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반전 등 극적 재미 쏠쏠
책 속엔 시대와 호흡한 삶 담겨
◇뷰티풀 마인드/실비아 네이사 지음·신현용, 이종인, 승영조 옮김/760쪽·1만8000원·승산
경제학에서 말하는 내시 균형을 단순화해서 설명하면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저렇게 할 텐데, 그 ‘저런 행동’이 다시 내가 아까 했던 ‘이런 행동’의 이유가 되어 주는 상태”를 말한다. 말이 알쏭달쏭한데, 경제학에서는 경쟁자들이 서로 내시 균형 상태가 되면 행동을 바꿀 이유가 없게 되므로 오랫동안 그 행동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내시 균형은 기업 간 경쟁에서부터 국가 경제 발전에 이르기까지 온갖 경제 분야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상대방의 행동과 미래를 내다보는 기술처럼 쓰인다는 얘기다. 재미난 것은 이론을 개발해 낸 존 내시가 경제학자가 아닐뿐더러 경제학 공부는 거의 해 본 적도 없는 수학자였다는 점이다.
존 내시는 현대의 수학자 중 가장 유명한 축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의 일대기를 다룬 ‘뷰티풀 마인드’라는 영화가 2001년 개봉돼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촉망받는 천재 수학자로 젊은 시절부터 기대를 모았고, 게임 이론은 물론 변분법 이론과 다양체 연구 등 다른 수학 분야에서도 좋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30세 무렵 심각한 조현병 증상이 나타나 학계를 떠나게 되었고 60대에 접어들 때까지 병으로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내시는 결국 병세를 이겨내 60대에 강단으로 복귀했다. 60대 후반에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런 극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인물이니 할리우드에서 눈독을 들일 만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노벨상 수상 후 몇 년이 지나 ‘뷰티풀 마인드’라는 제목으로 그의 전기가 책으로 나왔기에 영화로 만들 소재를 풍부하게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존 내시의 실화가 널리 알려져 처음 개봉됐던 때의 충격을 그대로 느낄 수는 없다. 개봉 당시에는 내시가 테러 음모를 막기 위해 비밀 임무를 수행하고 스파이 작전을 수행하며 총격전에 휘말리는 장면들이 그 자체로 짜릿했을 것이다. 영화 후반에 이르러 그 모든 장면이 조현병 때문에 생긴 망상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당시 관객들에게 강렬한 반전을 줄 수 있었다. 순전히 영화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은 이렇게 반전에 빠져들 기회가 사라졌다는 점이 좀 아쉽다. 내시의 사연을 잘 모르는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얼른 이 영화를 보여줘서 반전의 참맛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연을 아는 어른이라면 두툼한 전기 ‘뷰티풀 마인드’를 읽으며 영화 감상의 부족함을 채워 봐도 좋을 것이다. 극적인 표현을 위해 영화는 존 내시의 인생 세부 사항을 많이 바꿔놨다. 풍부하고 다양한 정보를 얻으려면 역시 책을 읽는 것이 좋다. 한 사람의 인생이 시대, 사회, 주변 사람들과 얼마나 복잡하게 연결되는지 넉넉한 내용 속에서 생각해 볼 기회가 될 것이다. 또 영화는 ‘조현병은 정신력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듯한 느낌을 줘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에 비하면 책은 적절한 약물 치료와 의료진의 도움만 꾸준히 주어진다면 조현병 역시 얼마든지 관리할 수 있는 병이라는 인식으로 독자를 이끄는 계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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