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것 하나가 필요한 때였다. 2005년 에버랜드에는 1997년 11월 국제통화기구(IMF) 외환위기 이후 사실상 새로운 것이 없었다. 1996년 개장한 워터파크 ‘캐리비안베이’와 1998년 초 도입한 어트랙션(놀이기구) ‘콜럼버스 대탐험’이 마지막이었다.
마스터플랜은 대강 이랬다. ‘손님 대기시간을 최소화할 만큼 수용 능력이 있는 대규모 롤러코스터를 들여오자.’ 마케팅 부서에서는 한국에 없는 최첨단 롤러코스터를 선호했다. 고객이 “와!” 할 수 있는 것을 보여 주자는 욕구가 강했다.
기획팀 김환태 과장(당시 33세·현 제주신화월드 상무) 생각은 달랐다. ‘자연과 잘 어울릴 수 있으면서 규모는 웅장하고, 오래 타면서도 잔잔한 재미를 주는데 타고 난 뒤에도 굉장히 즐거울 수 있는 것, 뭐 없을까?’
● 놀이기구의 재미란?
기획팀은 대규모 고객 조사를 했다. 질문의 핵심은 ‘놀이기구의 재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였다. 가장 많은 답변은 ‘스릴’이었다. 이대로라면 간담이 서늘하고 마음 졸이게 하는 느낌, 즉 스릴 넘치는 4세대 롤러코스터가 제격이었다. 김 과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스릴과 재미는 정비례할까?
설문 응답지를 한 장, 한 장 처음부터 읽었다. 눈에 확 띄는 대목이 있었다. “‘스릴이 재미다’라고 답한 분들 가운데 ‘내가 탈 수 있는 놀이기구는 회전목마까지’라는 분들이 있는 겁니다.” 유레카!
‘스릴은 재미다’를 ‘스릴이 클수록 재미있다’가 아니라 ‘고객이 감당할 만한 수준의 스릴을 제공하면 그게 재미’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감당 가능한 스릴 강도가 5인 사람에게 10짜리 놀이기구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스릴 만점’이 꼭 100% 재미와 흥행을 보장하지는 않겠구나. 최대한 버틸 수 있는 스릴을 제공하면서 다른 재미들을 부여하면 좀 더 많은 사람이 좀 더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체 구조가 나무로 된 우든(wooden) 롤러코스터가 떠올랐다. 다른 테마파크에서 따라 할 수 없는 한국 최초 우든 롤러코스터. 남은 것은 마케팅 쪽 설득이었다.
● 구닥다리? 뭉근한 만족감!
김 과장은 롤러코스터를 대략 1세대에서 4세대까지로 구분한다. 1세대는 전기나 기계 힘으로 차량을 위로 끌어올려 떨어뜨린다.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꿔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한다. 2세대는 부재(部材)가 나무에서 쇠로 바뀌고 운동 방식이 상하(上下) 운동에서 360도 회전이나 스크루 모양 회전같이 변화한다. 3세대는 탑승 좌석 혁신이다. 매달리거나 오토바이 타듯 앉거나 서서 간다. 4세대는 항공모함에서 항공기를 새총 쏘듯 날리는 캐터펄트 방식을 도입해 차량을 더 높이 급발진시킨다. 추진 방식 변화다.
우든 롤러코스터는 1세대다. 당연히 “얼마 만의 대규모 투자인데 구닥다리를 들여오려 하냐. 게다가 위험하다” “타 봤는데 못이 튀어나올 정도로 덜컹거린다” 같은 반응이 나왔다.
잘 절이고 가공한 나무를 고온 고압에서 7겹 압축한 라미네이트 우드로 트랙을 깔겠다고 설득했다. 동일 면적의 강도가 철과 비슷하다. 나무에 못질하지 않고 프리패브리케이티드(prefabricated) 우드를 쓰겠다고 했다. 사전 제작해서 레고 블록 결합하듯 볼트와 너트로 조여서 조립한다. 부드럽고 변형이 덜해 흔들림이나 충격이 작다.
운행의 편안함과 안전성만으로는 부족했다. “스릴 효용체감의 법칙이라고 할까요. 최첨단 롤러코스터는 탈수록 만족감이 급감합니다. 스릴 강도 100짜리를 들여놔도 기술은 빠르게 발전해서 곧 120, 150짜리가 등장하겠지요. 그럼 굳이 100짜리를 타려고 에버랜드에 오려고 할까요? 반면 1세대 롤러코스터는 처음 탈 때 기대감이 그다지 크지 않은 데다 낙하에 대한 인간의 기초적인 공포를 자극합니다. 기본적인 것이 오래 갑니다.”
우든 롤러코스터로는 국내 최초, 운행 길이 국내 최장, 최초 낙하 각도 최대, 속도 국내 최대 같은 ‘최고’를 강조했다. 치밀한 준비 끝에 2006년 8월 최종 승인이 났다. 설치 장소는 눈썰매장 자리였다. 에버랜드 내부 산악지형인 그곳에 거대한 목재 구조물이 올라가는 광경 자체가 큰 얘깃거리가 될 터였다.
● 난관의 연속
건축 엔지니어 박명구 과장(당시 37세·현재 프리랜서)은 우든 롤러코스터 설치 장소를 눈썰매장으로 승인받아온 기획팀장을 종종 원망했다. 눈썰매장 터가 좁아 수많은 부재를 부리는 공간을 작업장에서 수백 m 떨어진 주차장에 둬야 했다. 터 파기 중에 발견한 거대한 화강암은 손님들 때문에 폭파하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파내야 했다. 외국 설계사는 “너희 땅에 설치하려고 하니 너무 어렵다”는 불평을 쏟아냈다.
애초 우든 롤러코스터 시공 총책임을 맡을 일이 아니었다. 놀이기구가 도입되면 박 과장의 기술 부서는 탑승장이나 레스토랑, 상품점을 만들어 주는 역할이었다. 주관은 어트랙션 기술팀 몫이었다. 그런데 나무는 자신들 영역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 것이다.
테마파크 같은 장치 산업은 약간 모험이 따른다고는 생각했지만 맡고 나니 도면 용어에서부터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공사 기간 14개월은 생전 처음 맞는 난관들을 극복하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눈썰매장 지형과 고도, 좌표를 세밀하게 측량한 지형도를 토대로 독일 스탱글이라는 전문 설계사가 설계했다. 이에 따른 기둥, 철물 같은 부재 설계는 스위스 엔지니어링사 인타민이 맡았다. 철제 부제는 슬로바키아, 목재는 스웨덴, 차량은 독일이 각각 담당했다. 목재는 독일에서 방부 처리하고 배로 중국을 거쳐 한국에 도착하는 데 40일 걸렸다.
도면에 따라 기초를 세우고 나무 기둥을 올려 트러스 구조를 구축하는 일은 한국에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도면과 안전계획서를 들고 사전 점검을 받으러 간 산업안전공단에서 “전례가 없어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였다.
누구를 시켜 일해야 할까부터 문제였다. 목수를 구해 가르치면서 할 수밖에 없었다. 목수 2명과 함께 독일에 가서 기둥 세우는 방법을 배웠다. 될 것 같았다. 가장 높이 세워야 하는 기둥 높이는 33m로 목재 4개를 이어 붙여야 했다. 타워크레인을 2대 설치했다. 번호가 매겨진 기둥들을 도면에 따라 잇고 전봇대 작업하듯 올라가 볼트와 너트로 조립했다. 목수들은 고공 작업을 선호하지 않았다. 건설현장에서 ‘도비공(工)’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써서 같이 일하게 했다.
● ‘미친개’
처음으로 도착한 목재들을 보고 박 과장은 까무러칠 뻔했다. 40일간 배에서 햇볕과 비바람에 시달리며 뒤틀린 것이다. 업체에 연락했더니 비웃듯이 “원래 그런 거야. 알아서 조립해”하며 외국인 경험자들을 소개해 줬다. 이들이 현장에 와서 한 말은 “준비가 하나도 안 됐네. 알맞는 공구가 없잖아”였다. 서울 을지로3가 수입 공구상에 주문해 공구를 10억 원어치 가까이 샀다. 뒤틀린 것을 뒤틀린 대로 조립하는 방법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익혔다.
2008년 3월 공식 개장 한 달 전 테스트 일정에 맞춰 역순으로 공사 순서를 정했다. 어느 날 세 번째 목재를 실은 배가 중국에서 나오다 접촉사고를 일으켜 발이 묶였다. 그 바람에 나중에 필요한 부재를 실은 배가 먼저 도착했다. 도면에 따라 기둥 번호에 맞게 조립해야 하는데 어긋나게 된 것이다.
머리를 싸매다 업체에서 보낸 부재 자료를 엑셀프로그램에 전부 옮겨 놓고 살펴봤다. 유레카! 번호는 다르지만 길이와 굵기 등 값이 같은 부재가 뒤에 온 배에 실려 있었다. 미리 당겨 쓰면 되는 것이었다. 업체 측 실수였기 때문에 부재를 새로 만들어서 보내라고 했다. 나중에 뒤늦게 들어온 세 번째 배에 실린 목재는 잉여 자재로 울타리 제작 등에 톡톡히 쓰였다.
계속되는 임기응변이었다. 몇 개를 이어서 세워 놓은 기둥이 부러지기도 했다. 맨 위 것이라면 빼내서 다시 주문해 갈아 끼울 수 있다. 하지만 밑에 있는 것을 빼낸다는 건 프로젝트 절반을 다시 해야 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곰곰이 생각하다 사람 뼈가 부러졌을 때 부목을 대듯 다른 목재로 덧대고 조였다. 나중에 확인했더니 맞는 방법이라고 했다.
개장하는 날짜가 정해졌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맞춰야 했다. 추석이나 설에는 일할 수 없다는 작업자들에게 “여러분 자제나 손주들이 탈 것인데 자랑스럽지 않느냐”며 설득도 하고 노임도 더 주면서 공사를 강행했다. 박 과장은 공사 기간 중 1년에 단 7일을 쉬었다.
2007년 12월경 트랙을 깔러 온 미국 작업팀이 크리스마스와 함께 신년 초까지 쉬겠다며 돌아갔다. 트랙을 깔아야 전체 구조를 눌러줘서 안정감이 생긴다. 박 과장은 “얘네 하는 거 봤잖아요. 우리가 깝시다”라며 작업자들을 독촉해 77도 경사로 떨어지는 최초 구간을 제외하고는 다 깔아 버렸다. 나중에 작업자들 사이에서 박 과장은 ‘미친개’로 불렸다.
“그렇게 미친 듯이 안 했으면 프로젝트를 제시간에 완벽히 끝낼 수 없었을 겁니다. 저로서는 피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혼자 고민도,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모든 책임은 저한테 있었으니까요.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 더미, 날다
2008년 1월, 첫 번째 시운전을 하는 밤이었다. 공사 기간 자문과 감리를 담당한 30년 경력 미국인 로든이 지휘했다. 차량 각 좌석은 물을 채운 사람 모양 비닐 백, 더미를 앉혔다. 첫 번째 낙하 구간에서 차량이 내려오는데 더미 하나가 달빛을 배경으로 ‘붕’ 날았다. 잘못 묶은 것이었다. 밑에서 지켜보던 사람들 가슴이 철렁했다.
테스트하던 차량이 첫 번째 낙하를 한 뒤 다음 오르막을 올라가지 못하고 골짜기에 갇혀 버린 일도 있었다. 추워서 트랙이 충분히 열을 받지 않은 데다 열차 자체 무게도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
테스트를 하는 동안 차량에 충격 센서를 달아 어느 정도 충격에 적응하도록 한다. 이후 ‘이 정도면 사람이 타도 되겠다’ 싶으면 사람이 탑승한다. 모든 좌석에서 더미를 빼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순차적으로 뺀다. 그 뺀 자리부터 한 사람씩 앉게 되는 것이다. 제일 먼저 탄 사람은 프로젝트 매니저 김환태 과장이었다. 한국 최초 우든 롤러코스터 T익스프레스 최초 탑승 인간은 바로 그였다.
“처음 타 본 소감은 ‘이건 무조건 된다’였습니다. 진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나무건 철이건 많이 탔지만 이렇게 재밌는 것은 없었다고 했지요. 그런데 매일 몇 번씩, 공식 개장 전까지 100번 넘게 타다 보니 나중에는 감흥이 무뎌졌는지 ‘정말 손님들이 좋아할까’ 걱정도 생기더군요.”
그해 2월, 공식 오픈을 한 달 앞두고 ‘소프트 오픈’을 했다. 목재는 안정화가 필요하다. 볼트와 너트로 조립해 설치한 목재 구조물은 시험 운행하는 동안 진동에 의해 조금씩 변형이 생긴다. 그러면서 자기에 최적인 위치를 잡게 된다. 센서 같은 부착물도 마찬가지다.
소프트 오픈은 임직원이나 초청 인사, 혹은 주변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게 된다. 운영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어서다. 그러던 어느 날 중간에서 올라가는 도중에 차량이 멈춰 버렸다. 그날 TV 저녁 메인 뉴스에 ‘에버랜드 놀이기구 사고, 15분 동안 공중에서 매달려’라는 기사가 방송됐다.
사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자동차가 사고를 피하기 위해 브레이크를 스스로 밟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안전하기 때문에 멈춘 것이었다. 처음에는 악재였지만 나중에는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얻었다. 인명피해도 나지 않은 데다 일정 수의 국민이 에버랜드에 저런 웅장한 놀이기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개장일, 김 과장의 걱정은 기우가 됐다. 안전과 안정화를 위해 36명이 탈 수 있는 차량 3대 가운데 한 달 간은 1대만 운행했다. 대기시간이 4시간을 넘었지만 타려는 사람은 끊이지 않았다. 약 3분의 운행을 마치고 차량이 승강장으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플랫폼에 서서 기다리던 김 과장의 눈에 박수를 치고 있는 탑승객들이 보였다. 차량에서 내려 김 과장 곁을 지나치던 손님들이 말했다. “이거 한 번 더 타자.”
● 또 다른 ‘우든 롤러코스터’를 꿈꾸다
김 상무는 우스갯소리로 1860년대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重建)이래 국내에서 목재를 가장 많이 사용한 공사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용된 목재 개수는 정확하지 않지만 볼트, 너트 같은 철물은 약 60만 개가 소요됐다. 기존 철제 롤로코스터가 기초를 약 100개 사용한다면 T익스프레스는 수백 개를 만들었다.
마스터플랜에서 예산은 200억 원가량 책정돼 있었다. 완공해서 보니 약 330억 원이 들었다. 수백억 예산이 잡힌 큰 프로젝트를 30대 초중반 과장 2명에게 사실상 맡긴 회사도 대단하다.
김 상무는 “기획하는 사람들이 말을 신뢰해줬다고 할까요? 의구심이 드는 사안에 대해 숫자와 자료로 잘 설명했고 설득했다. 당시 담당자의 의지를 잘 받아 주신 것 같다”고 말한다. 박 전 과장도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겁니다. 젊음의 패기라고 할까, 무모함이라고 할까. 당시 임원들한테도 ‘여기 기준은 제가 만들어서 할 테니 ’터치‘하지 마세요’라고 했다”고 말했다.
숙박 식사 쇼핑 공연 엔터테인먼트 테마파크 워터파크를 한곳에서 즐길 수 있는 국내 최초, 최대 복합리조트 제주신화월드를 비롯해 국내 테마파크에 T익스프레스 이후 우든 롤러코스터가 도입된 적은 없다. 이미 옛날 것이라는 생각과 ‘에버랜드에 있는데 굳이 또’라는 생각, 그리고 설치할 만한 유휴 부지가 없다는 것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겠다.
박 전 과장은 “우리나라에 우든 롤러코스터를 또 만든다고 하면 비용도 절감해서 더 잘 만들 자신이 있는데 기회가 아직 없다”고 아쉬워했다. 어쩌면 우든 롤러코스터는 완벽한 놀이기구에 대한 꿈이자 추억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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