관왕을 차지했다. 이제 겨우 21살인 임시현의 이름 앞에는 새로운 ‘신궁(神弓)’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한국 양궁은 매번 올림픽을 치를 때마다 ‘신궁’이 탄생하곤 한다. 직전 올림픽인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안산이 3관왕에 오르며 신궁이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얻었다. 박성현, 윤미진, 기보배 등도 올림픽 금메달을 3개씩 획득했다.

그렇지만 한국 양궁의 올림픽 10연패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갖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 ‘원조 신궁’ 김수녕(53)이다. 3차례나 단체전 금메달을 딴 김수녕은 “5월 경북 예천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 때 만났을 때 우리 어린 선수들이 큰 부담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며 “그렇게 큰 부담을 이겨내고 좋은 성적을 이어가서 정말 다행이다. 역시 대견하고 대단하다”고 말했다.

‘원조 신궁’ 김수녕이 5월 경북 예천 월드컵 대회에서 파리 올림픽 단체전에서 10연패를 달성한 여자 양궁 대표 선수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다. 오른쪽부터 임시현, 김수녕, 전훈영, 남수현. 대한양궁협회 제공
여고생이던 김수녕은 1988년 서울 올림픽 단체전에서 왕희경, 윤영숙과 함께 금메달을 따내며 여자 양궁 10연패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김수녕은 그 대회 개인전에서도 금메달을 따 2관왕에 올랐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조윤정, 이은경과 함께 한국 여자 양궁의 두 번째 단체전 금메달의 주역이 됐다. 개인전에서는 조윤정에 이어 은메달을 수확했다. 겨우 20대 초반이었던 그는 그 대회를 끝으로 그는 은퇴했다. 이미 올림픽 금메달 3개와 은메달 1개를 딴 것만으로도 ‘신궁’ 소리를 듣기에 충분했다.

이후 대학을 졸업한 김수녕은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그렇게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듯하던 그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컴백을 선언했다. 당시 활을 만들던 한 국내 업체가 그에게 국내외 대회에 출전해 활을 홍보해 달라는 요청을 했고,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활을 놓은 지 몇 년이 지났어도 ‘신궁’의 재주는 어디 가지 않았다. 나가는 대회마다 좋은 성적을 올렸고, 올림픽 금메달보다 힘들다는 국가대표 선발전도 거뜬히 통과했다.

결과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이었다. 김남순, 윤미진과 함께 출전한 그는 자신의 네 번째이자 단체전 3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개인전에서도 동메달을 하나 추가해 그는 한국 선수 올림픽 최다 메달(금 4, 은 1, 동메달 1개) 보유자가 됐다. 김수녕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메달은 그냥 활이 좋아서 활 홍보차 시작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며 “올림픽 통산 최다 메달도 평소 크게 생각하지 않고 지냈다. 최근 들어 ‘내가 꽤 훌륭한 선수였구나’하고 새삼 깨닫고 있다”며 웃었다.

김수녕의 1998년 서울올림픽 경기 모습. 김수녕은 왕희경, 윤영숙과 함께 단체전 첫 금메달을 따냈다. 동아일보 DB


두 번째 은퇴 후 방송사 해설위원 등으로도 활동하고, 세계양궁연맹(WA) 등 국제기구에서 일하던 그는 2014년부터 올해까지 10년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생활했다. 한 사우디 왕가의 공주들에게 양궁을 가르치는 개인 교사로서였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한국대사관을 통해 공주들을 가르칠 여성 양궁 지도자를 추천해 줄 것을 요청했고, 대한양궁협회는 내부 공모를 거쳐 복수의 후보를 추천했다. 최종 낙점을 받은 사람은 바로 김수녕이었다.

그는 “여러 조건들이 나와 잘 맞았던 것 같다. 그쪽에서 30세 넘은 여성, 그리고 전문 선수를 거친 지도자를 원했다. 영어도 필수 조건 중 하나였다. 스위스 로잔의 세계양궁연맹에서 2년간 인턴 등으로 일하면서 익히 영어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수녕이 2009년 동아일보사에서 마인드 컨트롤과 관련된 강연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김수녕이 2009년 동아일보사에서 마인드 컨트롤과 관련된 강연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누군가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을 사우디아라비아 생활이 그에겐 잘 맞았다. 우선 시간적인 여유가 많았다. 두 명의 공주만 가르치는 가정 교사이다 보니 수업이 없는 날에는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저는 혼자서도 가만히 있는 걸 잘하는 스타일이다. 장도 보고 사람도 만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곤 했다. 좀처럼 심심할 틈이 없었다. 어찌 보면 10년간 인생 최대의 휴가를 보내고 왔다고도 할 수 있다”며 웃었다. 그는 또 “다행히 음식을 가리는 편도 아니라 사우디에서도 잘 먹고 잘 살았다. 재료를 사 와 한식을 요리해 먹기도 하고 현지에서 유명한 양고기를 먹기도 했다. 중동식 디저트 역시 종류도 다양하고 맛이 좋았다”고 했다.

그가 머무는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그가 사우디에 갔을 때만 해도 여자들은 차량 운전이나 외부 운동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들의 자유도 점점 늘어나 이제는 운전하는 여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도 차량을 구매해 운전을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여전히 운전이 위험한 데다 그가 사는 지역에서는 시장 등을 다닐 때 도보도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경우에는 택시나 우버를 이용하곤 했다.

원래 대중교통도 없는 것과 다름없었지만 한국으로 돌아오기 1년여 전부터는 버스가 개통돼 여러 차례 타 보기도 했다. 건설 중인 지하철은 시운전 중이라고 한다. 그는 “대중교통이 발달한 한국 사람 기준으로는 당연히 불편하다. 하지만 현지의 눈으로 보면 또 못 견딜 만큼 불편하거나 이상한 건 아니다”라며 “어쨌든 대중교통에 관한 한 한국만큼 쾌적하고 편리할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해설위원으로 나섰떤 김수녕이 사인을 해주고 있다. 동아일보 DB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해설위원으로 나섰떤 김수녕이 사인을 해주고 있다. 동아일보 DB


한국에 돌아온 뒤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며 잠시 휴식을 취한 김수녕은 얼마 전부터 그가 가장 좋아하고, 또 잘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바로 양궁의 재미와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그는 경기 오산에 위치한 양궁 체험 시설 ‘슈팅존 양궁카페 서바이벌’로 출근하고 있다.

이 시설은 국내 양궁장비업체 파이빅스가 운영하는 곳으로 활쏘기 체험과 서바이벌 양궁 등을 즐길 수 있다. 파이빅스는 파리 올림픽 남자 개인전 64강 김우진과의 대결에서 1점을 쏘며 눈길을 끌었던 아프리카 차드 출신의 양궁 선수 아스라엘 마다예를 후원하는 업체다. 파이빅스는 제대로 된 장비로 갖추지 못한 채 유튜브를 통해 독학으로 양궁을 배운 마다예를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까지 후원하기로 했다.

차드 출신의 ‘1점 궁사’ 마다예가 표적에서 화살을 뽑고 있다. 한국 기업 파이빅스가 2028년 LA 올림픽까지 마다예를 후원한다. 마다예 인스타그램
차드 출신의 ‘1점 궁사’ 마다예가 표적에서 화살을 뽑고 있다. 한국 기업 파이빅스가 2028년 LA 올림픽까지 마다예를 후원한다. 마다예 인스타그램


김수녕이 이곳에서 일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김수녕은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올리면서 내 이름도 종종 기사 등에 나오고 있다. 나도 올림픽 효과를 제대로 보고 있는 셈”이라며 “어린이부터 70대 어르신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분들이 찾아 오신다. 그분들이 더 재미있게 양궁을 즐길 수 있게 옆에서 돕고 있다”고 말했다.

올드 팬들은 한 때 최고의 궁사이자 신궁으로 불렸던 그와의 만남은 무척 반가워한다. 그를 잘 모르는 젊은 사람들도 TV와 신문기사 등에서 그의 이름을 봤다면 사진 촬영 요청을 하곤 한다. 김수녕은 “정식 직원은 아니고 프리랜서이자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활 쏘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자세를 바로잡아 주기도 한다”며 “7, 8월에는 주말에 주로 일했는데 이번 달부터는 훨씬 자주 나가게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또 “사우디아라비아에 있을 때부터 좀처럼 운동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일할 때는 하루종일 서 있어야 하고, 또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덕분에 젊었던 시절을 모습을 조금이나마 되찾게 됐다”며 “앞으로도 양궁의 재미와 즐거움을 나누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찾아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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