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영국, ‘리어왕’ 공연을 앞둔 무대 뒤. 선생님(Sir)은 첫 대사조차 생각나지 않고, 앙상블은 징집으로 인해 턱없이 부족한데다 공습경보마저 울린다. 전시 상황에서도 무사히 공연을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백스테이지를 그린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
국립정동극장은 오는 10월8일부터 연극 ‘더 드레서’를 공연한다고 3일 밝혔다. 2020년 초연, 2021년 재연을 거쳐 이번이 삼연째다.
초·재연을 함께했던 배우들이 합류한다. 배우 송승환이 ‘선생님’, ‘노먼’ 역은 오만석과 김다현이, ‘사모님’은 양소민이 연기한다. 장유정 연출가가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더 드레서’는 영화 ‘피아니스트’, ‘잠수종과 나비’, ‘오스트레일리아’의 작가 로날드 하우드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작가의 실제 경험에 착안한 이 작품은 하우드가 영국의 배우 겸 극단주였던 도날드 울핏의 셰익스피어 전문 극단에서 5년간 의상담당자로 일하며 겪었던 일들을 모티프로 한다.
드레서는 ‘공연 중 연기자의 의상 전환을 돕고 의상을 챙기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하지만 작품 속 드레서 ‘노먼’은 단순히 의상 전담에 그치지 않고 늘 그림자처럼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책임지며 헌신을 자처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선생님은 관객과의 약속을 위해 폭격 속에서도 227번째 리어왕을 수행하는 의무감 넘치는 배우지만 무대 뒤에선 안하무인으로 생떼를 부리는 노인이다. 선생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 성실하게 보필하는 노먼도 때로는 질투와 몽니를 불사하는 모습을 보인다. ‘더 드레서’는 선명하길 바라는 사회에서 단순하고 명료하게만 답할 수 없는 인간의 다양한 면모와 삶의 복잡성을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연극은 극중극 무대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선보인다. 후회로 점철된 인물 ‘리어’와 흐릿해지는 기억 앞에서 후회를 회복할 시간이 부족한 인간 ‘선생님이 비슷한 감정선을 그린다는 점도 흥미를 더하는 요인이다.
송승환은 “실제 배우로, 제작사 대표로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과 작품의 선생 역할은 일맥상통한 부분이 많다”며 “화려한 무대 아래, 관객들이 보지 못하는 연극의 뒷얘기가 궁금하다면 공연장으로 걸음 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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