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평생 주려던 사랑, 엄마는 상자에 남기고 떠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7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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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졸업-결혼 등 딸 기념일 맞춰
엄마가 미리 만들고 떠난 축하 상자
절망 속 삶에서 다시 일어설 힘으로
◇마지막 선물/제너비브 킹스턴 지음·박선영 옮김/368쪽·1만9500원·웅진지식하우스



‘그웨니의 열두 번째 생일’이라 적힌 분홍 리본이 묶인 조개 무늬 상자. 안에는 엄마가 끼던 꽃 모양 자수정이 박힌 반지가 있다. 상자 안에는 엄마의 편지도 있다. “이건 엄마의 두 번째 탄생석 반지야. 네 마음에도 들었으면 좋겠다.”

이 상자는 유방암을 앓던 엄마가 딸을 위해 미리 준비해 둔 상자 중 하나였다. 엄마는 자신이 세상을 뜨면 딸의 기념일을 축하해주지 못할 것을 안타까워하며 매년 돌아오는 딸의 생일뿐 아니라 졸업, 운전면허 취득, 결혼과 출산 등 인생의 기점을 축하하는 상자를 미리 마련해뒀다.

딸이 서른 살이 될 때까지다. 상자에는 주로 진주 목걸이, 나뭇잎 모양의 핀, 자수정 브로치 등 자신이 쓰던 손때 묻은 보석들과 편지를 담았다.

책은 열두 살 때 엄마를 잃은 딸의 마음을 담아낸 에세이. 미국 뉴욕타임스에서 ‘판지 상자에 담은 못다 한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돼 호응을 얻은 뒤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저자는 엄마가 살아 있을 땐 그 상자를 두려워했다. 상자를 열면 엄마가 없는 미래가 현실이 될 것 같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세상을 뜬 뒤 딸은 외로워졌다. 아빠는 곧 여러 여자를 만났고, 세 살 위 오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떠난다.

키우던 강아지의 죽음, 아버지의 자살까지 시련은 더욱 깊고 험난해진다. 딸인 저자가 기댈 것은 엄마의 흔적이 남은 상자뿐. 절망의 문턱에서 딸은 엄마가 남긴 사랑을 느끼며 꿋꿋하게 일어선다.

상실의 아픔을 넘어서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엄마의 편지에선 비록 곁에는 없지만 딸이 제대로 된 어른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진다. 이런 편지를 선물 받은 딸이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편지나 선물 상자가 엄마를 대신할 수 없는 걸 알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어.” 책 속 엄마를 떠올리니 문득 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상실의 아픔#엄마#사랑#선물#선물 상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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