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로스코의 가족을 만났습니다 [영감 한 스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13일 10시 00분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 전시된 아버지 마크 로스코의 작품 ‘No. 10/Brown, Black, Sienna on Dark Wine (Untitled)’(1963년) 옆에 선 케이트(왼쪽)와 크리스토퍼 로스코.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미술관에서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합니다.

테이트 미술관의 한 방을 가득 채운 ‘시그램 벽화’ 연작이나, 로스코 작품으로만 만들어진 예배당인 로스코 채플에 가면 막막한 벽 속에 가득 잠긴 기분이 느껴지죠.

그런데 막상 작품이 주는 감정을 설명 하라면 ‘추상표현주의’나 ‘색면 추상’ 같은 미술사 용어 뒤로 숨어들곤 합니다.

추상표현주의가 195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추상을 그리는 흐름을 뜻한다는 것, 또 색면 추상은 말 그대로 색으로 된 면을 넣은 추상이라는 의미임을 생각하면 로스코의 작품을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한데도 말입니다.

로스코의 작품은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킬까? 또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작품을 그렸을까?

답은 관객이 찾아야겠지만,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로스코의 두 자녀, 케이트와 크리스토퍼 로스코입니다. ‘조응: 이우환과 마크 로스코’전이 개막하는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9월 3일 두 사람과 나눈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림 그릴 땐
음악 외 모든 걸 차단했던,
모차르트를 사랑한 화가


아버지 작품을 보면, 캔버스 위에 직사각형을 던져 넣는게 아니라 아주 세밀하고 정확하게 그 관계를 설정했다는 걸 느낄 수 있거든요. 그런 세밀함이 모차르트의 음악과 닮아 있다고 느껴요.
케이트 로스코
케이트와 크리스토퍼 로스코는 마크 로스코가 세상을 떠날 때 19세, 6세의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부터 지금까지 로스코의 작품을 보존, 연구하며 알리고 있죠.

케이트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작품을 지키기 위해 소송까지 치러야 했고, 크리스토퍼는 로스코의 글을 모은 책을 편집하거나 전시 큐레이팅도 담당하는 로스코 전문 연구자입니다.

두 사람에게 먼저 가까이서 본 아버지 로스코의 모습에 대해 물었습니다.

마크 로스코. Consuelo Kanaga (American, 1894-1978). Mark Rothko, Yorktown Heights, ca. 1949. Gelatin silver photograph, 10 x 8in. (25.4 x 20.3cm). Brooklyn Museum, Gift of Wallace B. Putnam from the estate of Consuelo Kanaga
마크 로스코. Consuelo Kanaga (American, 1894-1978). Mark Rothko, Yorktown Heights, ca. 1949. Gelatin silver photograph, 10 x 8in. (25.4 x 20.3cm). Brooklyn Museum, Gift of Wallace B. Putnam from the estate of Consuelo Kanaga

- 아버지로서 로스코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케이트(케): 제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벌써 47세였으니 함께한 시간이 길진 않아요. 아버지는 인간적으로는 아주 따뜻한 사람이었죠.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나 젊은 작가들을 대할 때에도 그랬어요. 다만 작품에 관해서는 아버지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어요.

크리스토퍼(크): 저도 아버지가 예순일 때 태어나서, 종종 저는 부모가 없고 조부모만 있다고 농담을 하는데요. 늦둥이가 가진 특권을 누나보다는 더 많이 누린 것 같습니다(웃음).

그 중 하나는 음악이에요. 아버지가 정말 음악을 좋아하셔서 저와 늘 함께 음악을 듣고 누가 가장 훌륭한 작곡가인지에 대해 토론도 했어요. 그 때 경험 덕분에 지금은 전문적으로 음악 비평을 쓰고 노래도 합니다.

-아버지는 어떤 음악을 좋아했나요?

크: 모차르트, 모차르트, 모차르트, 모차르트, 슈베르트요(웃음). 아버지는 정말 모차르트를 사랑했어요.

케: 아버지 작품을 보면, 캔버스 위에 직사각형을 던져 넣는게 아니라 아주 세밀하고 정확하게 그 관계를 설정했다는 걸 느낄 수 있거든요. 그런 세밀함이 모차르트의 음악과 닮아 있다고 느껴요.

(이 때 크리스토퍼가 누나 케이트를 향해 “그거 정말 좋은 표현이야. 나도 나중에 써야겠어”하고는 저에게 “저희 남매는 이렇게 아버지에 대한 서로의 표현을 훔치곤 한답니다”라며 농담을 건넸습니다. 아버지의 예술 세계에 대한 진지한 애정을 서로 공유하는 남매 모먼트를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 로스코는 20세기 현대 미술가이니 더 자유로운 음악을 들을 거라고 상상하잖아요? 잭슨 폴록이 재즈를 좋아했던 것처럼요.

그런데 아버지는 시간을 뛰어 넘는 보편적인 무언가를 찾고 싶어 하셨고 그래서 클래식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 실제로 작업을 할 때에도 엄격하게, 주변의 모든 것을 차단하는 편이었나요?

: 네. 항상 음악을 틀어 놓고 작업했고 몰입한 상태가 깨지는 걸 싫어했어요. 작업실 전화벨이 울리는 데도 완전히 잊어버리고 집중해서 그림을 그린 적도 있어요.

어릴 적 작업실에 갔을 때도 한 쪽 구석에 앉아 저는 조용히 제 그림을 그리곤 했어요. 또 작품이 어느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오롯이 혼자 집중한 상태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고향 유럽을 바라보던,
미국인 보다는 뉴요커

서울 페이스갤러리의 ‘조응: 이우환과 마크 로스코’전에서 마크 로스코의 ‘No. 16 [?] {Green, White, Yellow on Yellow} (1951년)’과 ‘No.10/Brown, Black, Sienna on Dark Wine (Untitled)’(1963년). 사진 김상태, 페이스갤러리 제공


어떤 점에서 아버지는 항상 고향인 유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물론 이민자의 도시인 뉴욕에선 어느 정도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지만요. 그러니까 아버지는 진정한 ‘뉴요커’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100% 미국인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케이트 로스코
로스코의 작품에서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지만 제게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막막함입니다. 막다른 벽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심정. 이 때문에 어떤 사람은 눈물도 흘리죠.

초기 작품에서는 불안한 도시의 모습이 초현실주의적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요. 혹시 그런 불안과 막막함이 이민자로서 겪는 감정은 아니었을지 궁금했습니다. (로스코는 러시아 제국에서 태어나 10세 때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초기 구상 작품에서는 도시 모습을 볼 때 불안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로스코는 유럽에서 이주한 이민자이기도 했는데, 그런 영향이 작품에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 맞는 말이에요. 당시 작품에서 불안감을 느낄 수 있어요. 당시 뉴욕은 대공황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난을 겪은 어려운 시기였어요.

또 로스코는 이 때 아주 붐비는 지하철이나 도시 모습을 그렸는데, 그런 곳에서 인간성을 잃는 듯한 기분이 들잖아요. 거기서 오는 불안감도 있죠.

게다가 이민자였으니 삶은 더 쉽지 않았죠. 물론 당시 뉴욕은 이민자가 아주 많았으니, 이민자로서 겪는 개인적인 감정보다 당시 뉴욕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런 불안한 분위기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 저도 아버지가 절대 완전한 ‘미국인’이 되지는 못했다고 생각해요. 어떤 점에서 아버지는 항상 고향인 유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요.

물론 이민자의 도시인 뉴욕에선 어느 정도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아버지는 진정한 ‘뉴요커’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100% 미국인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 두 분은 아버지의 작품 세계를 알리기 위해 전시나 강연도 활발히 하셨는데, 특히 추상표현주의 이상의 무언가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 하셨던 것 같아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 아버지가 사각형만 그렸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초기에는 구상이나 신화에 기반한 초현실주의적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때부터 아버지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문화에서 인간의 본질적 감정을 어떻게 표현 했는지에 관심을 가졌죠.

그러니까 후기의 작품들도 결국은 이런 본질을 시각 언어로 담기 위한 끊임없는 고민이었습니다.

: 초현실주의 작품을 그리기 전인 1940년대에 아버지가 남긴 글이 있어요. 여기서 그는 단순한 시각 언어를 사용해 감각을 관객에게 직접 전달하는 방식을 고민했는데요. 그러니까 이 때부터 추상으로 나아가는 단계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 로스코가 남긴 글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 1930년대 중간에 시작해서 1940년대 초반까지 로스코는 책을 썼어요. 완성하진 못했지만 그 속의 글은 예술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들이었죠.

예술가는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또 진실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적었습니다. 그는 과거의 사제나 철학자가 하던 역할을 이제 예술가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글은 제가 조금 다듬어서 20년 전 발간했는데, 최근 한글 번역본이 나왔습니다.
(이 책은 ‘예술가의 창조적 진실’(마크 로스코 지음, 위즈덤하우스)입니다)

“슬픈 그림보다,
깊은 감정을 만나는 그림“
몰입 속 대면하는 삶의 질문들


서울 페이스갤러리의 ‘조응: 이우환과 마크 로스코’전에서 마크 로스코의 ‘Untitled’(1969년). 사진 김상태, 페이스갤러리 제공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그 자체가 슬픈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깊은 감정을 느끼도록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슬픈 감정을 억누르려 하잖아요. 그런 감정을 ‘오늘 뭐 먹지? 내일은 뭐 하지?’ 라는 생각으로 회피하죠. 그렇지만 그림 앞에서는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 뒤엔 무엇이있나, 이런 것들을 생각해하고 감정을 느끼도록 한 것이죠.
크리스토퍼 로스코


-로스코를 비롯해 아실 고르키, 잭슨 폴록 등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고, 그 영향인지 작품에서 슬픔을 느낀다고도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 아버지는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깊은 감정을 느끼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림을 통해 삶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싶어 했고요. 우리는 왜 여기에 있고, 죽음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같은 질문이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불안도 있고, 슬픔도 있죠.

그러니까 작품 자체가 슬픈 것이 아니라 깊은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평소에 잘 느끼지 못하는 감정들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슬픈 감정을 억누르려고 하잖아요. 대신 오늘 뭐 먹지? 내일은 뭐 하지? 라는 생각으로 회피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 뒤엔 무엇이있나.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감정을 느끼게 만드려고 한 것 이죠.

: 어떤 사람들은 말년의 작업이 더 어둡다고, 아버지의 삶이 점점 더 우울해졌다고 말해요. 그러나 로스코는 평생 인간 조건이나 감정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파고 들었던 작가에요. 그러니까 초기 작품은 활기차고 아름답고 그 뒤로는 어둡고 슬퍼졌다고 하는 것은 맞지 않죠.

-로스코에 대해 ‘색면 추상’이라고 분류도 하는데, 그림 속에서 보이는 것은 색이 아니라 빛이라는 이야기도 예전 어느 강연에서 하셨는데,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 아버지는 본인이 ‘색채주의자’가 절대 아니라고 주장했을 거에요. 왜냐면 자신의 그림이 무언가를 표현하고 장식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또 어릴 때 아버지가 저를 미술관에 데려갔을 때, 몇 안되게 큰 소리로 무언가를 말한 순간은 빛에 대한 것이었어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네덜란드에서 렘브란트를 보거나, 테이트 갤러리에서 터너를 볼 때 작품에서 빛에 사용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저에게 말해주곤 했어요. 그만큼 빛을 중요하게 생각한거죠.

: 좋은 그림에서는 빛이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 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잖아요? 멋진사람에게서 빛은 그 내면에서 나오죠. 그래서 가장 어두운 그림이라고 해도 조금만 시간을 두고 바라보면 그 안에서 빛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전시장에 있는 검정과 회색 그림을 저는 매우 감명 깊게 봤습니다. 처음엔 어둡다고 느끼지만 조금만 보면 빛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그 빛은 회색뿐 아니라 검정색에서도 나와요. 아주 부드럽고 미묘하게… 그것이 관객에게도 전달되죠.

- 로스코가 세상을 떠나고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그동안 남은 작품을 계속해서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아요. 아버지는 무슨 생각으로 이들을 그렸을까.. 같은.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 저는 말년의 그림을 보며 자주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 그림들은 제가 자라면서 익숙하게 봐온 것이 아니거든요. 분명한 건 이 작품들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느낌은 전혀 없다는 거에요.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가 몰랐던 그림들, 특히 파스텔톤의 팔레트를 사용한 작품을 발견했는데. 아주 흥미로운 변화를 시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 저는 아버지의 그림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전시 기획을 돕기도 하는데요. 그러다보면 로스코가 어떤 공식이나 패턴을 생각해내고 같은 그림을 수백 번 그렸다는 생각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림을 몇 분만 찬찬히 봐도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죠.

그림을 보며 저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아버지가 이 그림에서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무슨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까?’

모든 그림은 새롭게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그가 어떻게 답을 찾으려 헀는지 따라가 보는거죠. 어쩌면 이전 그림에서 해결 못한 문제를 이 그림에서 풀려고 했을 수도 있구요. 완전히 다른 질문을 던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건 이거에요. 제가 글을 쓸 때 앉는 의자 맞은 편엔 항상 아버지의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많은 날들을 글 쓰는 데 집중하지 못하고 집 밖으로 나와 때로는 해외까지 가서 이렇게 인터뷰도 하지만(웃음). 글쓰기 의자는 저에게 가장 행복한 장소에요.

기자님도 잘 아시겠지만 글쓰기는 정말 힘든 일이잖아요. 때로 글을 쓰다 막다른 곳에 다다르면 고개를 들어 아버지의 그림을 보곤 합니다. 그게 항상 저에게 자극을 줘요. 아마도 그림을 완성하려고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아버지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겁니다.

로스코가 인생의 문제를 대면하고 풀어내려 노력한 흔적들. 페이스갤러리에서 이우환의 작품과 함께 10월 26일까지 만날 수 있습니다.

페이스갤러리에서 인터뷰 중인 크리스토퍼, 케이트 로스코. 말끔하고 자세한 통역으로 인터뷰에 도움 주신 박재용 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사진 박재용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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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테이트 미술관#초현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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