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고재 하회 한옥호텔 본관 내달 개장
22개동 20개 객실… 설계만 100여회
나무 심고 뽑으며 완벽 차경 구현
울진 소나무 기둥에 고미술품 가득
“제대로 된 한옥 경험 선사할 것”
“문화재를 만든다는 각오로 지었습니다.”
안영환 ㈜樂古齋(락고재) 회장은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 있는 ‘락고재 하회 한옥 호텔 기와 본관’ 건축 과정을 소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2003년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락고재 서울 본관’이라는 국내 최초 프리미엄 한옥 호텔을 선보인 안 회장이기에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현재 서울 북촌 일대에는 서울 본관 이외에 ‘락고재 북촌 빈관’, ‘락고재 컬처 라운지 애가헌’ 등이 들어서 있다. 모두 북촌 한옥마을 풍광을 즐기면서 한옥의 멋과 한식의 맛, 한국 문화 풍류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시설로 평가받는다. 서울시 산하 서울관광재단이 운영하는 포털 ‘비짓 서울’은 “락고재 서울 북촌한옥마을은 미쉐린 가이드에 소개된 유일한 한옥 호텔”이라며 극찬했다.
그래서 기대가 됐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최고 수준으로 지었다는 호텔의 전체 경관은 물론이고 책이나 사진으로 봤던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을지도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안동역에 내려서 다시 택시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3시간이나 걸리는 안동에 최고급 한옥 호텔을 짓겠다는 다소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감행한 속내를 알고 싶었다.
10월 정식 개장을 앞두고 지난달 29, 30일 이틀 동안 개최된 언론사 초청 행사에 참석해 안 회장 얘기를 들어봤다. 그는 불과 몇 주 전 기와를 얹는 공사 현장을 둘러보다 떨어져 갈비뼈가 부러지고, 쇄골에 금이 가는 중상을 겪었다. 하지만 취재진의 쏟아지는 질문에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열정적인 답변을 이어갔다.
● “완벽한 차경(借景) 위해 조경목 심고 뽑기만 수십 번”
락고재 하회 한옥 호텔은 ‘기와 본관’과 ‘초가 별관’으로 이뤄졌다. 하회마을 안에 4개 동 규모로 지어져 오래전부터 운영 중인 별관은 주변 마을과 어울리도록 초가지붕을 얹어 아담하다. 반면 본관은 하회마을 입구에 22개 동, 20개 객실로 구성돼 규모부터 다르다.
안 회장은 “기와 본관은 최근 우후죽순처럼 선을 보이는 한옥 건물과는 여러모로 다르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옥의 최고 가치는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의미하는 차경(借景)이다. 같은 소나무라도 창문을 통해 보이는 중심 줄기의 휜 각도에 따라 다른 풍광이 펼쳐지며 아름다움에 깊이를 더한다.
안 회장은 “완벽한 차경을 구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 노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창을 통해 보이는 나무가 가장 아름답게 보일 수 있도록 심고 뽑는 일을 거듭했다. 락고재 관계자는 “조경목 심고 뽑기만 수십 번이 넘는다”고 귀띔했다.
본관 호텔 전체가 완만한 경사를 이루도록 저층부 지반에 있던 돌은 부수어서 낮추고, 고층 지반은 돌을 채워 높였다. 각 한옥 지붕 추녀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이미 올린 기초도 내리고 올리기를 반복했다. 지붕에 올리는 기와도 수채화 그리듯 일일이 설계했다. 색깔별로 알록달록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기와를 배치하느라 설치하고 철거하기를 수십 차례 거듭했다.
제대로 된 한옥을 짓겠다는 열정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었다. 그 결과 10월 정식 개장을 앞둔 기와 본관은 짓는 데 무려 15년이 걸렸다. 설계만 100회 이상 바뀌었다.
● 다양한 명품 한옥을 경험하는 공간
락고재 하회 한옥 호텔 기와 본관의 최대 장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하회마을에 있다는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안 회장은 기와 본관 한옥에 최고 수준 건축 양식을 적용하고, 최고 수준 국산 자재를 사용했다.
우선 건축 양식에선 민가 이외에 궁궐 건축물 형태 같은 다양한 방식을 적용했다. 특히 5개 동은 창덕궁 부용정, 관람정, 애련정, 연경당, 낙선재 건축 양식을 그대로 적용해 지었다. 안 회장 아들이자 락고재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안지원 대표이사는 “각 건물 실제 크기를 측정한 뒤 모두 그대로 지었다”고 말했다.
특히 부용정은 창덕궁 부용정처럼 연못(‘부용지’) 위에 만들어져 실제 궁궐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VIP용으로 사용될 낙선재와 연경당은 담을 둘러 쳐서 별도의 문을 거쳐 들어가야 하는데, 문을 열자마자 마주치는 수석 3점이 연출하는 분위기가 특별하다.
기와 본관 기둥과 서까래, 대들보 등에 사용된 목재는 경북 울진에서 자란 수백 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만을 이용했다. 기둥을 떠받치는 주춧돌은 전통적인 방식대로 밭에서 캔 돌(밭돌)을 정으로 일일이 쪼아 사용했다.
● 소규모 박물관 수준의 고미술품 전시
문화재를 만든다는 각오는 외형뿐만이 아니라 각종 인테리어 소품에도 드러난다. 우선 객실과 호텔 경내 곳곳에 고미술품 수백 점이 진열돼 웬만한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신라시대 주춧돌부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석물(石物)과 도자기, 그림, 서예 작품, 그릇 등 종류도 방대하다. 청동기시대 그릇과 조선 중기 대학자 우암 송시열의 서예 작품도 포함돼 있다. 안 회장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고미술품이 3000점 정도”라며 “(기와 본관)에 3분의 1 정도를 배치했다”고 말했다.
호텔 곳곳에 심어진 우아한 모습의 소나무 수십 그루도 안 회장이 취미생활로 수집한 것들이다. 그중에는 취재진이 탄성을 지를 만큼 아름다운 소나무도 있었다. 안 회장은 “수집품 가운데 소나무가 가장 관리하기 힘들었지만 이렇게 사용할 수 있게 돼 다행이다”라고 자랑했다.
안 회장이 락고재 하회 한옥 호텔 기와 본관에 전통 형식만 고집한 것은 아니다. 건물 단청이 대표적인데, 조선시대 양식인 진한 원색에다 하얀색을 더했다. 현대적이면서도 연하고 부드러운 색조를 주기 위해서다.
건물 12개 동 기와지붕 측면 합각(合閣)에 해와 달을 상징하는 장식물을 넣고 동그란 점으로 10개의 별자리 형상도 새겨 한국의 전통적인 우주관을 담았다. 호텔 한 켠에는 모노리스(monolith)로 불리는 검은 비석을 설치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안 회장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영감을 얻어 설치하게 됐다”며 “생명의 진화를 다루는 초월적인 도구인 모노리스를 통해 자연과 하나가 되는 한옥 느낌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 ‘몽중(夢中·꿈꾸는 사람)’의 새로운 도전
이런 일련의 과정에 들어간 비용 확보를 위해 안 회장은 서울 명동에 있던 알짜배기 빌딩을 처분했다. 한옥을 짓는 데 필요한 인력 부족 해결을 위해 안동에 ‘한옥학원’을 세우고 10년간 80여 명의 인재를 양성하기도 했다.
안 회장의 이 같은 노력은 국내 한옥 체험 사업 선도자로서의 책임감에서 비롯됐다. 안 회장이 2003년 국내 최초 한옥 호텔 락고재 서울 본관을 선보이며 시작된 한옥체험업은 2024년 현재 등록업체가 2700여 곳일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품질이 낮은 양산형 한옥 난립으로 전통성은 물론이고 안전성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 곳이 적잖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소 무모한 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안 회장은 “지인들이 붙여진 별호(別號)가 ‘몽중(夢中·꿈꾸는 사람)’인데, 세속적인 말로 표현하면 ‘또라이’”라며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사람으로서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고 말문을 뗐다.
그의 행적을 보면 지인들의 평가가 이해가 된다. 안 회장은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1980년대 초 미국으로 건너갔다.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컴퓨터사이언스를 전공한 뒤 현재는 HP(휴렛 팩커드)에 인수된 EDS(일렉트로닉데이터시스템스)라는 회사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는 일에 싫증이 날 무렵, 은행원이셨던 부친의 권유로 귀국해 부동산 개발사업에 뛰어든다. 그리고 1992년 서울 마포의 낡은 한옥 재개발을 맡으며 한옥 사업과 인연을 맺는다. 안 회장은 “집주인은 한옥을 헐고 빌라를 짓길 원했지만 볼수록 그 집이 아까워 보였다”며 “집주인을 설득해 집을 빌린 뒤 그곳에 한정식집 ‘진사댁’을 열었다”고 말했다.
한정식집이 큰 성공을 거두자 안 회장은 한옥의 멋을 알리는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03년 서울 북촌의 오래된 한옥을 개조해 국내 최초 한옥 호텔 ‘락고재’를 선보이며, 국내에 한옥체험업과 한옥 호텔 시장을 열었다.
이번에 제대로 된 한옥 호텔을 지어서 그 정점을 보여줄 계획이다. 안 회장은 “볼거리 많고, 교통 접근성이 좋은 경주를 (호텔 부지로) 고려해 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안동을 선택하게 됐다”며 “안동은 한국 전통문화의 성지이고, 특히 하회마을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서 보여줄 게 많은 곳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제대로 된 한옥의 맛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며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하회마을을 품은 락고재 하회 한옥 호텔에서 단순 숙박시설이 아닌 한국의 유산과 전통을 체험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 회장은 전통 한옥의 대중화를 꿈꾼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최근 내놓은 ‘농촌 체류형 쉼터’ 계획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조립식 전통 한옥으로 쉼터를 짓도록 하면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안 회장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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