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이나 좌절감 때문에 바둑을 그만두고 싶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지난달 열린 제2회 취저우 란커배 세계바둑오픈전 결승에서 중국 구쯔하오 9단을 꺾고 우승을 거둔 신진서 9단이 10일 서울 성동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 9단은 구쯔하오 9단과 맞서 1국과 2국 모두 완승하며 전기 대회의 설욕을 갚았다.
이번 우승으로 신 9단은 2012년 입단 이후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7번째 우승하게 됐다. 국내에선 이창호 9단(17회), 이세돌 9단(14회), 조훈현 9단(9회)을 잇는 기록이다. 올 3월 열린 제15회 춘란배 16강전에서 중국 양카이원에게 패배한 이후 부진이 이어졌기에 더 값진 성과다. 그는 “최근 연이어 아쉬운 성적을 받았으나 다시 정신을 차리고 지난해 아픔이었던 란커배에서 우승함으로써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한 해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연말까지 남은 세계 대회를 통해 신9단이 슬럼프를 완전히 떨쳐낼 수 있을지 바둑팬들의 관심이 크다. 11월 개최되는 삼성화재배의 경우 지난해 중국 셰얼하오 9단에게 대마를 잡히며 8강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는 “많은 역경을 통해 성장했기에 최근의 슬럼프는 비교적 쉽게 넘길 수 있을 것”이라며 “특별한 비결은 없다. 그저 열심히 한다”고 했다.
인공지능(AI)처럼 정확한 수를 보여 ‘신공지능’이란 별칭을 가진 신9단 앞에는 ‘최고상금’ ‘정상’ 같은 화려한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삼성화재배에서 우승 상금 3억 원을 받으면 신 9단은 한국기원 사상 연간 최고상금을 거두게 된다. 역대 최고액은 지난해 신 9단이 기록한 14억7961만 원. 올 1~8월 그의 누적 상금은 13억4069억 원으로, 연말까지 약 1억6000만 원을 추가로 획득하면 최초로 15억 원을 넘어선다. 그는 “20년 가까이 시합 하나만 보고 바둑을 뒀다. 상금은 따라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상금 뿐 아니라 ‘57개월 연속 정상’ 같은 타이틀에도 그는 특별히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신 “AI조차도 보지 못한 수를 봤을 때” 가장 기쁘단다. 신9단은 “AI조차도 수를 다 찾지 못했을 만큼 바둑은 어렵고도 재미난 게임”이라며 “20년 가까이 바둑을 뒀으나 보면 볼수록 더 많은 수가 나오는 매력이 크다”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끝없이 성장하는 기사’로 기억되는 것이다. 지난달 발간한 첫 에세이 ‘대국: 기본에서 최선으로’에서 신 9단은 “바둑의 신과 하이파이브 하는 그날까지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큰 대회를 앞두고는 여전히 잠을 설치기도 하지만 그런 부담감 자체에서 뿌듯함을 느낀다”며 “연말까지 중요한 시험대가 남아있기에 더욱 정진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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