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상반된 것을 한 몸에 품고 있다. 추수(秋收)와 낙엽이다. 결실과 소실(消失)이다. 채움과 비움이다. 풍족하면서도 허전하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넉넉한 마음으로 아쉬운 상실을 위로하는 길이다.
‘도자(陶磁) 여행’을 권해 본다. 도자는 본디 그릇[器]이다. 쓰임이다. 따라서 익숙하다. 동시에 조형(造形)이다. 예술이다. 그래서 낯설다. 빗살무늬토기에서 보듯 1만 년 가까운 영속성이 있다. 쥐고 있던 손 삐끗하면 산산조각 나는 취약성도 갖는다. 가을과 꽤 어울리지 않는가.
● 이것도 도자다
‘비가 개고 안개가 걷히면 먼 산마루 위 드러나는 담담하고 갓맑은 하늘빛… 때때로 목화 송이같이 따스하고 때로는 백옥같이 갓맑은 살결의 감촉’(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우리에게 도자기는 청자와 백자였다. 색과 곡선이었다. 우아함의 극치다. 하지만 그 미(美)를 온전히 느끼기는 쉽지 않다. 왠지 멀어 보이기도 한다.
도자는 물로 잡물을 거른 흙을 빚어 바람에 말리고 불에 구워내 만든다. 인간이 완벽히 통제할 수 없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자연의 근본 성질이 변화무쌍한 형상을 창조해 낸다. 그림이나 조각과 달리 작가조차 가마에서 어떤 것이 나올지 모른다.
도자에 대한 지평을 조금만 더 넓혀 볼 필요가 있다. 2024 경기도자비엔날레가 좋은 기회다. 경기 이천 경기도자미술관으로 간다. 벽에 가죽점퍼가 걸려 있다. 고동색 여기저기 빛에 바래고 비에 젖은 듯 희끗희끗 황토색이 드러난다. 옷 주인은 거친 일을 하나 보다. 겨드랑이에 굵은 주름 서너 개가 졌고 소맷부리와 팔꿈치가 닳았다. 도예가가 잠시 벗어 놓았나 싶은데, 아니다. 이것은 도자다. 가죽의 질감에 주목했다. 흙으로 만든 일상이다.
자리를 옮긴다. 탱크 부대다. 가로 24cm, 세로 85cm, 높이 25cm 전차 10대가 각각 대(臺) 위에서 포신을 겨눈다. 1989년 5월 중국 톈안먼 광장을 피로 물들인 전차들을 떠올린다. 살상 무기에 중국 전통 청화백자 문양을 그려 넣었다. 화려한 이질감이다. 이것도 도자다.
근대로 접어들며 도자의 기능성에 이어 예술성이 유럽에서부터 주목을 받게 됐다. 도자도 예술의 흐름을 따라간다. 메시지를 발산한다. 로비에 말괄량이 삐삐와 꼬마 원숭이 닐슨 씨가 손잡고 서 있다. 점박이 백마 말 아저씨는 안 보인다…, 보인다. 삐삐가 오른손에 쥔 고삐 끝에 머리만 달려 바닥에 누워 있다. 자세히 보니 삐삐 얼굴에 주근깨가 없다. 그레타 툰베리와 겹쳐 보인다. 아하. 기후변화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다. 환경 보호에 대한 엄중한 호소다. 이것 역시 도자다.
● 당신도 ‘만든다’
경기 여주 경기생활도자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 본다. 조룡(鳥龍)이라. 인공지능(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으로 설계한 가상의 고대 생물 화석이다. 작가가 AI에 자신이 생각하는 조룡 모양을 지시한다. 100여 차례, 명령어는 점점 더 세밀해지고 AI가 토해내는 그림은 점점 변한다. 최종 이미지가 나왔다. 발굴된 공룡 뼈처럼 점토로 구워 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관람객은 준비된 두루마리 휴지를 찢거나 꼬아서 조룡을 치장할 수 있다. 매일매일 다른 조룡이 복원된다.
큰 모래시계다. 다만 채워진 것은 모래가 아니라 구슬이다. 점토로 서로 다르게 빚어낸 200여 개 구슬. 중간에 달린 손잡이를 돌리면 아래위가 바뀌며 구슬이 밑으로 떨어진다. 파열음을 내며 깨진다. 작품 제목은 ‘걱정시계’. 도자 구슬은 ‘걱정구슬’이다. 시간이 지나면 걱정도 깨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깨진 구슬은 새 걸로 교체한다. 똑같은 걱정시계는 어디에도 없다.
그루터기가 있다. 버섯이, 이끼가, 아주 작은 동물들이 덮고 있다. 속이 빈 그루터기는 물이 차 있다. 그 속에 사는 미생물, 유기물이 그루터기를 서서히 분해한다. 10월 20일 비엔날레가 끝나는 날까지 천천히. 시간마다, 분마다, 어쩌면 초마다 관람객은 다른 작품을 본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작품이 소비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른 작품은 또 있다. 2층으로 오르는 층계참에서 3층까지 높게 뚫린 공간에 걸린 종이같이 얇은 점토판 15장. 3장씩 세로로 붙여 줄에 매단 5개 이미지가 흔들린다. 점토 모빌이다. 고정돼 있지 않다. 미세하게 언제나 움직인다. 관람객이 포착하는 이미지는 찰나의 것에 불과하다.
기능과 예술의 영역이 그 길을 달리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릇이라는 근원적 형식에 모두 담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주둥이가 둥글고 목이 긴 술병 같다. 표면은 경쾌한 원색들의 기하학적 도형으로 덮여 있다. 프리 재즈 스타일이다. 실용적 그릇의 조형적 변용이다.
많은 의미와 창의적인 모양에 흠뻑 젖었다면 소박하고 담담한 도자기의 아취(雅趣)를 즐겨 볼 일이다. 경기 광주 경기도자박물관에서는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 공모전 수상작이 전시된다.
비엔날레에 참여한 국내외 작가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손에 직접 점토를 쥐어 볼 수도 있다. 경기도자미술관과 경기공예창작지원센터 등에서 열리는 워크숍과 아티스트 토크 & 퍼포먼스가 그것이다.
● 가을 여행까지…
이천, 여주, 광주는 경계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 사실상 하나의 생활권을 이룬다. 도자 여행을 얼추 마무리했다면 곁의 풍광으로 몸과 마음을 움직여 보자.
경내에 보물만 8점이 있는 여주 신륵사(神勒寺)는 입지가 독특하다. 봉미산 기슭에 있으면서도 남한강 여주 구간을 일컫는 여강을 끼고 있어 경치가 빼어나다. 고려 시대부터 ‘벽절’이라 불렸는데 돌이 아니라 벽돌로 쌓은 다층전탑(多層塼塔)이 있어서 그렇단다. 보물 226호로 한국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려 전탑이다. 여강을 내려다보는 언덕에 있는 정자 강월헌(江月軒)은 고려 말 왕사(王師)를 지낸 나옹 선사의 당호를 땄다. 나옹 선사는 신륵사에서 입적했다.
신륵사에서 차를 타고 여강을 따라 남동쪽으로 20여 분 가면 파사성이 나온다. 삼국시대 6세기 중엽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하는 산성이다. 임진왜란 중이던 1595년 중수(重修)했는데 서애 유성룡의 문집 ‘서애집(西厓集)’에도 관련 기록이 나온다고 한다. 둘레는 약 940m. 산을 즐겨 찾지 않는 일반인이 파사산 정상부까지 걸어 오르기는 만만치 않다. 그러나 정상에서 조망하는 남한강과 일대 풍경은 오를 때까지의 수고를 덜어내기에 충분하다. 전망이 탁 트이고 주변에 특별한 산지가 없어 왜 이곳에 산성을 쌓았는지도 짐작하게 한다.
도자 마을 이천은 쌀밥집이 많다. 처음 가 보는 사람은 ‘왜 이렇게 쌈밥집이 많지’ 하고 잘못 생각할 수 있겠다. 이천 여주 모두 예부터 쌀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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